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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25권, 인조 9년 10월 8일 무신 3번째기사 1631년 명 숭정(崇禎) 4년

접반사 이명이 도독이 천가장을 친다고 아뢰다

접반사 이명(李溟)이 치계하였다.

"도독(都督)이 중군(中軍) 소국조(邵國祚)와 기고관(旗鼓官) 조병의(曹秉義)로 하여금 4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배를 타고서 곧장 천가장(千家庄)으로 향하게 하였는데 수일 내로 출발한다 합니다. 또 동강(東江)일대의 여러 섬과 신도(薪島)·장자도(獐子島)·광록도(廣鹿島) 등 여러 섬에 주둔한 군사에게 일제히 북쪽으로 가서 서로 성원하게 하였습니다. 이는 대체로 손 무원(孫撫院)의 표문(票文)에 ‘상륙하여 협공하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도독이 거짓말로 정예로운 군사를 발동하여 빨리 달려 가겠다고 하면서 빈틈을 타 소굴을 습격하려고 한 것입니다. 노적(奴賊)이 7월에 전 병력으로 대릉하(大凌河)를 침범하였는데, 수장(守將) 조 총병(祖揔兵)이 영원위(寧遠衛)에 주둔한 군사와 합세하여 성문 밖에 나와 몰아 쫓아내니, 노적이 30리를 물러나 주둔하였습니다. 현재 가을 장마가 연일 내려 오랫동안 서로 버티고 있다 하는데, 도독이 뒤로 친다는 일은 과장된 빈말인 듯합니다."


  • 【태백산사고본】 25책 25권 31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450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외교-명(明) / 외교-야(野)

    ○接伴使李溟馳啓曰: "都督使中軍邵國祚、旗皷官曺秉義, 將率四千兵, 乘船直向千家庄, 不日當發。 亦令東江一帶諸島, 薪島獐子島廣鹿島等處屯兵, 一齊向北, 互爲聲援。" 蓋以撫院票文, 有登岸挾攻之語, 故都督佯言 "發精銳疾趨", 爲乘虛搗巢之計。 賊七月悉擧, 犯大凌河, 守將祖揔兵, 與寧遠衛所駐兵合勢, 出城門外, 驅逐之, 賊退屯三十里。 時, 秋霖連日, 久與相持, 都督掣後之擧, 似是誇張之虛言云。


    • 【태백산사고본】 25책 25권 31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450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외교-명(明)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