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실록 23권, 인조 8년 7월 3일 경진 2번째기사
1630년 명 숭정(崇禎) 3년
김양언을 정려하라고 명하다
김양언(金良彦)을 정려(旌閭)하라고 명하였다.
김양언은 강서현(江西縣) 사람인데, 그의 할아버지 김장련(金長諫)은 아우 김장연(金長延)과 함께 임진 왜란 때 전사하였고, 그의 아버지 김덕수(金德秀)는 아우 김덕봉(金德奉) 및 김양언의 아우인 김의검(金義儉)과 함께 심하(深河)의 전투에서 모두 전사했다. 정묘 호란이 발발하자 김양언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스스로 군병을 모집하여 복수장(復讐將)이 되었고, 안주(安州)를 지키고 있던 방어사 김준(金俊)에게 예속되어 성이 함몰될 때 힘껏 싸우다가 사망하였다.
총융사 이서(李曙)가 강서에 갔을 적에 김양언의 아들 김세호(金世豪)가 그 사실을 갖추어 말하자 이서가 이를 조정에 아뢰었기 때문에 상이 이런 분부를 내리게 된 것이다. 또 해도(該道)로 하여금 김덕수와 김양언의 처에게 의복과 식물(食物)을 넉넉하게 지급하여 긍휼(矜恤)하는 뜻을 보이게 하였고, 다시 3대의 사실을 찬술하여 정문(旌門)에 새기도록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23권 4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387면
- 【분류】윤리-강상(綱常) / 군사-전쟁(戰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