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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17권, 인조 5년 10월 4일 정유 2번째기사 1627년 명 천계(天啓) 7년

정충신이 중국인의 방화로 관사와 여염집이 많이 불탔다고 보고하다

정충신(鄭忠信)이 치계하였다.

"척후장(斥候將) 박덕건(朴德健)의 첩보(牒報)에 ‘의주(義州)로부터 강변의 진보(鎭堡)를 낱낱이 살펴 보았는데, 중국인의 방화로 관사와 여염집이 참혹하게 불타 남아 있는 것이 적었고, 창성(昌城)에 이르니, 곡승은(曲承恩)의 병사 6명이 성안에 주둔해 있었는데, 승은은 군사 9백여 명을 이끌고 운두리보(雲頭里堡)에 주둔해 있다고 하였다. 창주(昌洲)의 동문(東門)이 불탔으나 관사는 그대로 있었고, 벽단진(碧團鎭)은 성안의 여염집이 반이나 진달(眞㺚)에 의해 불탔다.’고 하였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229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 / 외교-명(明)

    鄭忠信馳啓曰: "斥候將朴德健牒報以爲: ‘自義州歷審江邊鎭堡, 則官舍、閭閻, 酷被唐人焚燒, 所存者少。 到昌城, 曲承恩兵丁六人, 住在城中, 承恩則率兵九百餘人, 屯在雲頭里堡云。 昌洲東門被燒, 而官舍則如前, 碧團鎭城中閭家, 半爲兵焚燒’ 云。"


    •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229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