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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27권, 인조 10년 10월 4일 무진 3번째기사 1632년 명 숭정(崇禎) 5년

평안 감사 민성휘가 후금의 사신이 대접을 소홀히 한다고 투정하고 있음을 보고하다

평안 감사 민성휘(閔聖徽)가 치계하였다.

"만월개(滿月介)숙천(肅川)으로부터 평양에 이르러 ‘정묘년084) 이후로 예단(禮單)의 감소가 해마다 더욱 심하여 자못 예로 공경하는 뜻이 없으니 도로 보내지 아니할 수 없다.’고 죄다 말하고, 또 말하기를 ‘천조(天朝)에 공물을 바침에 있어서는 봄 가을 두 차례 이외에 또 성절(聖節) 등 방물(方物)도 있는데 우리에게는 다만 봄 가을의 예만 있으며, 중국 사신이 올 적에는 금·은기(金銀器)를 사용하면서 우리에게는 모두 사기 그릇을 쓰니, 우리를 대접함에 있어서는 어찌 유독 엉성하게 하느냐.’고도 하였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27책 27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499면
  • 【분류】
    외교-야(野)

平安監司閔聖徽馳啓曰: "滿月介肅川平壤, 備言丁卯以後禮單之減, 逐年愈甚, 殊無禮敬之意, 不得不還送。 且言: ‘進貢於天朝則春秋兩度之外, 又有聖節等方物, 而於我則只有春秋之禮。 使之來, 排用金銀器, 而於我則皆以沙器, 待我何獨草率耶?’ 云矣。"


  • 【태백산사고본】 27책 27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499면
  • 【분류】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