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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23권, 인조 8년 7월 3일 경진 1번째기사 1630년 명 숭정(崇禎) 3년

호조가 아직 거두어 들이지 못한 세금에 대해 아뢰다

호조가 아뢰기를,

"지난번 간원에서 올린 차자를 보건대 이른바 나라를 위하는 수령과 백성을 위하는 수령으로 나누어 둘로 분류하였는데, 그것은 진실로 오늘날의 폐단입니다. 그 가운데는 간혹 공사(公事)의 봉행에 마음을 다하지 않고 단지 백성에게 명예만을 얻으려 한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국가가 누차 변란을 겪어 공사(公私)의 재정이 바닥났는데도 응당 납입해야 할 공물을 독촉해 받아들이지 못한 데에는 많은 곡절이 있습니다. 혹 도망하거나 죽어서 절호(絶戶)된 경우도 있고 혹 오래된 포흠(逋欠)을 차마 독징(督徵)할 수가 없어서 미수된 것이 많아진 경우도 있는데, 이는 사세가 진실로 그렇게 된 것이지 오로지 백성을 기쁘게 해 주기만을 힘쓰고 국사는 만홀히 여겨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미수된 것을 독징하는 일에 이르러서는 매양 경비가 핍절된 것을 인하여 부득이 준례에 따라 독촉하기 때문에 소요스러움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사리상 이를 정지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은택을 베푸는 것이 마땅하겠기에 일찍이 유신(儒臣)이 차자를 올려 진달한 것을 인하여 무진년065) 이전의 미수된 공부(貢賦)는 가을걷이를 기한으로 우선은 독봉(督捧)하지 말게 했습니다. 차자의 내용이 이와 같으니 오래된 포흠은 가을걷이가 지난 뒤에라도 점차적으로 거두어 들여야 합니다. 다만 근원을 막지 않고 물줄기만 잡으려 한다면 이는 무리한 일입니다. 오늘날의 일은 제도(制度)로 절제하여 재화(財貨)를 손상시키지 말게 함으로써 백성을 위하는 대각(臺閣)의 정성에 부합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하니, 상이 하교하기를,

"계해년066) 이후 누차 줄여왔는데 회계(回啓)에서 이른바 부비(浮費)란 것이 무슨 일인지 낱낱이 서계하라."

하였다. 회계하기를,

"본조의 경상 비용은 일체 정간(井間)067) 과 등록(謄錄)에 의해서 쓰고 있는데, 이른바 정간이란 것은 항식(恒式)에 붙여져 있는 것이고 등록이란 것은 전례에 의거하여 기재된 것이니, 이 밖의 것은 모두 부비(浮費)입니다.

그 가운데 큰 것을 들어 말씀드린다면 호위(扈衛)·어영(御營) 양청(兩廳)의 늠료(廩料)는 정간과 등록에 기재되어 있지 않고 또 더 받아들이는 법규도 없으니, 부비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궐내에 사부(斜付)하는 것을 사람을 고용해 쓰는 것은 각사(各司)의 전복(典僕)이 적은 데에서 연유된 것이기는 하지만 해조에서 대가를 지급하는 것은 또한 근일에 새로 만들어진 것이니, 부비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부방(赴防)하여 있는 포수는 그곳에서 식량을 받고 있는데도 그 처자들의 늠료가 전의 정서군(征西軍) 칠초(七哨)의 처자들보다 더 받고 있습니다. 이는 전례에 없는 것으로 그 양이 수백여 석에 이르고 있으니, 부비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총융청(摠戎廳)에서 군관(軍官)을 기필코 거의 다 데리고 가는데도 그대로 원액(元額)에 대한 늠료를 지급하고 있으니, 부비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훈국(訓局)의 장인(匠人)들에게 염장(鹽醬)과 건어(乾魚)를 더 지급하는 것은 이 또한 고례(古例)가 아니니, 부비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리고 기타 여러 상사(上司)에 진배(進排)하는 물건과 각 해사(該司)에서 으레 쓰는 숫자도 거의가 미미하던 것이 많아지게 되고 작은 것이 쌓여 큰 것이 됨에 따라 옛날에 없던 것이 지금 있기도 하고 달마다 해마다 증가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응당 써야 될 곳은 매우 적은데 헛되이 소비되는 물건은 매우 많게 됩니다. 어공(御供)과 제향(祭享)을 견감한 것으로 살펴본다면 이런 등등의 물건은 부비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일일이 서계하려 한다면 일이 번거롭게 되니 하나하나 거론하기가 어렵습니다. 부비를 덜자[省浮費]는 세 글자는 폐단을 진달할 적에 항상 하는 말에 불과한 것인데 일일이 서계하라고 명을 내리기에 이르렀으니, 신들은 황공스러움을 견딜 수 없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답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23권 3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386면
  • 【분류】
    재정-전세(田稅) / 군사-군정(軍政) / 정론-정론(政論)

○庚辰/戶曹啓曰: "頃見諫院箚子, 所謂爲國之守令, 爲民之守令, 岐而爲二者, 誠今日痼弊。 其間雖或有不能盡心奉公, 只欲要譽於民間者, 而國家累經變亂, 公私財蓄殫亡, 其所以不能督捧應納之物者, 其間有許多曲折。 或因其逃故絶戶, 或因其年久連欠, 不忍徵督, 以致未收之多,其勢誠然, 非所以專務悅民, 而慢忽國事也。 至於徵捧未收之擧, 則每緣經費絶乏, 不得已循例行催, 未免騷屑。 理宜停寢, 以布字思之澤, 故曾因儒臣陳箚, 戊辰以上未收貢賦, 限秋成姑勿督捧矣。 箚辭如此, 積年逋欠, 則雖到秋成之後, 亦宜漸次收捧, 而但不防其源, 欲救其流, 無是理也。 今日之務, 莫如節以制度, 勿令傷財, 以副臺閣爲民之誠。" 上下敎曰: "自癸亥以後,屢加裁省。 回啓中所謂浮費者, 何事? 一一書啓。" 回啓曰: "本曹經用, 一依井間及謄錄。 所謂井間, 則恒式所付; 所謂謄錄, 則前例所載, 此外則皆是浮費。 擧其大者而言之, 則扈衛、御營兩廳廩料, 不載於井間、謄錄, 而又無加捧之規, 雖謂之浮費可也。 闕內斜付之雇立, 雖緣各司典僕之鮮少, 而該曹之給價, 亦創於近日, 則雖謂之浮費可也。 赴防砲手, 受糧於防所, 而妻子之料, 有加於前征西七哨砲手妻子之糧, 亦無前例, 而多至累百餘石, 則雖謂之浮費可也。 摠戎軍官, 必幾盡帶去, 而仍給元額之料, 雖謂之浮費可也。 訓局匠人之加給鹽醬、乾魚, 亦非古例, 雖謂之浮費可也。 其他諸上司進排之物、各該司例用之數, 率多從微至著, 積小成大, 或古無而今有, 或月增而歲益, 應用之處甚少, 濫費之物甚多。 以御供、祭享蠲減之擧觀之, 則如許等物, 雖謂之浮費亦可也。 如欲一一書啓, 則事涉煩瑣, 難以枚擧。 省浮費三字, 不過陳弊之恒言, 而至下一一書啓之命, 臣等不勝惶恐。" 答曰: "知道。"


  • 【태백산사고본】 23책 23권 3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386면
  • 【분류】
    재정-전세(田稅) / 군사-군정(軍政) / 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