이판 최명길이 나이 70에 이른 수령을 개차하자는 헌부의 의견에 동조하다
이조 판서 최명길(崔鳴吉)이 차자를 올리기를,
"삼가 헌부의 계사를 보니, 수령으로서 나이 70이 찬 자는 각도로 하여금 조사하여 개차하자고 하였는데, 성상께서는 폐단이 있을까 염려하여 허락하지 않았으나, 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조종조에는 정령에 정해진 법규가 있고 부역에 일정한 규정이 있어서 수령을 비록 다 적임자를 얻지 못하였더라도 전혀 일을 보살필 수 없는 지경에만 이르지 않았다면 그럭저럭 날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대전(大典)》에 64세 이상은 외임(外任)에 서용하지 말라는 조문이 있었으니, 이는 대개 70세가 극쇠의 연령이 되는데 당하 수령(堂下守令) 64세인 자를 기준하여 그 6년의 과만을 계산하면 70세가 차기 때문입니다.
지금 조야에 일이 많고 세속이 투박하여 다스리기 힘든 것이 옛날에 비해 10배나 됩니다. 헌부가 법규를 들어 사태를 청하는 것을 어찌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 다만 치적의 유무를 불문하고 통틀어 사태를 청한다면 그 논리가 미비할 것 같기도 합니다. 헌부의 아룀을 좇아 각도로 하여금 하나하나 조사하여 그 연한이 비록 지났어도 정사를 잘 보아 칭송을 받는 자는 계문하여 그대로 두고 별로 치적이 없는데 전관(銓官)이 사정에 따라 차견한 자는 모두 법률에 의하여 체차함이 마땅하겠습니다. 또 지난번 참판 김수현(金壽賢)이 인사를 독단할 때 김경직(金敬直)을 영해(寧海)의 수망(首望)으로 추천하여 낙점을 받기까지 하였는데 김경직이 지금 66세라 합니다. 헌부가 늙고 병들었다고 체직을 청한 것이 사실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신이 김경직을 본 결과 용모는 비록 수척하나 정신은 건전하며 전부터 외관직으로 백성을 다스림에 이르는 곳마다 명성이 있었습니다. 지금 만약 체직하고 다시 연소자 중에 선치(善治)의 경력을 쌓은 김경직 만한 자를 얻는다면 좋겠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아마도 그대로 보내는 것이 오히려 편리할 것 같습니다."
하였다. 이에 대해 이조가 복계하기를,
"차자 중에 진술한 말이 깊은 의미가 있으나 대간이 법에 의거하여 논한 것은 해조가 감히 경솔히 의논할 일이 아닙니다. 김경직에 대해서는 그 재국(才局)은 실로 취할 만하지만 연로하고 병이 있는 것은 과연 대간이 논한 것과 같으니, 신의 부서에서 또한 감히 함부로 의논하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김경직은 차자에 따라 체직하지 말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8책 28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524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사법-법제(法制)
○甲午/吏曹判書崔鳴吉上箚曰:
伏見憲府啓辭, 守令年滿七十者, 令各道査覈改差。 聖上慮其有弊而不許, 臣竊以爲不然。 祖宗朝, 政令有定規, 賦役有常程, 守令雖或不盡得人, 若不至於全不省事, 則猶可持循度日。 然而《大典》有六十四歲以上勿敍外任之文。 蓋七十爲極衰之年, 而堂下守令六十四歲者, 計其六年瓜限, 則恰滿七十故也。 今也朝野多事, 民俗偸薄, 爲治之難, 視古十倍。 憲府之引法請汰, 何可已也? 但不問政績有無, 混請汰去, 則其論似或未備, 宜從憲府之啓, 令各道一一按査, 其年限雖過, 而以善治見稱者, 啓聞仍存; 別無治績, 而銓官循情差遣者, 竝照法遞罷爲當。 且頃者參判金壽賢獨政之日, 以金敬直首擬寧海之望, 至於受點, 而敬直今六十有六歲云。 憲府之以老病請遞, 此固實狀也, 然臣得見敬直, 則容貌雖瘦, 精神不衰, 自前居官治民, 到處有名。 今若遞改, 而更得年少中歷試善治, 如敬直者則善矣, 如其不然, 則恐不如仍送之爲便也。
吏曹覆啓曰: "箚中所陳, 深有意見, 而臺諫引法之論, 非該曹所敢輕議。 至於金敬直, 則才局實有可取, 而年老有病, 果如臺論, 臣曹亦不敢輕議。" 答曰: "金敬直依箚辭勿遞。"
- 【태백산사고본】 28책 28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524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사법-법제(法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