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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27권, 인조 10년 9월 20일 을묘 1번째기사 1632년 명 숭정(崇禎) 5년

이귀가 상을 문병했는데 방이 좁아 승지와 사관은 창밖에서 듣다

이귀가 또 무덕문 안에 나아가 입대를 청하자, 상이 그로 하여금 혼자 들어오도록 하니, 승지 김남중(金南重)이 아뢰기를,

"승지와 사관이 입시할 수 없는 것은 일의 체통으로 헤아려 봄에 지극히 온당하지 않습니다. 전례에 의하여 입시하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방이 다만 한 칸뿐이기 때문에 앉을 곳이 없다."

하였다. 승지가 또 아뢰기를,

"이미 입대를 윤허하셨으니 방이 아무리 좁더라도 승지와 사관이 어찌 입시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하자, 답하기를,

"창밖에 들어오는 것은 무방하다."

하니, 승지와 사관이 드디어 창밖으로 나아갔다. 이귀가 나아가 아뢰기를,

"상이 기력이 편치 아니하신 지가 이미 오래되었는데도 조정 신하들이 증세의 경중을 몰라 모두들 매우 민망스럽고 답답하였습니다. 신이 여러번 입대를 청한 것이 미안스러운 줄을 너무나 잘 알지만 인정상 스스로 그만둘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행스럽게 상의 모습을 뵙게 되니 무엇을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이어서 눈물을 흘리자, 상이 이르기를,

"경이 여러번 입대를 청하면서 반드시 차가운 땅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을 터인데 상한 데는 없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신의 지극한 심정은 오직 옥후(玉候)의 경중을 직접 여쭙기를 바랄 뿐이었는데, 신의 몸이 상하게 되는 것이야 어느 겨를에 돌아보겠습니까. 상께서 지난날 계운궁(啓運宮)078) 의 상사(喪事)를 당하였을 적에는 춘추(春秋)가 한창 왕성하셨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상례(喪禮)를 지켜도 보전되어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기력이 전일에 비하여 아주 다른데, 만약 지나치게 슬퍼하다 상하시게 되어 지탱하지 못하신다면 효도로 끝마치는 도리가 아닙니다. 지난날 조정 신하들이 권도를 따르시라고 청하였을 적에, 상께서 너무나 지나치게 예절을 지키면서 말씀의 뜻을 간절하시니 누군들 감탄하지 않았겠습니까. 다만 비장(脾臟)과 위장(胃腸)의 증세는 반드시 권도를 따라야 조섭하여 치료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내 병이 대단한 지경에 이르지 아니하였는데 여러 신하들이 들어와서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걱정들이 너무나 지나친 것이다. 경이 지금 들어와서 보니 내가 과연 대단히 아픈 데가 있는가?"

하자, 이귀가 아뢰기를,

"원기(元氣)가 이미 상하면 외부의 나쁜 기운이 쉽게 침입하여 찬바람을 잠깐만 쐬어도 바로 크게 상하게 되는데, 상의 모습이 수척하여 검음이 너무나 심하시니 어찌 대단히 염려스럽지 않겠습니까. 졸곡 전에는 비록 권도를 따르지 않으시더라도 반드시 낙죽(酪粥)으로써 차츰차츰 조리 보양해야 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의 정성이 이에 이르니 낙죽은 마땅히 먹겠다."

하였다. 상이 승지더러 들어오도록 명하자, 김남중이 나아가 아뢰기를,

"긴요치 아니한 공사(公事)는 아마 조섭하시는 데에 해로울 성싶으니, 혹은 승정원에 보류시키거나 혹은 도로 내주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만약 그렇게 하면 반드시 적체될 염려가 있다. 문서를 출납하는 것은 진실로 큰 해가 없다."

하였다. 이어서 입대를 마치고 나갔다.


  • 【태백산사고본】 27책 27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497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註 078]
    계운궁(啓運宮) : 원종비(元宗妃)의 궁호.

○乙卯/李貴又詣武德門內, 請對, 上使之獨入。 承旨金南重啓曰: "承旨、史官不得入侍, 揆諸事體, 殊極未安。 請依例入侍。" 答曰: "房舍只一間, 故無坐處矣。" 承旨又啓曰: "旣許入對, 則房舍雖狹, 而承旨、史官, 安得不入?" 答曰: "來詣窓外無妨。" 承旨、史官, 遂詣窓外。 進曰: "上候違豫已久, 而廷臣不知輕重, 俱切悶鬱。 臣之累請入對, 極知其未安, 而情不能自已。 今幸得覩天顔, 不知所達。" 仍涕泣, 上曰: "卿累請入對, 必久坐冷地, 得無所傷乎?" 對曰: "臣之至情, 唯願面稟玉候之輕重, 臣身之致傷, 何暇顧也? 自上頃遭啓運宮之喪, 春秋鼎盛, 故終始守喪, 得保無虞, 今則氣候比前頓異, 若過哀致傷, 不能支保, 則非終孝之道也。 頃日廷臣之請從權制也, 自上執喪太過, 辭意懇切, 孰不感歎? 但脾胃之症, 必須從權然後, 可得調治。" 上曰: "予病不至大段, 而群下特未入見, 故憂之太過。 卿今入見, 予果有大段疾痛處乎?" 曰: "元氣已敗, 外邪易入, 暫觸風寒, 輒致重傷, 而瘦黑太甚, 豈非大段可憂乎? 卒哭前雖不從權, 必須以酪粥, 漸加調養。" 上曰: "卿懇至此, 酪粥則當進御矣。" 上命承旨入, 南重進曰: "不緊公事, 則恐妨調攝, 或留院、或還出給矣。" 上曰: "若然則必有積滯之患。 文書出入, 固無大害矣。" 仍罷黜。


  • 【태백산사고본】 27책 27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497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