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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18권, 인조 6년 2월 13일 을사 1번째기사 1628년 명 천계(天啓) 8년

역적 출신지 읍호를 강등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처리하다

이조가 아뢰기를,

"역적이 살던 곳의 수령을 파직시키고 읍호(邑號)를 강등시키는 일에 관해서 금부가 조사하여 기록해서 본조에 이문(移文)하였습니다. 전 충주 목사 이식(李植), 죽산 부사(竹山府使) 정문익(鄭文翼), 평산 부사(平山府使) 이일원(李一元), 용인 현령(龍仁縣令) 이위국(李緯國), 진천 현감(鎭川縣監) 홍무적(洪茂績), 양지 현감(陽智縣監) 이후배(李厚培) 등은 모두 승전(承傳)에 의거 조처하였습니다. 그리고 충주목충원현(忠原縣)으로 강등시켰는데 죽산부·평산부·용인현도 모두 마땅히 현감으로 강등시켜야 합니다. 또 역적 조헌립(趙憲立)은 양지현 사람이고 임덕발(林德發)은 진천현 사람이니 이 두 고을은 법에 있어 당연히 개혁해야 합니다. 그러나 생각건대 양지는 일로(一路)의 역참(驛站)이 있는 곳이고 진천은 인물이 많고 지역이 넓어 본디부터 암읍(巖邑)으로 일컬어진 곳이어서 다른 고을과 합병시키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법전에 관계된 일이므로 해조에서 감히 청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 역적들이 우거하고 있던 고장은 전에 공사(公事)를 복계(覆啓)하면서 분간하여 조처해 달라는 뜻으로 진달하여 이미 윤허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정배시킨 곳으로 말하면 우거했던 곳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똑같이 시행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감히 이것도 아울러 여쭙니다."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양지 등 고을에 대해서는 대신과 의논하여 처치하라."

하였다. 해창군(海昌君) 윤방(尹昉)과 삼공이 모두 아뢰기를,

"양지·진천 두 고을은 혁파할 수 없는 것이 진실로 해조가 아뢴 내용과 같은 것으로서 혁파하지 않는 것이 온당하겠습니다."

하니,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18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257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사법-치안(治安)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변란-정변(政變)

    ○乙巳/吏曹啓曰: "以逆賊所居, 罷其守令, 降其邑號事, 禁府査實開錄, 移文本曹矣。 忠州前牧使李植竹山府使鄭文翼平山府使李一元龍仁縣令李緯國鎭川縣監洪茂績陽智縣監李厚培等, 竝依承傳, 忠州牧降爲忠原縣竹山府平山府龍仁縣, 皆當降爲縣監矣。 且逆賊趙憲立, 是陽智人; 林德發, 是鎭川人。 此二縣, 於法當革, 第念陽智, 路傍當站之邑; 鎭川物衆地大, 素稱巖邑, 似難合倂他官, 而係干法典, 該曹不敢上請。 此外諸賊流寓之鄕, 曾因覆啓公事, 敢陳分揀之意, 已蒙允下。 至於定配之地, 比之寓居, 亦似有間, 似當一體施行。 敢此竝稟。" 答曰: "依啓。 陽智等邑, 議大臣處置。" 尹昉及三公皆以爲: "陽智鎭川兩邑不可革, 誠如該曹啓辭, 勿革爲當。" 從之。


    • 【태백산사고본】 18책 18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257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사법-치안(治安)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변란-정변(政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