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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19권, 인조 6년 9월 15일 임신 1번째기사 1628년 명 천계(天啓) 8년

공청 병사 황해 감사 등이 군사 훈련과 한재의 피해에 대해 차대하다

상이 공청 병사(公淸兵使) 신경유(申景𥙿), 황해 감사 장신(張紳), 수원 부사 이시백(李時白), 벽동 군수(碧潼郡守) 장시헌(張時憲), 교동 현감(喬桐縣監) 이지천(李志賤), 장성 현감(長城縣監) 홍진문(洪振文) 등을 인견하였다. 상이 경유에게 하문하기를,

"다스리는 병사는 얼마나 되는가?"

하니, 경유가 아뢰기를,

"지난 무오년에 심하(深河) 전투에서 패한 뒤로 병적부를 개정하지 않았는데, 이괄(李适)의 난과 호란(胡亂)을 거치면서 상당히 많은 수가 흩어져 도망했는데도 아직까지 단속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숫자로 보면 도망하거나 유고(有故)인 자가 서로 반절쯤 되고 훈련 정도로 보면 제식동작도 알지 못하는 형편인데, 더구나 다른 것이야 말할 게 있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근래에 군사를 훈련시키는 문제에 있어서는 이미 병사(兵使)도 있고 또 영장(營將)도 있는데 이 모양이란 말인가?"

하니, 경유가 아뢰기를,

"이 병사들은 장수가 항상 데리고 있으면서 직접 지휘하는 병사가 아니고 한두 번 순회하며 교습시켜 일정치 않게 이동시키는 자들이니, 어떻게 훌륭한 병사로 훈련시키는 것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된 것은 영장의 죄가 아닙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호서(湖西)와 영남(嶺南)은 어느 쪽이 나은가?"

하니, 경유가 아뢰기를,

"호서가 영남만 못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황해도는 올해 한재(旱災)가 혹심하다 하는데, 보고 들은 것이 어떠한가?"

하니, 장신이 아뢰기를,

"연안(延安)과 배천(白川)이 더욱 심한데 산간 고을의 경우는 조금 곡식이 익었습니다. 지금은 강도(江都)에서 운반해 온 쌀로 진휼할 수 있습니다만, 내년 봄 종자 곡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 볼 계책이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또 하문하기를,

"관서(關西) 지방의 유민들이 다수 해서(海西)로 모여 들었다 하는데, 지금도 여전히 머물러 있는가?"

하니, 장신이 아뢰기를,

"전일에 흘러 들어온 자가 2천여 명이었는데 지금은 진휼하는 일이 이미 끝났으므로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굶어죽은 자는 없는가?"

하니, 장신이 아뢰기를,

"새 곡식이 이미 나와서 굶어죽은 자는 없는 듯합니다. 그러나 몸을 제대로 가릴 옷이 없으니, 앞으로 필시 얼어죽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국가에서 의지하고 있는 곳은 오직 안악(安岳)과 황주(黃州) 양 진(鎭)이다. 수비 대책은 어떠한가?"

하니, 장신이 아뢰기를,

"이번에 간신히 성랑(城廊)을 만들었습니다만 두 면이 매우 낮아 개축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걱정되는 것은 힘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일찍이 정충신(鄭忠信)의 말을 듣건대 성랑(城廊)을 성가퀴 밖으로 나오게 하지 않으면 적을 막는 데 불편하다고 하였다. 모르겠다만 이 말이 어떠한가?"

하니, 장신이 아뢰기를,

"그 말이 옳습니다. 입방군(入防軍)을 기다려서 개축하려고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사람들이 말하기를 ‘성 안에 우물이나 샘이 많지 않다.’고 하는데, 어떠한가?"

하니, 장신이 아뢰기를,

"우물이나 샘은 파서 마실 수 있습니다만 현재 군대에 먹일 양식이 없는 점이 매우 우려됩니다. 해서의 전세(田稅)는 모두 관서로 들여 보냈기 때문에 다시 군량을 지급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본도의 세를 덜어내 주기를 청했던 것인데, 해조에서 어떻게 품처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매우 온당한 말인 듯하다마는 현재 관서의 급한 처지를 돌보느라 다른 데에는 여유가 없는 형편이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성을 지키려면 반드시 백성들로 하여금 부모 처자와 함께 모두 성에 들어가게 한 뒤에 죽을 힘을 내어 싸우게 하는 계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하니, 장신이 아뢰기를,

"서흥 산성(瑞興山城)수양 산성(首陽山城)에 대해 모두들 형세가 좋다고 하는데, 다만 백성들이 들어가고 싶어하는 곳은 구월 산성(九月山城)과 장수 산성(長水山城) 두 곳입니다. 그래서 지금 백성들의 소원대로 이곳을 먼저 수축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백성들이 모두 마음속으로 산성에 들어가 지키고 싶어하는가?"

하니, 장신이 아뢰기를,

"그렇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이것이야말로 정봉수(鄭鳳壽)가 용골 산성(龍骨山城)을 사수했던 본보기라 할 것이다. 해서 지역은 지난해에 병화를 입은데다가 올해 기근까지 겹쳤으니, 경이 아니고서는 진정시킬 수가 없다. 가서 직무를 잘 수행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289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군사-군정(軍政) / 군사-군역(軍役) / 과학-천기(天氣) / 구휼(救恤) / 농업-권농(勸農)

    ○壬申/上引見公淸兵使申景𥙿黃海監司張紳水原府使李時白碧潼郡守張時憲喬桐縣監李志賤長城縣監洪振文等。 上問景𥙿曰: "治兵幾何?" 景𥙿曰: "往在戊午, 敗沒于深河者, 不改其籍, 亂、變散亡頗多, 尙不團束。 以數則逃故相半, 以技則不知坐作進退, 況其他乎?" 上曰: "近者治兵, 旣有兵使, 又有營將, 而乃如此耶?" 景𥙿曰: "此非手下恒留之卒, 不過一二番巡歷敎習, 作輟無常, 何望鍊材? 此非營將之罪也。" 上曰: "湖西與嶺南孰勝?" 景𥙿曰: "不如嶺南。" 上曰: "黃海道今歲旱災甚酷, 所聞見何如?" 曰: "延白尤甚, 山郡則稍稔矣。 以所運江都之米, 今可賑救, 而明春種、糧, 計無所出。" 上又問: "關西流民, 多聚海西云, 今尙仍留乎?" 曰: "前日流來者二千餘人, 而今則賑救已罷, 故不知其多寡矣。" 上曰: "其無餓死者乎?" 曰: "新穀旣出, 似無餓死者, 而但衣不能掩體, 必將凍死矣。" 上曰: "國家所恃者, 惟兩鎭, 備禦之具如何?" 曰: ‘今者僅作城廊, 而二面甚低。 當改築, 而所患者力不足也。" 上曰: "曾聞鄭忠信之言, 使城廊不出於墻堞之外, 不便於禦敵云, 未知如何。" 曰: "此言是也。 當待入防軍, 欲改築矣。" 上曰: "人說城中井泉不多云, 如何?" 曰: "井泉則可鑿而飮, 軍無見糧, 此甚可憂。 海西田稅, 盡入關西, 故更無給餉之路。 不得已請除出本道之稅, 未知該曹, 何以稟處也。" 上曰: "似甚便當, 而方副急於關西, 不遑他矣。" 上曰: "城守之策, 必使斯民, 與父母、妻子俱入然後, 可驅而戰之矣。" 曰: "瑞興山城首陽山城, 皆云形勝, 而但民之願入者, 九月長水兩山城, 故今先修築者, 蓋從民願也。" 上曰: "民情皆欲入守山城乎?" 曰: "然。" 上曰: "是則鄭鳳壽 龍骨死守之驗也。 海西一道, 前年被兵, 今年阻飢。 非卿無以鎭之, 往欽哉!"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289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군사-군정(軍政) / 군사-군역(軍役) / 과학-천기(天氣) / 구휼(救恤) / 농업-권농(勸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