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헌이 정사를 하는 방법에 대해 차자를 올리다
부호군 김상헌(金尙憲)이 차자를 올렸는데, 그 대략에,
"신은 듣건대 정사를 하는 방법으로 중요한 것은 우선 요점을 알아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정사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점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한다면 이는 마치 병을 고치면서 병의 증세에 대한 처방을 쓰지 않으면 1천 가지 처방과 1백 가지 약을 쓰더라도 도리어 진원(眞元)만 손상될 뿐 끝내 효험을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반정 이후로 조정에서 언제나 모든 용도를 절감하려고 힘써 왔지만 지금까지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요점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신이 듣건대 탁지(度支)의 세입이 그 수치가 9만에 불과한데 경용(經用)에 있어서는 항상 11만 이상이 소요되고 있으므로 탁지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재정을 늘려 모자란 2만의 수를 충족하여 경용비를 충당하려고 노력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역시 귀신이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니요 내내 색목을 바꾸거나 동에서 막고 서에서 보태고 하여 혹은 없는 속에서 있게 만들고 혹은 감했던 것을 다시 존속시켜 당연히 쌀을 내야 할 자에게 억지로 베를 내게 하고 당연히 베를 내야 할 자에게는 강압으로 쌀을 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관에서 강제로 정하고는 값이 싸지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값이 비싸지면 그것을 팔고 하므로 본색(本色)은 그대로 있는데 값은 이미 3곱으로 치솟아 한도 끝도 없이 불어만 가고 있으니, 백성들이 어떻게 궁핍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떻게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백성이 살고 못 살고는 탁지가 하기에 달려 있고, 탁지가 여유를 두느냐 조이느냐는 조정이 하기에 달린 것입니다. 참으로 그때그때 알맞은 제도를 써서 좋은 방법으로 바꾸어 나간다면 원망을 기쁨으로 바꾸어 놓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시기에 빨리 묘당과 탁지부 관원들로 하여금 중간에서 일을 주선하는 신료들과 함께 우선 세입과 경용의 수를 죽 뽑은 다음 그 중에서 급하지 않은 경용 또는 남아도는 인력을 모두 기록하여 잘 요리를 해서 거기에서 제거하도록 하소서. 경용 수치가 7만을 넘지 않도록 조종하고 몇 만 정도의 잉여를 남겨 국가의 비상 수요에 대비하게 하며 구차하고 근거없는 일들은 영원히 근절시키도록 하소서. 그리고 각도의 관창(官倉)도 차근차근 저장한 현황을 조사하여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권세 있는 사람이라도 가차없이 일체 받아들이고 견감해야 할 것은 모두 깨끗이 견감하여 백성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소 풍년이 들기를 기다려 그때 가서 우선 전지 측량을 하고, 다음으로 공안(貢案)을 바로잡아 부역이 균등하도록 하고 그리고 또 곳곳에 비어 있는 기름진 땅에다 둔전(屯田)을 많이 만들어 사람을 골라 나누어 맡긴 다음 거기에서 소출되는 곡식은 다과를 막론하고 모두 탁지에 귀속시켜 경비에 보태게 하여, 조세 이외에 더 받는 폭정을 없앤다면 공사를 막론하고 자연 저축이 여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국사에 부지런하고 직에 오래 있는 자를 살펴 혹 관질(官秩)을 올려 주기도 하고 혹 봉록(俸祿)을 배로 올리기도 하여 충성을 권면하고 노고에 대한 보상을 한다면, 관직에 있는 자도 자중의 마음을 가질 것이며 일을 맡은 자도 규피하려고 하지 않아 위아래가 서로 편안하고 백성들이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군대 양성 문제를 논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기꺼이 받아들였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20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325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재정(財政) / 농업-전제(田制) / 인사-관리(管理)
○副護軍金尙憲上箚略曰:
臣聞爲政之道, 貴乎先審其要。 爲政而不審其要, 則猶治病, 而不用對症之劑, 千方百藥, 反損眞元, 而終無食效之期。 反正之後, 朝廷每以裁省爲務, 而至今未見實效者, 無他, 不知其要故也。 臣竊聞, 度支歲入之數, 不過九萬, 而經用之費, 常過於十一萬, 故度支多方拮据, 務足二萬之數, 以供其費。 彼亦不能神設鬼辦, 徒自換色、易目, 東遮西架, 或無中生有, 或以減爲存, 當出米者强使出布, 當出布者强使出米。 自官勒定, 賤取貴售, 本色猶在, 而價已三倍, 轉輾增益, 無有窮已, 民安得不窮且怨也? 民情之舒慘, 度支使之也; 度支之寬窄, 朝廷使之也。 誠能因時制權, 善變得中, 則庶幾轉怨爲悅。 宜及此時, 亟令廟堂與度支之官, 會同幹事之臣, 先列歲入經費之數, 竝錄不急冗食之員, 善爲料理, 商加裁定, 使經費之數, 無過於七萬; 贏餘之蓄, 常足於數萬, 以備國家不時之需, 永絶苟且無據之事, 而諸道官倉之儲, 次第淸査, 可收者一切收入, 罔饒豪右; 可蠲者竝許蠲免, 與民推惠。 少待豐年, 先行量田, 次正貢案, 以均賦役, 且令所在閑曠膏腴之地, 廣設屯田, 得人分委, 其所得之穀, 無論多少, 盡屬於度支, 以佐經費, 而無稅外加額之暴, 則公私之蓄, 自有餘裕矣。 又察其勤於國事, 久於其職者, 或增官秩, 或倍俸祿, 以勸其忠, 以賞其勞, 居官者懷自重之心, 任事者無規避之圖, 上下相安, 民志不撓然後, 方可以論養兵之制矣。
上嘉納之。
- 【태백산사고본】 20책 20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325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재정(財政) / 농업-전제(田制)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