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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22권, 인조 8년 5월 28일 정미 2번째기사 1630년 명 숭정(崇禎) 3년

괴산 군수 이득윤의 졸기

괴산 군수(槐山郡守) 이득윤(李得胤)이 죽었다. 처음의 이름은 덕윤(德胤)이고 자는 극흠(克欽)으로 경주인(慶州人)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효행이 있었다. 반정 초에 공조 정랑에 제수되어 부름을 받고 왔다가 뒤에 괴산 군수로 제수되었다. 서울에 와 사은하는 길에 도성 사람들의 음성을 듣고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아직도 쇳소리가 거세게 나오고 있으니, 난리가 끝이 안 났다."

하였는데, 정묘년에 이르러 그가 한 말이 과연 들어맞았다. 고을을 다스리는 데 성적이 으뜸이었으므로 상이 특별히 통정(通政)의 자급(資級)을 주어 포상하였다. 결국은 늙고 병들어 집에 돌아갔다가 이 때에 이르러 죽으니, 78세였다.


  • 【태백산사고본】 22책 22권 45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381면
  • 【분류】
    인물(人物)

    槐山郡守李得胤卒。 初名德胤, 字克欽, 慶州人。 少好學, 有孝行。 反正初, 拜工曹正郞, 承召而至, 後授槐山郡守。 詣京謝恩, 聞城中語音, 謂人曰: "金聲猶盛, 難未艾也。" 至丁卯, 言果驗。 爲郡, 以治行第一, 上特賜通政階以褒之。 竟以老病歸家, 至是卒, 年七十八。


    • 【태백산사고본】 22책 22권 45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381면
    • 【분류】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