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인조실록 26권, 인조 10년 6월 28일 갑오 1번째기사 1632년 명 숭정(崇禎) 5년

대왕 대비 김씨의 졸기

대왕 대비 김씨가 훙(薨)하였다. 왕후는 어려서 총명하였고 왕비가 되어서는 인자하고 검소하였는데, 선묘(宣廟)가 승하한 뒤로는 끝내 화려한 옷을 입지 않았다. 광해군이 패란(悖亂)하여 어머니로서 모시지 않고, 왕후의 부친 김제남(金悌男)을 무고하여 영창 대군(永昌大君)을 옹립하여 변란을 도모한다고 하면서 살육하여 후손이 없었다. 화가 영창 대군에게 미치자, 왕후를 서궁(西宮)에 유폐하고 폐모하려는 자가 많았다. 계해년058) 에 이르러서 금상(今上)이 의를 세워 난을 평정하고 왕후를 모셔다가 복위시켰다. 왕후는 하교하여 광해군의 죄를 일일이 제시하며 폐위시키고 금상이 대통을 잇도록 명하였다. 상은 성의를 다하여 봉양하였는데, 병이 나자 상이 주야로 간호하면서 허리띠를 풀지 않았고, 약을 올릴 때는 반드시 먼저 맛을 보았으며 관원을 보내 종묘·사직·산천에 기도하게 하였다. 이날 왕후가 인경궁(仁慶宮) 흠명전(欽明殿)에서 흉하자, 상이 내신과 예관을 불러 국상을 발표하였다. 모든 신하들이 비로소 오사모(烏紗帽)·오각대(烏角帶)·오색단령(玉色團領)을 착용하고 통곡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6책 26권 51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490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인물(人物)

○甲午/大王大妃金氏薨。 后幼而聰慧, 旣正位, 慈仁儉素。 宣廟昇遐之後, 終不着華盛之服。 光海悖亂, 不以母道事后, 誣搆后父金悌男以爲: "謀挾永昌爲變。" 誅戮無遺, 禍及永昌, 幽后于西宮, 而欲廢之者數矣。 至癸亥, 今上建義靖亂, 奉后復位, 后下敎, 數光海罪以廢之, 命今上承統。 上竭誠奉養, 及寢疾, 上晝夜侍疾, 衣不解帶, 藥必先嘗。 遣官祈禱于廟社、山川。 是日, 后薨于仁慶宮欽明殿, 上命招大臣、禮官發喪。 諸臣遂以烏紗帽、烏角帶、玉色團領擧哀。


  • 【태백산사고본】 26책 26권 51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490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