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귀가 성대훈의 탐장의 죄에 대해 아뢰다
판의금부사 이귀(李貴)가 상차하기를,
"법전의 유배하는 율(律)이 각기 차등이 있어, ‘유 삼천리(流三千里)’가 있고, ‘중도 부처(中道付處)’가 있고, ‘도년 정배(徒年定配)’가 있습니다. 도년은 중도 부처의 다음에 있으니, 먼 변방에다 정배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徒)’는 도역(徒役)을 말합니다. 때문에 조종조로부터 도역을 범한 자는 비록 서울에 사는 사람일지라도 조지서(造紙署)나 와서(瓦署)에 배정하거나 혹은 경기 내의 가까운 역(驛)에다 배정하였습니다. 근래에는 법을 집행하는 자가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에 따라 마음대로 조절해서 같은 도배(徒配)의 죄인데도 멀게 또는 가깝게 정배합니다. 신이 이에 대해 일찍이 탑전에서 진달하니, 하교하시기를 ‘어찌 도년(徒年)을 멀리 귀양보내는 일이 있겠는가.’ 하셨습니다. 신은 이 하교를 이미 들었으니 본부에 재직한 이후로는 한결같이 조종조의 법에 따라야 했는데도 고질적인 병폐를 갑자기 개혁하기 어려워서 도배의 죄인을 중도(中道)나 혹은 원도(遠道)에 법을 어기면서 정배해 보냈으니, 신 또한 죄가 있습니다.
이제 대간의 계사를 보니, 중도에 정배한 것을 가지고 도리어 본부 당상의 죄목으로 삼아 입계해서 추고를 청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만일 도역(徒役)으로 정하지 않고 멀리 중도에 정배한 것을 가지고 위법이라 한다면 가하겠지만, 성대훈(成大勳)이 사는 곳과 정배한 연풍(延豊)의 거리는 신이 실로 몰랐으며 설혹 알았다 하더라도 경기의 사람을 가까운 조지서나 와서에 정배하는 것에 비하더라도 1식(息)의 거리도 안 된다는 것은 역시 위법이 아닙니다."
하니, 답하기를,
"대간의 논의 중에 서변(西邊)에다 이배하라는 말은 지나쳤지만, 괴산 근처에다 정배한 것을 잘못이라고 한 것은 실로 합당하다. 그런데도 이렇게 허물을 엄폐하면서 쟁변하니 잘못이 아닌가."
하였다. 정언 구봉서(具鳳瑞)가 인피하면서 아뢰기를,
"죄인 성대훈은 탐장(貪贓)의 죄를 졌는데 감율(減律)하여 도년(徒年)으로 하였으니, 이는 비록 공으로 죄를 감해주는 뜻에서 나온 것이기는 합니다. 다만 이번에 금부에서 연풍에다 정배하였으니, 대훈의 본가가 괴산이고 괴산은 연풍과 불과 20여 리의 거리입니다. 죄인으로 하여금 고향과 지척인 곳에서 여유있게 노닐게 하였으니, 국가에서 법을 사용한 본의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감히 논계하여 서변으로 옮길 것을 계청하였던 것입니다.
근래에 보면 도년에 해당하는 죄인은 양서(兩西)에다 많이 정배하였는데, 대훈만 유독 연풍에다 정배한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설사 금부에서 무심코 편의에 따라 우연히 연풍에다 정배했다 하더라도 대간으로서는 의당 개정할 것을 청해야 하는데, 만일 털끝만큼이라도 대훈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면 너무나 형편이 없는 짓입니다. 더구나 대훈을 이배(移配)하라는 윤허를 받은 지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거행하지 않고서 종당에는 항의하는 차자로 변명하고 힐책하였으니, 이는 신들의 논한 바가 완전히 무시당한 것입니다. 언관의 자리에 있으면서 논한 말이 신임을 받지 못하였으니 형세상 직에 있기가 어렵습니다. 신의 직을 체차하소서."
하였는데, 대사간 정백창(鄭百昌)과 사간 권도(權濤)도 이로써 인피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이귀가 또 상차하여 아뢰기를,
"대간의 논의가 매우 합당합니다. 다른 당상으로 하여금 서변(西邊)으로 정배하게 하시되 먼저 신의 판의금(判義禁)을 체차하시어 과실을 엄폐하려는 자의 경계로 삼으소서."
하니, 상이 정원에 하교하기를,
"이귀가 아무리 공이 크지마는 역시 일개 신하이다. 임금에게 고하는 말이 이토록 질서가 없어서는 안 될 듯하다. 이 차자를 다시 내주고 판의금은 원하는 대로 체개(遞改)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62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309면
- 【분류】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壬辰/判義禁府事李貴上箚曰:
法典流配之律, 各有其等, 有流三千里者、有中道付處者、有徒年定配者。 徒年旣在中道之次, 則非邊遠定配可知。 且所謂徒者, 徒役也。 故自祖宗朝, 犯徒役者, 雖京城之人, 或定於造紙署、瓦署; 或定於畿內近驛。 近來執法者, 或以愛憎, 任意低昻, 徒配之罪一也, 而或遠、或近。 臣曾於榻前, 陳達此事, 則上敎曰: "豈有徒年, 而遠竄者乎?" 臣旣聞此敎, 冒忝本府之後, 所當一依祖宗朝法制, 而痼弊卒難革改。 徒配之人, 或中道、或遠道, 冒法定送, 臣亦有罪。 今見臺諫啓辭, 乃以中道定配, 反爲本府堂上罪目, 至於入啓請推。 若以不定徒役, 而遠配中道, 爲違法則可也, 成大勳所居與所配延豐, 道里遠近, 臣實不知。 設或知之, 若比之於京畿之人, 近配於造紙署、瓦署者, 則未滿一息, 亦非違法也。
答曰: "臺論中移配西邊之說雖過, 以槐山近處定配爲非者, 實當, 而如是文過爭辨, 無乃不可乎?" 正言具鳳瑞引避曰: "罪人成大勳, 以貪贓之罪, 減律徒年, 雖出於以功掩罪之意, 而今者禁府定配於延豐, 則大勳家本槐山, 槐山之距延豐, 不過二十餘里。 使負辜之人, 優游於故土咫尺之間, 大非國家用法之意, 故乃敢論啓, 請移西邊矣。 近見徒年罪人, 多配兩西, 而大勳之獨占延豐, 抑何意歟? 雖使禁府, 無心擇便, 偶定延豐, 爲臺諫者, 猶當請改。 若或一毫出於大勳之情願, 則無謂甚矣。 況大勳移配之事, 蒙允累日, 而尙不擧行, 終至於抗箚辨詰, 則是臣等所論, 不能爲有無於其間也。 身居言地, 言不見信, 勢難在職, 請遞臣職。" 大司諫鄭百昌、司諫權濤, 亦以此引避, 答曰: "勿辭。" 貴又上箚言:
臺論至當。 令他堂上定配西邊, 先遞臣判義禁, 以爲文過者之戒。
上下敎于政院曰: "李貴功勳雖重, 亦一臣子也。 告君之辭, 似不當如是無倫, 此箚子還出給, 判義禁, 依願遞改。"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62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309면
- 【분류】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