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숭하는 일로 주청하는 일을 반대한 이행원 등을 잡아다 국문하게 하다
옥당이 차자를 올리기를,
"신들이 그제 삼가 보건대 전하께서 추숭하는 일을 중국에 주청하라는 명을 내리셨기에 서로 의논하여 차자를 올리면서 불가하다고 진달하였는데, 하룻밤이 지나도록 비답을 내리지 않으셨으니, 이는 실로 전에 없었던 일입니다. 다만 생각건대 임금에 대한 신하의 관계는 곧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관계와 같으니, 부모에게 허물이 있을 경우에는 간곡하게 말씀드려야지 차마 향리와 주군(州郡)에 죄를 짓게끔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신들이 어찌 감히 위축된 채 구경만 하고 구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번 추숭하는 일은 실로 전하께서 어버이를 높이려는 지극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니, 참으로 예가 올바르고 일이 타당하게 되는 데에 해가 없다면, 누가 성상의 뜻을 받들어 따르려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종통(宗統)은 더없이 중대하고 예법은 너무도 엄한 것이니, 의기(義起)023) 하여 후세의 비난을 받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대원군(大院君)이 이미 조종을 계승하는 명을 받지 못했는데, 전하께서 특별히 사사로운 은정으로 추숭하여 종묘에 모신다면 열성조 가운데 한 분은 당연히 조천(祧遷)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전하의 어버이를 더 없이 높이려는 전하의 뜻은 지극하게 되겠으나, 조종을 높이는 도리는 어떻게 되며 종통을 중히 여겨야 하는 의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온 나라에서 인정하지 않고 정신(廷臣)들이 따르지 않는데 중국에 품명(稟命)한다면 이런 규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신령을 섬기는 도리에도 미안한 바가 있게 될 듯싶으니, 어긋남이 없어야 할 전하의 효(孝)를 해치는 하자가 되지 않겠습니까. 대간의 말은 무기력하고 연약함을 면하지 못했으니, 오늘날의 일이 참으로 한심스럽습니다. 신들이 논하는 것은 실로 공적인 입장에서 나온 것으로서 다만 임금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것뿐입니다."
하였는데, 차자를 올린 뒤 아직 답이 내려오지 않았을 때에 대사간 김수현(金壽賢), 정언 조공숙(趙公淑)이 인피(引避)하기를,
"이번 추숭하는 일이야말로 막중한 전례이니, 언관이 된 자로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극력 간쟁하여 전하의 마음을 돌리도록 했어야 마땅한데, 신들이 일을 분명히 살피지 못한 나머지 즉시 합사(合司)하여 아뢰지 못하고 관례에 따라 진달하기만 하였습니다. 방금 듣건대 옥당이 차자를 올리면서 ‘언관이 무기력하고 연약하니 참으로 한심스럽다.’는 등의 말로 배척하였다 하니, 신들이 직무를 수행하지 못한 죄가 큽니다. 파직을 명하소서."
하고, 대사헌 이홍주(李弘胄), 장령 이유달(李惟達), 지평 윤효영(尹孝永), 사간 김세렴(金世濂), 헌납 채유후(蔡𥙿後), 정언 이사상(李士祥)도 이를 이유로 인피하였다. 상이 하교하기를,
"옛날의 제왕들도 모두 사친을 추숭하였는데, 더구나 나는 인후(人後)가 된 자가 아니니, 친부모를 추존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더욱 없다. 이행원(李行遠) 등이 대각을 침해하는 말까지 하여 위와 아래를 협박하는 발판을 만들고 있으니,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다. 모두 잡아다 국문하여 정죄하라."
하니, 정원이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본원에 내린 분부를 보고서 서로 돌아보고 경악하며 모르는 사이에 몸이 떨렸습니다. 삼사(三司)가 서로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본디 예로부터 내려오는 아름다운 일입니다. 옥당에서 차자 가운데 논한 것은 관례에 따라 말을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에 불과한데, 터무니없이 엄한 분부를 내려 잡아다 국문하라는 명까지 내리셨으니, 성명께서 이렇듯 전에 없던 거조를 취하실 줄은 생각하지도 못하였습니다. 신들이 외람되이 임금의 명을 출납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결코 이를 받아들여 임금께 허물이 끼쳐지도록 할 수 없기에 감히 이를 봉환(封還)하니, 삼가 원하건대 조금 노여움을 푸시어 성명(成命)을 거두소서."
하자,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24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423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왕실-종사(宗社) / 외교-명(明) / 인사-임면(任免)
- [註 023]의기(義起) : 예문에는 없으나 개인적인 의리로 새로운 일을 거행하는 것.
○玉堂上箚曰:
臣等於再昨, 伏見殿下以追崇一事, 有奏請天朝之命。 相議上箚, 陳其不可, 批辭不下, 至於經宿,此實無前之事。 第念臣之於君, 卽子之於父也。 父母有過, 寧熟諫, 而不忍使得罪於鄕黨州閭。 臣等何敢屛縮傍觀, 莫之匡救乎? 今此追崇之擧, 實出於殿下顯親之至情,苟不害於禮之正、事之宜, 則孰不欲將順聖意, 而唯以宗統至重、禮法甚嚴, 不可有所義起, 以貽後世之議也。 大院君旣無承受祖宗之命, 而殿下特以私恩, 追崇入廟, 則列聖當有祧遷之位。 殿下顯親, 雖曰至矣, 其於尊祖之道, 何, 其於宗統之義, 何? 國人之所不許, 廷臣之所不從, 而稟命於天朝, 不但無此式例, 抑恐神道, 亦有所未安, 不瑕有害於殿下無違之孝乎? 臺諫之言, 未免疲軟, 今日之事, 誠可寒心。 臣等所論, 實出於公共, 只欲引君當道而已。
箚上未及報, 大司諫金壽賢、正言趙公淑引避曰: "今此追崇之擧, 乃是莫重典禮, 爲言官者, 所當碎首力爭, 冀回天聽, 而臣等見事不明, 不卽合司以啓, 循例陳達。 卽聞玉堂箚辭, 以言官疲軟, 誠可寒心等語斥之, 臣等不職之罪大矣。 請命罷斥。" 大司憲李弘冑、掌令李惟達、持平尹孝永、司諫金世濂、獻納蔡𥙿後、正言李士祥, 亦以此引避, 上下敎曰: "古昔帝王, 皆等私親。 況予非爲人後, 追隆所生, 尤無不可。 行遠等語侵臺閣, 以爲脅制上下之地, 事極駭愕。 竝拿鞫定罪。" 政院啓曰: "臣等伏見下本院之敎, 相顧錯愕,不覺悚然。 三司相規, 自是流來美事。 玉堂箚中之論, 不過措語間循例之辭, 而遽下嚴旨, 至有拿鞫之命, 不料聖明有此無前擧措也。 臣等忝居出納之地, 決不可承受, 以成君上之過擧。 敢此封還, 伏願少霽雷威, 還收成命。" 答曰: "勿煩。"
- 【태백산사고본】 24책 24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423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왕실-종사(宗社) / 외교-명(明)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