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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24권, 인조 9년 6월 8일 경술 1번째기사 1631년 명 숭정(崇禎) 4년

호차 중남·아지호가 군사를 거느리고 가산 서쪽을 막아 대책을 논하다

평안 병사 유림(柳琳)이 치계하기를,

"호차(胡差) 중남(仲男)·아지호(阿之戶) 등이 군사 1만여 명을 거느리고 한(汗)의 편지를 가지고 와서 가산(嘉山) 서쪽을 곳곳마다 막았습니다. 이에 대소변방의 보고를 전해 듣지 못하니 매우 염려됩니다."

하고, 평안 감사 민성휘(閔聖徽)가 치계하기를,

"호인들이 선언하기를 ‘조선에서 배를 빌려 가도(椵島)를 들어가 습격하면 노략질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지금 검산(劍山)에 있으면서 정주(定州) 등 6개 고을의 수령 및 여러 장수들과 함께 모여 군사를 호궤(犒饋)하였는데, 그대로 있으면서 성을 지키고자 합니다."

하였는데, 비변사에 계하하였다. 비변사가 회계하기를,

"속히 부원수 정충신(鄭忠信)을 보내되, 훈련 도감의 마군(馬軍) 50명, 금군(禁軍) 50명, 포수 4백 명을 거느리고 평양에 가서 머물러 책응하도록 하고, 또 계속해서 해서(海西)의 병력을 동원하소서. 그리고 배를 빌려주는 일은 결단코 따르지 마소서. 이밖에도 허다하게 아뢸 일이 있으니, 등대(登對)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체찰사가 아직 출사하지 않아 회의를 하지 못하고 있으니, 속히 패초(牌招)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24권 41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431면
  • 【분류】
    외교-야(野) / 군사-관방(關防) / 외교-명(明) / 군사-군정(軍政)

    ○庚戌/平安兵使柳琳馳啓曰: "仲男阿之戶等, 擁兵萬餘, 持汗書出來, 嘉山以西, 處處攔阻。 大小邊報, 不得傳致, 殊極可慮" 云。 平安監司閔聖徽馳啓曰: "胡人宣言: ‘借船我國, 入襲椵島, 別無搶掠之事’ 云, 而臣方在劍山,與定州等六邑守令及諸將官等, 相會犒軍, 仍欲城守矣。"啓下備局, 備局回啓請: "急送副元帥鄭忠信, 領率都監馬軍五十人、禁軍五十人、砲手四百人, 往住平壤間, 以爲策應, 又發海西兵以繼之。 至於借船之事, 決不可從。 此外有許多稟令之事, 願賜登對。 且體察使時未出仕, 不得會議, 請速牌招。" 上從之。


    • 【태백산사고본】 24책 24권 41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431면
    • 【분류】
      외교-야(野) / 군사-관방(關防) / 외교-명(明)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