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헌 홍서봉이 한천경의 일로서 아뢰다
대사헌 홍서봉(洪瑞鳳)이 아뢰기를,
"신이 지난번 본직에 제수되어 동료와 개좌(開坐)하고 있는 중에, 개성부의 한천경(韓天景)이란 사람이 그의 여종을 의빈부(儀賓府)에 빼앗겼다고 정소(呈訴)하였는데 형조에서 판결을 잘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생각하기를 ‘지방의 상민(常民)으로서 감히 상사(上司)와 소송을 벌였으니, 만약 그가 잘못하였다면 이렇게까지 할 수가 있겠는가.’ 하고 동료들에게 물었더니, 혹은 그의 억울한 정상을 말하면서 형조의 색리를 구금해 놓고 서서히 의논하여 처리하자고 하였으며, 혹은 그가 간교하게 속인 상황을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이 우선 색리를 구금해 놓고 다음에 개좌할 때 자세히 조사하여 처리하려고 하였는데, 때마침 동료에게 사고가 있어서 그 즉시 개좌하지 못했습니다.
그 뒤에 그 전 동료들은 모두 체직되었고, 새로 들어온 동료들과 모인 자리에서 신이 집의 김반(金槃) 등과 함께 그 송사에 관한 문서를 가져다 보면서 자세히 연구 조사하여 조목마다 별지를 붙여가며 철두철미하게 살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의빈부에서 양민의 아내를 노비로 들였던 것은 각 연도의 장적(帳籍)과 호적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었으나 한천경의 천적(賤籍)에는 전혀 근거할 만한 흔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장적은 신빙성이 없는 문서로 여기고 천경이 소송을 낸 뒤의 문기(文記)만 중요하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형조에서 단안을 내려 입계한 안이 합당한 듯하고 구금된 색리도 별로 추궁할 만한 단서가 없었기 때문에 상의하여 석방했던 것입니다.
대체로 송사를 처리하는 법은 그들 형세의 강약을 따져서는 안 되고 오직 시비가 어떠한가를 살펴 공평한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만약 한 쪽에 대해 선입관을 가지면 끝내는 치우치는 결과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번 송사에서 양인과 천인의 구분만 확실히 알면 한 마디 말로 판결할 수가 있는데, 어찌 문서를 왕복할 것까지 있겠습니까. 의빈부에서 말한 ‘한천경은 송도의 부상(富商)으로 송사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가지고 논하건대, 형조에서 즉시 처리하지 못한 것은, 아마도 뇌물을 쓴 판독(判牘)에 대해서는 고인도 어려워했다는 것과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이를 가지고 율을 과한다면 해조에서도 할 말이 없을 법도 합니다마는, 단지 그 전에 받았던 공초에만 의거하였다고 하면서 확실하고 바르게 판결하지 않았다고 아뢴다면 해조에서도 필시 달갑게 수긍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제 간원의 논계는, 억울하다고 한 그의 말만 듣고 문서는 전혀 가져다 보지 않은 것이니 또한 한천경이 격쟁한 것이 실로 전가 사변을 당하는 것을 면하고자 해서였다는 것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억울한 일을 풀어주는 것이야말로 법부의 직책인데, 신이 망령된 견해만 고수하여 자세히 살피지 않은 나머지 승소해야 할 자에게 소원을 이루지 못하게 하였으니, 사세상 그대로 직위에 있기가 어렵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사직하지 말라. 요즈음 더러 염치없이 사욕만 따르는 자들이 구차하게 대간에 충원되고 있으니, 부상(富商)을 위해 형관(刑官)을 파직하기를 청한 것은 괴이할 것도 없다."
하였다. 정언 정백형(鄭百亨)이 아뢰기를,
"신은 한천경이 누구인지 모릅니다마는, 대체로 듣건대 한천경이 자기 송사 때문에 징을 두드리기까지 하였다 하니, 참으로 가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에 해조가 법에 따라 복계(覆啓)하여 다시 형추(刑推)하기를 청하였는데, 상께서 혹시 원통하게 여기는 시골 백성이 있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특별히 조사해 처리하라고 명하셨고 보면, 해조가 어떻게 임의로 판결할 수가 있겠습니까.
신 역시 문서를 가져다 조사해 보았는데, 한 사람에게 두 가지의 이름이 있기도 하였으며, 한 사람의 공초(供招)에도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한천경이 이 때문에 송도(松都)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니, 이것이 바로 사건의 발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해조로서는 다시 각 사람에게 물어 실상을 얻어낸 다음에 확실하고 바르게 판결해 주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 번도 사실을 조사하지 않은 채 모호하게 회계(回啓)하여 갑과 을에게 차이를 두는 것처럼 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제 대사헌 홍서봉이 인피한 말을 보건대 ‘그들 형세의 강약을 따졌을 뿐만이 아니다.’고 하였는가 하면, 또 ‘만약 선입관을 가지면 한 쪽에 치우친 결과를 면치 못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은 의빈부와 한천경 중에 어느 쪽이 강하고 약한지 감히 모르겠으며, 또한 신이 한천경에게 무엇에 치우쳐서 선입관을 갖게 되었다고 했는지 감히 그 뜻을 모르겠습니다. 신이 보잘것없기는 합니다만, 부상(富商)에게 뇌물을 받고 형관(刑官)에게 잘못을 돌렸다고 한다면 만 번 죽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잘못을 수긍하고 지하에서 눈을 감지는 못할 것입니다.
지난번 헌부도 이 사건으로 색리를 붙잡아 형추(刑推)까지 하였는데, 그렇다면 헌부도 부상의 이용물이 되었단 말입니까. 신이 오명을 뒤집어 쓴 것이야 본디 괴이하게 여길 것이 없습니다마는, 염치없이 사욕을 따랐다는 견책에 대해서만은 신의 생각에 자연 거기에 해당되는 자가 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신이 참으로 노둔하고 용렬하여 조금도 보답하지 못한 채 도리어 불측한 지경에 빠져 이러한 죄명을 지게 되었으니, 결코 직책에 그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파직을 명하소서."
하였는데, 대사간 전식(全湜), 사간 조방직(趙邦直), 헌납 이경증(李景曾), 정언 남선(南銑) 등도 그 의논에 참여했다고 하여 인피하니, 모두에게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2책 22권 47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382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인사-관리(管理) / 신분-천인(賤人) / 사법-재판(裁判) / 인사-임면(任免)
○大司憲洪瑞鳳啓曰: "臣頃忝本職, 與同僚開坐, 有開城府人韓天景者, 呈訴其婢被奪于儀賓府, 而刑曹誤決云。 臣謂: ‘外方常人, 敢與上司爭訟。 若其理不直, 則詎至於此哉?’ 仍問同僚, 則或稱其冤狀, 請囚刑曹色吏, 而徐議處之; 或說其奸僞之狀。 臣姑囚色吏, 擬於後坐, 詳考處置矣, 適値同僚有故, 未卽坐衙。 厥後舊僚俱遞, 新僚會坐。 臣與執義金槃等, 取看本文書, 詳細硏覈, 隨節付籤, 徹頭徹尾, 則儀賓府之奴良妻, 明載於各年帳戶籍, 韓天景之賤籍, 全無可據之跡。 豈可以帳籍爲非可徵之文券, 而以天景起訟後文記, 爲歸重之地乎? 刑曹之入啓斷案, 似爲得宜, 所囚該吏, 別無可推之端, 故相議放釋矣。 大槪聽訟之道, 不當計其强弱, 惟視其曲直之如何, 平心而待之。 若先有主一之意, 則終未免於偏係之歸也。 今此訟事, 的知良賤之分, 則可片言而決, 何至於往復文書乎? 就其儀賓府所謂‘ 天景, 松都富商, 好訟者’ 而論之, 則刑曹之未遽處決者, 其不幾於古人持難於使鬼之判牘乎? 以此照科, 則該曹亦或無辭。 若曰只據前招而因啓, 不爲明正決折云爾, 則該曹必不甘心伏罪矣。 昨者諫院之論啓, 徒聞其冤屈之稱, 而全不取覽文書, 則亦安知天景之擊錚, 實出於欲免全家之律哉? 伸冤枉一事, 乃是法府之職, 而臣徒守妄見, 不加詳査, 致令當理者, 不得遂願, 勢難仍冒。" 答曰: "勿辭。 近者或以循私無恥之人, 苟充臺諫, 爲富商請罷刑官, 無足怪也。" 正言鄭百亨啓曰: "韓天景, 臣未知何人, 而槪聞天景, 以自己相訟之事, 至於擊錚, 誠極痛惡。 該曹據法覆啓, 更請刑推, 而自上軫念蔀屋之下, 或有抱冤之民, 特命覈處, 則該曹何可任情決折乎? 臣亦取考文書, 或一人之身而有二名, 或一人所供前後不同。 天景以此起訟於松都, 此實其端緖, 則該曹所當更問各人, 得其實然後, 明正決給, 而何可一不査覈, 朦朧回啓, 有若低昻於甲乙者乎? 昨見大司憲洪瑞鳳引避之辭, 有曰: ‘不但計其强弱。’ 又曰: ‘若先有主一之意, 則未免偏係之歸。’ 臣不敢知, 儀賓府之與天景, 孰爲强、孰爲弱; 亦不敢知, 臣有何偏係於天景, 而先有主一之意乎? 臣雖無狀, 謂之受賂於富商, 而歸咎於刑官, 則雖萬被誅戮, 必不甘心而服罪, 瞑目於九泉之下矣。 頃者, 憲府亦以此事, 捉致色吏, 至於刑推。 然則憲府亦爲富商之所使乎? 臣之橫被惡名, 固不足怪, 而循私無恥之責, 臣恐自有當之者矣。 臣誠駑劣, 不能圖報絲毫, 反入於不測之地。 負此罪名, 決不可仍冒, 請命罷斥。" 大司諫全湜、司諫趙邦直、獻納李景曾、正言南銑等, 亦以預於其論, 引避, 皆答曰: "勿辭。"
- 【태백산사고본】 22책 22권 47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382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인사-관리(管理) / 신분-천인(賤人) / 사법-재판(裁判)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