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가 이인거 등을 잡았다고 장계하다
홍보가 또 치계하였다.
"이달 29일 본주의 군병을 모아 중군(中軍) 신경영(辛慶英)을 좌영장(左營將)으로, 전 사과(司果) 원극함(元克咸)을 우영장(右營將)으로, 전 현감 이윤남(李胤男)을 중영장(中營將)으로 삼아 군병을 나누어 주었으며, 신은 계원군(繼援軍)을 이끌고 횡성 현감 이탁남과 함께 30일 일시에 진군하였습니다. 역적의 괴수 이인거의 부하 고찬(高瓚)은 본현의 군사 70여 명을 거느리고 읍내 동쪽 고개에 진을 치고, 고계립(高繼立)과 고대립(高大立)은 현 안의 사람들을 많이 모아 읍내 동북쪽에 진을 치고는 포(砲)와 화살을 쏘며 저항하였습니다. 관군이 죽음을 무릅쓰고 곧바로 진군하자 적이 흩어져 도망쳤으므로 다 붙잡지 못하였으나, 적역의 괴수와 그의 아들 이신백(李新白)·이자백(李自白), 그리고 함께 반역한 장관(將官) 고찬·김득명(金得命)·고계립(高繼立)·고대립(高大立)·김여약(金汝鑰) 등 8인과 군병(軍兵) 윤이(尹已) 등 16인과, 인거의 손자 사위 진광흡(陳光洽)과 고찬의 매부(妹夫) 강몽호(姜夢虎) 등을 함께 잡아 묶어 단단히 가두고 조정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229면
- 【분류】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
○洪靌又馳啓曰: "本月二十九日聚本州兵, 以本州中軍辛慶英爲左營將, 前司果元克咸爲右營將, 前縣監李胤男爲中營將, 分授軍兵, 臣則領繼援軍, 與橫城縣監李擢男, 三十日一時進兵。 逆魁李仁居部下高瓚, 率本縣兵七十餘名, 結陣於邑內東嶺, 高繼立、高大立等, 則多聚縣內之人, 結陣於邑內東北邊, 放砲發矢。 官軍冒死直進, 賊乃潰散, 不得盡捕, 而逆魁及其子新白、自白, 同逆將官高瓚、金得命、高繼立、高大立、金汝鑰等八人, 軍兵尹己等十六人, 仁居孫壻陳光洽、高瓚妹夫姜夢虎等, 竝得縛取堅囚, 以待朝廷命令" 云。
-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229면
- 【분류】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