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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19권, 인조 6년 8월 17일 을사 1번째기사 1628년 명 천계(天啓) 8년

양사에서 흉재에 대해 변통하는 일로 합계하다

양사가 합계(合啓)하기를,

"국가가 불행하여 겨우 병화(兵禍)를 겪고 나자 곧바로 전에 없던 흉재(兇災)를 만났으니, 진실로 크게 경동시키고 대대적으로 변통하는 일을 거행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백성을 구제하며 나라 일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묘사(廟社)에 악무(樂舞)를 쓰는 것은 사체상 지극히 중대하니 참으로 경솔하게 의논할 수 없는 일이긴 합니다만, 형세에는 완급(緩急)이 있고 일에는 경권(經權)이 있는 법입니다. 백성이 있고 나서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묘사도 있는 법이니, 그저 상례(常例)만을 고수하며 변통하는 의리를 생각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임진 왜란 후로 묘사에 음악을 폐지한 것이 10여 년이나 되었으니, 이 일을 어찌 오늘날 본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이 안정될 동안만큼은 임시로 묘사에 악무를 폐지하고 적당히 악공(樂工)과 악생(樂生) 등에게 베를 거두어 군수(軍需)에 보충하게 하소서.

삭선(朔膳)을 진상하는 문제는 현재 2개월에 한 번씩 제도(諸道)가 돌아가면서 하기로 하였으나 폐단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 혜택이 아래에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 삼명일(三名日)에 방물(方物)을 진상하는 제도가 올해부터 다시 시행된다고 합니다. 몇 년 기한으로 삭선을 완전히 감면하는 동시에 삼명일의 방물도 임시로 폐지하여 백성의 힘을 펴게 하소서.

지난번 비국의 계사로 말미암아 양서 내노비(內奴婢)의 신공(身貢)을 작미(作米)하여 보태 쓰도록 한 것은 정말 큰 은혜를 내린 것이었습니다. 해서(海西)의 갈밭[蘆田]과 어염(魚鹽)의 수세(收稅) 역시 묘당의 계사대로 우선 관에 소속되게 하소서.

늠료(廩料)를 줄이자는 것은 녹봉을 중시하는 뜻이 아니기는 하지만, 묘향(廟享)이나 어공(御供)까지도 모두 감하는 오늘날을 당하여 녹봉만 옛날 그대로 둘 수는 없는 일입니다. 4품 이상의 녹봉을 해조로 하여금 적당히 감하게 하소서.

사옹원에서 사기(沙器)를 구워 만드는 일은 1년 정도 정지한다 해도 쓰기에 부족하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일 역시 몇 년 한도로 폐지하고 그 비용으로 진휼하는 일에 옮겨 쓰도록 하소서.

공조에 기인(其人)이 바치는 비용이 엄청나 폐단이 막중한데, 평소에 비해 얼마나 소용이 될지도 모르는 판에 값은 몇 배나 뛰어 올랐다 합니다. 지금은 원수(元數) 가운데 먼저 근수(斤數)를 감하고 그 다음 가격을 내리도록 하여 눈 앞에 닥친 위급함을 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의사(醫司)에 바치는 공물의 명목이 가장 많습니다. 삼가 듣건대 지난해 대동법(大同法)을 마련할 때에 양 의사에서 가미(價米)로 환산해 정한 액수가 거의 5천 석에 달했다 하는데, 현 시가로 공물을 상정(詳定)한 액수로 따지면 필시 1만여 석을 밑돌지 않을 것이니, 이것으로 추산할 경우 타사(他司)는 어떠한지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어떻게 한 번 변통하는 일도 없이 제멋대로 낭비하게 함으로써 이 백성이 폐해를 받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전일에 심열(沈悅)이 차자를 올리면서 의사의 공물을 폐지하도록 건의했던 것이 실로 합당한 의견이었는데 끝내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납부할 1만 석 가운데 1천여 석의 쌀을 덜어내어 제사(諸司)에서 쓸 약의 자본금으로 나눠 주고 그 나머지는 진휼 대비 기금으로 전용(轉用)케 하소서.

태복시의 초가(草價) 및 둔전(屯田)에 들일 제원(諸員)의 가포(價布) 등 물품 액수가 매우 많은데 결과적으로 모두 낭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공감에서 갈대를 베어가는 일이 기전(畿甸)의 막중한 폐단이 되고 있으므로 현재 변통할 계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들은 듯합니다마는, 이런 일들에 대한 결말은 으레 흐지부지하게 끝나기 십상입니다. 이 일 모두에 대해 묘당으로 하여금 요량껏 처리하여 선처하게 하소서.

이상 10개 조목은 크고 작은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오늘날 처리해야 할 급선무에 관계되는 사항이니, 깊이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시어 통쾌하게 단안을 내리소서."

하니, 상이 묘당에게 명하여 의논해 처리하도록 하였다. 회계하기를,

"합계에서 논한 것은 10개 사항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묘악(廟樂)을 잠정적으로 폐지하자는 한 조목은 일찍이 윤황(尹煌)의 서계를 인하여 본사가 이미 계품하였습니다. 삼명일의 방물은 계해년 이후로 지난해 동지 때까지 혹 군기(軍器)에 보충해 쓰기도 하고 혹 예에 따라 봉진(封進)하기도 하였으며 혹 작미하여 중국 사신 일행의 수요에 보충하기도 하고 혹 호변(胡變)으로 인하여 완전히 감면하기도 하였습니다. 올해는 변란 때보다도 훨씬 사정이 어려우니 그대로 감면하여 물력이 조금 완전해질 때를 기다리는 것이 마땅할 듯싶습니다.

내노비의 신공은 ‘자전에게 품하여 처리하자.’는 하교가 계셨으니, 그저 품정하기를 공손히 기다려야 마땅합니다. 갈밭과 어염의 세금 문제 역시 이미 진계하였으나 아직 윤허를 받지 못한 상태인데 감히 다시 아뢰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공과 제향 등 물품을 이미 모두 감한 판에 백관의 녹봉만 옛날 그대로 놔둘 수는 없으니, 해조로 하여금 적당히 감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사옹원의 사기는 1년 동안 구워 만든 것으로 몇 년을 지탱할 수 있으니 역시 우선 제작을 중단하고 그 비용을 진휼하는 데에 옮겨 쓰는 것이 마땅합니다. 기인(其人) 문제는 현재 상의 중이니 결말이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양 의사의 공물에 대해서는 심열 역시 일찍이 폐지할 것을 건의했습니다. 그러나 의약이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물건으로서 전의감(典醫監)은 상사(上司)와 각 아문에 제공하는 약을 전담하고 혜민서(惠民署)는 온 나라의 백성을 치료할 책임을 전담하고 있습니다. 양 의사에 1년당 지급해야 할 액수는 미곡 3천 20석 5두와 목면 58동(同) 16필(匹)로서, 계사에서 납입액을 1만 석이라고 한 것은 잘못 들은 것일 따름입니다. 이 문제는 해조로 하여금 양 의사의 제조와 상의하여 처리하도록 해야 합니다.

태복시의 초가(草價) 등 물건에 대해서는 이미 의계하였고, 선공감에서 갈대를 베어가는 일은 경기 감사 최명길의 장계로 인하여 역시 이미 중지시켰습니다. 삭선(朔膳)에 대해서는 우선 임시로 중지하고 풍년이 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온당하겠습니다마는, 항상 어공하는 물품을 감하라고 청하는 것도 매우 미안한 일입니다. 모두 재결하시기에 달렸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그 가운데 삼명일의 방물은 다시 시행하도록 했다만 지금 다시 감면하도록 하고, 대비전과 각전의 경우는 내년을 기한으로 완전히 감하도록 하라. 그리고 옛말에 ‘충신(忠信)한 자에게는 녹봉을 후히 준다.’고 하였는데, 요즈음 들어 백관의 녹봉을 이미 줄였으니 지금 다시 감할 수는 없다. 대비전의 삭선과 선왕 후궁의 별선(別膳)은 감하지 말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283면
  • 【분류】
    예술-음악(音樂) / 수산업-어업(漁業) / 농업-전제(田制) / 신분-중인(中人) / 신분-천인(賤人) / 정론-정론(政論) / 구휼(救恤) / 군사-병참(兵站) / 재정(財政) / 왕실-궁관(宮官) / 수산업-염업(鹽業)

    ○乙巳/兩司合啓曰: "國家不幸, 纔經兵禍, 旋遭無前之凶災。 苟不爲大警動、大變通之擧, 則其何以求生民, 而濟國事乎? 廟社樂舞, 事體至重, 誠有未可輕議者, 然勢有緩急, 事有經權。 有民然後有國, 有國然後有廟社。 尙可膠守常禮, 不思變通之義乎? 壬辰亂後, 廟社撤樂者十餘年, 豈非今日所當法者乎? 請限事定間, 權罷廟社樂舞, 量宜收布於樂工、樂生等, 以補軍需。 朔膳進上, 今方間朔, 輪回於諸道, 而弊未盡袪, 惠未下究, 三名日方物, 自今年復進云。 請限年全減朔膳, 亦權罷三名日方物, 以紓民力。 頃因備局啓辭, 以兩西內奴之貢, 許令作米補用, 甚大惠也。 海西蘆田及魚鹽收稅, 亦依廟堂啓辭, 姑令屬官。 減損廩糈, 雖非重祿之意, 而當此廟享、御供亦皆裁減之日, 獨不可仍舊。 自四品以上俸祿, 令該曹量減。 司饔院沙器燔造之役, 雖寢一年, 不至乏用。 亦宜限年停罷, 以其所費, 移用於賑救。 工曹其人, 費鉅、弊重。 該用多少, 比平時未知如何, 而價則倍蓰云。 今宜就元數中, 先減斤數, 次減價直, 以救目前之急。 醫司貢物, 名目最多。 竊聞往年大同磨鍊時, 兩醫司價米折定之數, 幾至五千石云。 當時貢物詳定之價, 必不下萬餘石, 以此推之, 他司可知。 豈可無一番變通, 任其浪費, 使斯民受其弊乎? 頃日沈悅箚中, 請罷醫司貢物, 實有意見, 而終不見施。 宜以該納萬石, 捐千餘石之米, 分作諸司用藥之資, 推其餘, 以備賑飢。 太僕之草價及屯田所入諸員價布等物, 其數極多, 而皆歸浮費。 繕工刈薍, 爲畿甸莫重之弊。 似聞方有變通之議, 而此等結末, 例無實著。 幷令廟堂, 一體料理善處。 凡玆十條, 雖有大小、輕重之分, 在今日皆係急務, 請深思長慮, 夬賜聖斷。" 上命廟堂議處。 回啓曰: "合啓中, 所論者十條, 而其中權罷廟樂一款, 曾因尹煌書啓, 本司旣已啓稟。 三名日方物, 則癸亥以後, 至于上年冬至, 或補用於軍器, 或依例封進, 或作米以補天使時所需, 或因變全減。 今年大無, 甚於變亂, 似當仍減, 以待物力稍完。 內奴身貢, 則有稟慈殿以處之之敎, 只當恭竢稟定。 蘆田及魚鹽之稅, 亦已陳啓, 而未得蒙允, 不敢更瀆。 御供、祭享等物, 旣皆裁減, 百官祿俸, 獨不可仍舊, 宜令該曹量減。 司饔院沙器, 一年燔造, 可支數年, 亦姑停罷, 以其所費, 移用於賑救。 其人則今方商議, 宜待結末。 兩醫司貢物, 則沈悅亦曾請罷, 而醫藥是活人之物, 典醫監則專爲上司、各衙門所供之藥, 惠民署則專爲救一國內外之民, 而兩醫司一年應給之價, 米三千二十石五斗、木五十八同十六匹, 啓辭中所謂該納萬石, 特誤聞耳。 且令該曹與兩醫司提調, 相議以處。 太僕草價等物, 旣已議啓。 繕工刈薍事, 則因京畿監司崔鳴吉狀啓, 亦已停當。 至於朔膳, 則姑宜權罷, 以待豐年, 而每請裁減御供之物, 亦甚未安, 竝惟睿裁。" 答曰: "依啓。 其中三名日方物, 雖令復設, 今可更減, 大妃殿、各殿, 則限明年全減。 且古語曰: ‘忠信重祿。’ 近者百官俸祿, 曾已省減, 今不可更減。 大妃殿朔膳及先王後宮別膳, 勿減。"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283면
    • 【분류】
      예술-음악(音樂) / 수산업-어업(漁業) / 농업-전제(田制) / 신분-중인(中人) / 신분-천인(賤人) / 정론-정론(政論) / 구휼(救恤) / 군사-병참(兵站) / 재정(財政) / 왕실-궁관(宮官) / 수산업-염업(鹽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