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실록 22권, 인조 8년 5월 21일 경자 2번째기사
1630년 명 숭정(崇禎) 3년
공빈 김씨의 묘소에 법에 어긋나게 세운 석물을 허물 것과 조맹의 무덤에 봉분할 것을 명하다
과거 선조(宣祖) 때에 공빈 김씨(恭嬪金氏)가 【 광해군의 어미이다.】 죽자 양주(楊州)에 장지를 잡았는데, 고려의 상주국 문하 시중(上柱國門下侍中) 조맹(趙孟)의 묘소가 그 곁에 있었으므로 그 부분을 허물 것을 의논하였으나 선조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광해가 왕위에 오른 뒤 공빈을 왕후로 추존하고 묘호(墓號)를 성릉(成陵)으로 올렸는데, 조맹의 묘소를 파낼 것인지에 대해 광해가 대신에게 의논하도록 명하였다. 그러나 영의정 이덕형(李德馨)이 불가하다고 하였기 때문에 봉분만 헐었다. 광해가 폐위되자 김씨도 따라서 공빈으로 폐해지고 마침내 능호도 고쳐졌으나 조맹의 무덤은 여전히 봉분이나 표석도 없는 상태였다. 그의 후손 조수이(趙守彝) 등이 상소하여 봉분할 것을 청하니, 상이 허락하고 이어 공빈의 묘소에 법에 어긋나게 세운 석물들을 헐도록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2책 22권 44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381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풍속-예속(禮俗) / 역사-전사(前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