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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19권, 인조 6년 7월 29일 무자 3번째기사 1628년 명 천계(天啓) 8년

유백증이 한재를 구제하는 대책을 아뢰다

병조 참의 유백증(兪伯曾)이 유지에 응하여 상소하기를,

"올해의 한재(旱災)는 근고(近古)에 없던 일인데, 공사간에 저축된 것이 남김없이 고갈되어 곡식을 운반해 올 곳도 없고 또 곡식을 무역할 길도 없으니, 위에서 덜어 아래를 보충해 주는 방법 외에는 전혀 다른 계책이 없습니다. 신이 삼가 듣건대 내탕(內帑)의 저장량도 충분치 않다 하니, 전량(全量)을 나누어 준다 하더라도 어떻게 기민(飢民)들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임금이 자기의 사재(私財)를 털어 나라 살림에 보태 쓰게 한다면 이보다 더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원하건대 내탕의 사재를 유사(有司)에게 주어 기민을 진휼하는 데 쓰게 하거나 군국(軍國)의 수요에 보탬이 되게 하소서. 그러면 온 나라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며 말하기를 ‘우리 임금께서 재물을 자기 소유로 하지 않고 이처럼 백성을 사랑하신다.’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로 말미암아 한 세상이 용동되어 국가의 근본이 흔들리지 않게 될 것이니,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어공(御供)하는 물품도 이미 줄이게 하였으니 지금 또 감히 줄이라고 말씀은 못드리겠습니다마는, 건장(乾獐)이나 건치(乾雉)같은 음식물도 모두 입에 가까이하셔서는 안 됩니다. 전하께서는 마땅히 스스로 헤아리시어 감할 것은 감하시고 놔둘 것만 놔두소서. 그러면 백성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것입니다.

해서(海西) 지방의 갈밭이 자전(慈殿)에게 소속되어 있고 어염(魚塩)의 지역이 궁가(宮家)에 하사된 곳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병란이 일어나고 흉년이 든 때를 당하여 어찌 혁파해서 백성에게 돌려 주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지난해 대간이 몇 개월에 걸쳐 논집(論執)하였으나 여태 윤허를 받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말하기를 ‘달성위(達城尉)·해숭위(海嵩尉)·동양위(東陽尉) 세 분은 모두 명문의 자제들이시니 자기들이 받은 땅을 국가에 다시 반환할 것이 틀림없다.’ 하였는데, 끝내 그렇게 하였다는 소문은 들리지 않으니 재리(財利)에 초연하기가 이토록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전하께서 만약 완곡한 말씀과 명랑한 모습으로 자전께 청하신다면 자전께서 어찌 윤허하지 않으실 리가 있겠습니까. 자전께서 일단 윤허하시고 나면 어염에 대한 일을 차례로 거행하면 되는 일이니 제 궁가에서 어떻게 감히 원망하는 소리를 내겠습니까.

신은 이어 생각건대, 조정에 뭇 현인들이 모두 모여 있는데, 그 중에는 재질과 직책이 서로 걸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예컨대 이서(李曙)는 총명하고 다재 다능하며 국가의 일에 발벗고 나서지만 일을 너무 번쇄하게 처리해 군정(軍情)을 크게 잃고 있으며, 신경진(申景禛)은 위엄과 명망이 평소에 드러나고 침착하며 재략이 있지만 아랫사람들의 마음을 몰라 주어 군사들이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기보(畿輔)의 군대를 거느리거나 연곡(輦轂)의 군사를 맡고 있을 때 불행히 변이라도 있게 되면 힘을 쓸 수 없을 듯하니,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지금 이런 때에 선처하소서.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계책이 아니며 이는 대체로 나라를 위해 자기가 원망을 떠맡으려는 충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척리(戚里)를 특명으로 임명하시는 것에 대해서 송상인(宋象仁)이 논한 것은 전연 다른 의도가 없는데 전하께서는 자기와 다른 사람을 배격하는 행위라고 하셨고, 수령들이 과도하게 선물하는 행위는 금해야 마땅하다고 권도(權濤)가 탄핵한 것은 실로 아무 뜻 없이 한 것인데, 전하께서는 그가 대신을 침해하는 것이나 아닌가 의심하셨습니다. 이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청렴 결백을 신조로 어떤 경우든 흔들리지 않는 인물이며, 또 한 사람은 강개하고 정직한 기풍의 소유자로 어떤 위세에도 굴하지 않는 인물인데, 조정에 용납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 이 두 사람을 불러 삼사(三司)에 두신다면, 관원의 사악한 행위를 규핵(糾劾)하여 잘못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였는데, 상이 답하기를,

"상소를 보고 잘 알았다. 내가 매우 가상하게 생각한다. 상소의 내용은 시행하도록 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6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281면
  • 【분류】
    인사(人事) / 수산업-어업(漁業) / 정론-정론(政論) / 재정-상공(上供) / 재정-국용(國用) / 구휼(救恤) / 군사-병참(兵站) / 농업-전제(田制)

    ○兵曹參議兪伯曾, 應旨上疏曰:

    今年旱災, 近古所無。 公藏私蓄, 蕩盡無餘, 旣無移粟之處, 又無貿穀之地。 損上益下之外, 頓無他策。 臣伏聞內帑之藏, 其數不敷。 雖或盡散, 何能徧及於飢民? 但人君散其私財, 以爲國用, 則感動民心, 莫過於此。 願以內帑之財, 歸之有司, 或用於飢民之賑, 或補於軍國之需, 則八方之民, 皆欣欣然曰: "吾君之不私其財, 而能愛民如此。" 由是而一世聳動, 邦本不搖矣, 豈不美哉? 御供之物, 曾已蠲減, 今不敢又請裁損, 如乾獐、乾雉等物, 皆不可近口者也。 殿下宜自量度, 可減者減之, 可存者存之, 則民受實惠矣。 海西蘆田, 雖曰慈殿所屬; 魚鹽之地, 雖曰宮家所賜, 當此兵興、歲飢之時, 安可不革罷, 而歸之民哉? 往年, 臺諫累月論執, 未得蒙允。 人皆以爲: "達城海嵩東陽三㷉, 皆名父之子也, 必將其所受之地, 還入於國家", 而竟無所聞, 恬於財利之難, 有如是夫! 殿下若以婉辭、愉色, 請於慈殿, 則其有不許之理乎? 慈殿旣許, 則魚鹽之事, 當次第擧行, 諸宮家豈敢出怨言乎? 臣仍念, 朝廷之上, 群賢畢集, 而人器或不相稱。 如李曙, 聰敏多才, 赤心循國, 而作事煩瑣, 大失軍情。 申景禛, 威望素著, 沈毅有略, 而下情不通, 士心未附。 此兩人, 或摠畿輔之軍, 或典輦轂之兵, 不幸有變, 則恐不得力。 伏願殿下, 及此時而善處焉。 言人之所不言, 非爲身謀, 蓋出於爲國任怨也。 戚里除拜, 出於特命, 則宋象仁論之, 斷無他意, 而殿下以爲排擊異己; 守令善事, 在所當禁, 則權濤劾之, 實出無情, 而殿下疑其侵及大臣。 此兩人, 或淸白自守, 確乎不拔; 或慷慨正直, 不畏强禦, 而不容于朝, 誠可惜也。 伏願殿下, 召此兩人, 置之三司, 則必能糾劾官邪, 補過拾遺矣。

    上答曰: "省疏具悉。 予甚嘉尙。 疏辭當施行焉。"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6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281면
    • 【분류】
      인사(人事) / 수산업-어업(漁業) / 정론-정론(政論) / 재정-상공(上供) / 재정-국용(國用) / 구휼(救恤) / 군사-병참(兵站) / 농업-전제(田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