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차가 가도의 일, 의주와 회령의 일, 우리 나라 사람이 국경을 넘은 일 등의 내용을 담은 한의 편지를 전하다
상이 숭정전(崇政殿)에 거둥하여 금차(金差)를 불러 보았다. 금차가 국서(國書)를 가지고 정문(正門)으로 들어와 전(殿) 문 안에 서서 국서를 바쳤다. 이어 삼배례(三拜禮)를 행하고 전 동쪽의 교의(交椅)에 나란히 앉으니, 종호(從胡) 30여 인이 뜰 위에서 세 번 절하고 차사 뒤에 열지어 섰다. 상이 말하기를,
"귀국의 한(汗)은 평안하십니까?"
하니, 골자가 말하기를,
"평안하십니다. 한의 글 가운데 사정을 갖추어 말했습니다만, 한께서 신등으로 하여금 직접 진달드리도록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할 말이 있거든 전례에 따라 접대하는 재신(宰臣)에게 갖추어 말하시오."
하니, 골자가 말하기를,
"반드시 직접 진달드리려 한 것은 말을 전할 즈음에 빠질까 걱정되었기 때문인데, 지금 전교를 받았으니 공경히 명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마침내 세 번 절하고 물러갔다. 한이 보낸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금국(金國) 한은 조선 국왕에게 글을 보냅니다. 귀국의 글을 받아 보건대 ‘정묘년의 사건 뒤에 이미 각기 국경을 지켜 피차간에 강을 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였는데, 지난번에 까닭없이 군대를 일으켜 갑자기 우리 국경을 침입해서 배를 약탈하고 백성을 위협하며 창고를 털었다.’는 등의 말을 하였는데, 모르겠습니다만 왕의 이 말은 일부러 우리를 속이려는 것입니까, 아니면 왕이 자기의 잘못을 합리화하려는 것입니까? 백성이 해를 입은 것은 모두 왕 때문에 초래된 것이니,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정묘년의 일이 있은 뒤에 왕의 사신이 일찍이 말하기를 ‘중국 군대가 해도(海島)097) 를 차지하고 있는데 형세상 쫓아낼 수가 없다. 그러나 만일 상륙하면 반드시 용납하지 않겠다.’고 하기에, 마침내 섬을 방어하는 군대를 철수하고, 의주(義州)지방을 다시 귀국에 주어 머물러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귀국은 뒤에 다시 중국인을 귀국의 땅에 용납하여 살게 하면서 양식까지 대주었고, 중국 군사를 깊이 숨기고 의모(衣帽)를 바꾸어 입혀 귀국의 백성으로 분장시킨 뒤 정세를 정탐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에 해도의 관민(官民)이 이미 우리에게 귀순하고자 했는데도 귀국은 또 식량을 주어 귀순하려는 뜻을 막았습니다. 그때 우리가 여러 차례 글을 보내어 그들에게 식량을 주지 말 것을 바랐으나, 왕이 염두에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마침내 군대를 출동시켜 섬을 공격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우리는 이미 왕이 배를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예상했지만, 그래도 내 마음속으로는 배를 내주기를 기대했는데, 사람을 보내어 먼저 간청했어도 과연 얻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무지한 소민(小民)들이야 군대가 오는 것을 일단 보게 되면 자연히 놀라 흩어지게 마련이고, 백성이 일단 놀라 흩어지게 되면 살림살이는 자연히 없어지게 마련입니다. 이는 모두 왕이 이웃 나라를 사귀는 것이 정성이 없어 연유된 것인데, 소민들이 의심한 나머지 두려움이 생겨 경솔히 자기 고을을 버린 것입니다. 왕의 마음이 만약 정성스러웠다면 어찌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겠습니까.
이 일에 대해서 우리는 왕이 반드시 자신을 허물하리라고 생각했는데, 거꾸로 우리에게 허물을 돌릴 줄이야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이는 왕의 생각에 장도(張燾)의 계책과 조수(祖帥)의 용맹을 가지고 우리 군대를 패배시켜 의주(義州)와 영유(永柔)를 회복할 수 있다고 믿은 나머지 교묘히 말을 만들어 흔단을 찾은 행동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 양가(兩家)가 이미 하늘을 두고 맹세하여 형제의 의를 맺었는데, 만약 마음과 입이 한결같지 않으면, 이는 맹호(盟好)를 영원히 굳게 하는 지극한 방법이 결코 못 되는 것입니다.
글 가운데에 또 용만(龍灣)098) 에서 억지로 가격을 매긴 것과 회령(會寧)에서 무리하게 요구하며 받아낸 것을 말하였는데, 이는 우리 나라 사람들 가운데 우리를 속이는 자가 있거나 왕의 백성 가운데 왕을 속이는 자가 있는 것이니 만큼 엄히 구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이런 일이 있었다면 이는 우리 양국의 우호를 해치는 것이니, 왕은 마땅히 의주의 해당 관원에게 행문(行文)하여 억지로 값을 매긴 자의 성명과 빼앗긴 마필(馬匹)의 털 색깔을 조사하게 한 뒤 상세히 우리에게 알려 주어 철저히 조사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십시오. 회령의 일은 양국이 각기 똑똑한 관원 1명씩 보내어 함께 그곳에 가서 공동으로 허실을 조사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금년 5월 중에 귀국의 10인이 말 아홉 마리와 함께 우리 나라에 와서 복아합토(卜兒哈兎) 지방에서 사냥을 했는데, 저 찰(札)이 노하여 4인을 억류하고 말 아홉 마리는 돌려 보냈으며 그 가운데 6인은 도망하였습니다. 9월 중에는 귀국인이 회팔(灰扒) 지방에 와서 삼(蔘)을 캐다가, 우리 나라 사람과 싸움이 벌어져 귀국의 5인이 피살되었습니다. 또 9월 중에 귀국인이 도인(島人)099) 과 함께 관전보(寬奠堡)에 와서 삼을 캐다가 우리 나라 사람에게 붙잡혔는데, 도리어 동남명(東南明)을 대하여 이 사람은 우리 나라로 도망해 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였습니다.
화의를 맹세한 이래로 다만 귀국인이 여러 차례 국경을 넘어 사건을 일으킨 적은 있어도, 우리 나라에서 일찍이 한 사람이라도 국경을 넘은 적이 있었습니까. 성의를 다하여 알려 드리니 왕께서 유의(留意)하시면 다행이겠습니다. 이에 회답합니다."
- 【태백산사고본】 25책 25권 49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459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국왕(國王) / 외교-야(野)
- [註 097]
○上御崇政殿, 招見金差。 金差持國書, 自正門入, 立于殿門內, 奉獻國書, 仍行三拜禮, 列坐于殿東交椅。 從胡三十餘人, 三拜于庭上, 列立於差胡之後。 上曰: "國汗平安否?" 骨者曰: "平安矣。 汗書中備陳事情, 而汗使臣等, 親達矣。" 上曰: "如有所言, 依前例, 備言于接待宰臣。" 骨者曰: "必欲親達者, 傳言之際, 慮有遺漏之患。 今承傳敎, 敬遵命矣。" 遂三拜而退。 汗書曰:
金國汗, 致書朝鮮國王。 承惠書云: "丁卯之事, 旣已各守封疆, 彼此無得過江爲約, 頃者無故興兵, 猝入我疆, 掠奪我舟船, 驅脅我人民, 打開我倉庫" 等語。 不知王之此言, 故意欺我耶? 抑王自飾己非耶? 民受其害, 皆由王致, 我何與焉? 丁卯之事, 王使臣曾言: "漢兵自居海島, 勢不能逐。 如上岸, 必不肯容。" 因此遂撤防島之兵, 將義州地方, 復與貴國住守。 不意貴國後復容漢人於貴地住, 給濟糧食, 且窩藏漢兵, 改變衣帽, 粧扮貴國人民, 偵探情形。 前海島官民, 已欲歸我, 貴國又與食糧, 以阻來歸之意。 時, 我屢次致書, 惟祈勿與彼食糧, 王不以爲意, 因此遂發兵攻島。 吾已預料, 王不與船隻, 然私心猶冀其與, 及遣人先懇, 而果不得也。 無知小民, 一見兵至, 自然驚散, 民旣驚散, 家私自然抛失。 此皆由王交隣不誠, 小民因疑生懼, 而輕棄其鄕也。 王心若誠, 何以致此? 斯事吾方謂王必自咎, 而孰意反我咎也? 莫非王意謂, 張燾之謀、祖帥之勇, 敗我師兵, 克復灣、永, 所以巧作其辭, 而索覓間隙。 吾兩家, 旣當天盟誓, 結爲昆弟, 若心口不一, 甚非永固盟好之至道也。 書內又言, 灣上勒價, 會寧徵責要索。 我人欺我者有之, 王人欺王者有之, 是不可不嚴究也。 果有此事, 是敗我兩國和好, 王當行義州該管官員, 査勒價者姓名, 竝攘奪馬匹毛色, 詳細開來, 以便査究。 會寧事, 兩國可各差好官一員, 同到彼處, 共勘虛實。 今年五月內, 貴國十人、九馬, 至我國卜兒哈兎地方行獵, 彼札怒, 捉住四人, 九馬放回, 其六人逃散。 九月內, 貴國人來灰扒地方穵參, 與我人對戰, 貴國五人被殺。 又於九月內, 貴國人, 同島人來寬奠穵參, 被我人捉得, 反對東南明說, 此人逃在我國。 自盟好以來, 只有貴國人屢屢越界生事, 我國曾有一人越界否? 推誠相告, 幸王留意焉。 此復。
- 【태백산사고본】 25책 25권 49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459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국왕(國王)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