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조가 진법과 군졸의 기예에 대해 아뢰다
병조가 아뢰기를,
"이번에 바야흐로 조종조의 구규(舊規)에 의거하여 따로 무학 교수(武學敎授)를 설치하고 병서(兵書)를 인출하여 무사들을 가르침으로써 장수를 양성할 터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군졸을 교련하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면, 도감에서 훈련시키는 것은 단지 왜병을 막는 기술뿐이고 오랑캐를 막는 방책은 《연병실기(鍊兵實記)》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그 책까지 아울러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진법(陣法)의 경우는 우리 나라의 오방제(五方制)야말로 산천의 험난하고 평탄한 형세에 따라 임기 응변하여 기책(奇策)을 베푸는 것이니, 군졸로 하여금 그 방색(方色)을 완전히 알게만 하면 왜병이나 호병(胡兵)이나 모두 제압하는 데 안 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병조에서 장관(將官)들에게 능마아법(能磨兒法)069) 법을 가지고 시험을 보여 그 결과로 녹봉을 올리고 내렸으니, 이 또한 조종조의 구규였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의 장관이나 병사·수사 들은 전혀 진법을 알지 못해 군대를 행군시키거나 진을 칠 때 그저 기패관(旗牌官)의 입만 쳐다보고 있는 형편이니, 그러고서야 어떻게 임기 응변하고 기책을 내어 적을 제압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마땅히 우리 나라의 《제승방략(制勝方略)》에 한결같이 의거하여 무사 가운데 병법을 아는 자를 엄선해서 진법을 가르치게 하고, 그 근무태도를 고과에 반영하여 녹봉을 올리고 낮춤으로써 권장하는 여지를 마련하게 하소서.
군졸의 기예로 말하건대 우리 나라의 장기는 궁전(弓箭)이 최고인데, 편전(片箭)은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으로서 그 묘법(妙法)은 조총(鳥銃)에 뒤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단 조총을 사용하면서 편전은 전적으로 폐지되었는데, 사람들은 모두 새것만 좋아하고 옛것은 염증을 낸 나머지 이것은 버리고 저것만 취하고 있으니, 탄식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제 마땅히 과거를 보일 때마다 특별히 편전에 대한 시험도 보여 따로 상을 주기도 함으로써 나라 사람들이 모두 편전을 익히게 해야 할 것이니, 그렇게 되면 필시 많은 힘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전투이건 간에 승부는 모두 단병(短兵)으로 육박전을 벌이는 데에서 결판이 납니다. 그래서 사자(射者)·창자(槍者)·총자(銃者)·기자(騎者)가 모두 칼을 차고 있는데, 칼을 차고서도 그 기술을 모른다면 되겠습니까. 절강병(浙江兵), 왜병 그리고 호병을 보면 모두 검법을 알고 있는데, 육박전을 벌일 즈음에 네 가지 기예가 모두 쓸모 없어지게 되면 반드시 차고 있는 칼을 가지고 사생을 결단하려 덤빕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군령이 엄하지 못하여 접전해 볼 겨를도 없이 먼저 저절로 무너져버리고 말았으니, 검술이 전진(戰陣)에 그다지 관계가 없다고 여기게 된 것도 진정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선조(宣祖)께서는 그런 점을 아셨기 때문에 시위(侍衛)하는 장사(將士) 및 선전관들 모두에게 검술을 익히게 하고 그 성적을 고과하여 상과 벌을 내렸으므로 그 당시의 연소한 무인들은 모두 용병(用兵)하는 법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군(諸軍)이 검법을 모를 뿐만이 아니라 칼을 차고 다니는 자도 적고, 각 고을에서 군기(軍器)를 월과(月課)070) 할 때에도 조총만 비치해 놓았을 뿐 창이나 칼은 폐지하고 만들지 않으니, 지극히 애석한 일입니다.
《검법(劍法)》에 이르기를 ‘칼을 사용할 때에는 그 육체를 한덩어리로 결속시키고 담력과 용기를 단련시키기 때문에, 칼을 쓰는 자는 항상 살벌한 마음을 축적하게 되니 그 사람의 용기는 필시 보통 군사보다 배는 될 것이다.’ 하였는데, 이 말은 도감의 군사들에게서 증명해 보일 수 있습니다. 상번(上番)한 군사들 중에서 여력(膂力)이 뛰어나고 용감한 자를 뽑아 따로 부오(部伍)를 편성하고 도감의 포수 가운데 기예가 이루어진 자로 30인을 뽑아 교사를 정해 준 다음 검술을 가르치게 하여 정해진 기일 안에 입격한 자에 대해서는 한유(閑遊)케 하여 더욱 기예를 익히게 하는 한편, 월등하게 뛰어난 자에 대해서는 본조에서 별시(別試)를 보여 시상함으로써 나머지 사람들을 격려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퇴번(退番)할 때에는 따로 상첩(賞帖)을 지급하여 거주하는 고을로 하여금 호역(戶役)을 헤아려 덜어주게 하고, 상번할 때에 본조에서 다시 그 검술을 시험하여 그 동안의 숙련도를 고과하여 상벌을 실시하면 될 것입니다.
또 외방의 속오군(束伍軍)으로 편입된 군사의 경우는 따로 대오(隊伍)를 편성한 뒤, 평상시에는 여수(旅首)나 대정(隊正)으로 상번케 하고, 혹 위급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는 다시 여수나 대정으로서 인솔해 오게 하면, 봉족(奉足)이 있으면서 등록된 군사는 모두 전쟁에 임했을 때 가용병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니, 구차하게 충원하여 원한만 사는 경우와 비교해서 현격히 차이가 날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시위군사와 선전관, 그리고 내삼청(內三廳)의 무사 가운데에서도 건장하고 용감한 자를 뽑아 모두 검술을 익히게 하여 한결같이 선조조의 고사대로 해야 할 것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속오군 중에서 정군(正軍)을 덜어내어 대오를 편성하는 일은 체신(體臣)과 의논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294면
- 【분류】군사-군정(軍政)
○兵曹啓曰: "今者方依祖宗朝舊規, 別設武學敎授, 印兵書, 敎訓武士, 以爲養將之擧, 而以敎鍊軍卒之道言之, 都監所鍊, 只禦倭之技, 至於防胡之策, 則詳在《鍊兵實記》, 而竝與其書而亡之。 陣法則我朝五方之制, 因山川險夷, 臨機設奇, 使軍卒盡知其方色, 禦倭、制胡, 俱無不可。 故兵曹試將官以能磨兒之法, 以其能否, 高下其祿者, 亦舊規也。 近日將官、兵ㆍ水使之輩, 全不識陣法, 行師、排陣, 只仰旗牌官之口, 其何能應變出奇, 以禦敵哉? 今宜一依我國《制勝方略》, 極擇武士之知兵者, 使敎陣法, 而考其勤慢, 高下其祿, 以爲勸奬之地。 軍卒技藝, 則我國長技, 弓箭爲最, 而片箭非他國所能。 其妙法不下於鳥銃, 而旣用鳥銃, 專廢片箭, 人皆好新厭舊, 舍彼取此, 可勝歎哉! 今宜每科, 特出片箭, 或別加賞格, 使國人皆習片箭, 則得力必多。 且凡戰勝負, 皆決於短兵相接, 故射者、槍者、銃者、騎者, 皆帶劍, 旣帶其劍, 而不知其術, 可乎? 浙江 倭、胡, 皆知劍法, 及其薄戰, 四技皆盡, 則必以所帶劍, 決其死生。 我國軍令不嚴, 未及薄戰, 先自奔潰, 以劍術爲不關於戰陣者, 固其宜矣。 宣祖知其然, 故令侍衛將士及宣傳官, 皆習劍術, 考其勤慢, 以爲賞罰。 其時年少武人, 皆知用兵之法, 而今則諸軍非徒不知劍法, 帶劍者亦少, 各官月課軍器, 只備鳥銃, 而槍劍則廢而不造, 極可惜也。 劍法曰: ‘用劍之時, 固其筋骸之束, 而且鍊其膽勇, 故用劍者, 常蓄殺伐之心, 其人勇氣, 必倍於凡卒’ 云。 於都監之軍, 可驗此言。 上番軍士中, 抄其膂力强勇者, 別作部伍, 擇都監砲手之成才者三十人, 定爲敎師, 使之敎鍊劍術, 而限其日數, 限內入格者, 則使得閑遊, 益習其藝, 超等者, 本曹別試賞格, 以勸其餘, 而退番之時, 別給賞帖, 使其所居官, 量除戶役, 上番之時, 本曹又試其劍術, 以考勤慢, 而賞罰之。 且外方束伍中, 案付軍士, 則別作隊伍, 常時以旅首、隊正上番, 而脫有緩急, 又以旅首、隊正領來, 則有奉足案付之軍, 皆爲臨戰可用之卒, 比之於苟充取怨者, 則相去遠矣。 不特此也, 侍衛、宣傳官、內三廳武士中, 亦宜擇其壯勇者, 皆習劍術, 一依宣祖朝故事。" 答曰: "依啓。 束伍中除出正軍作隊事, 則議于體臣。"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294면
- 【분류】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