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목사 홍보도 전 익찬 이인거의 역모를 상변(上變)하자, 그 대책을 세우다
원주 목사 홍보(洪靌)가 치계하기를,
"이달 26일, 신이 감사 최현(崔晛)을 따라 횡성현에 갔는데 현에 사는 전 익찬 이인거가 와서 감사에게 ‘내가 소를 올리고자 한다.’ 하므로 감사가 ‘상소하고자 하는 것이 무슨 일인가?’ 하니, 인거가 ‘조정에서 노적(奴賊)과 화친하므로 의병을 일으켜 곧바로 서울로 향하여 화친을 주장하는 간신 한 사람의 머리 베기를 청하고 그대로 서쪽으로 가서 적을 토벌하겠다.’ 하였습니다. 감사가 ‘그렇다면 서쪽으로 간 후에는 곧바로 오랑캐의 소굴을 치겠다는 것인가?’ 하니, 인거가 ‘소굴에 들어갈 수는 없다.’ 하자, 감사가 ‘적은 이미 철수해 돌아갔는데, 어느 적을 치고자 하는가?’ 하니, 인거는 답하지 않고 잠시 후 물러갔습니다. 28일 아침에 감사가 홍천(洪川)으로 출발하였는데, 그때 신이 횡성 현감 이탁남(李擢男)과 같이 인거를 찾아가 보니, 인거가 상소문의 초안을 내 보였는데 고약한 말이 많았습니다. 감사가 ‘군사는 어디에 있으며 몇 명이나 모집하였는가?’ 하니, 인거가 ‘수백여 명을 모집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감사가 신과 횡성 현감에게 자세히 탐지하여 치보하도록 하였는데, 신은 즉시 관아로 돌아와 장관(將官)에게 명령하여 군사를 모아 변에 대비하게 하였습니다.
29일, 횡성 현감 이탁남이 달려와 ‘이인거가 제멋대로 본현의 장관·출신(出身) 등에게 전령하여 군병(軍兵)을 모으고 있다.’고 하였으니, 인거가 역모한 형상은 명백하여 의심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신이 이탁남과 군마(軍馬)를 거느리고 나아가 토벌하는 한편 감사가 다른 고을에 순시 중이기에 신이 보고 들은 바를 치계합니다."
하였다. 감사 최현이 인거의 소를 치계하여 올려 보냈는데, 그 소에 이르기를,
"국운이 불행하여 이처럼 어렵게 되었는데 신은 천심(天心)이 왜 전하께 노하여 이런 변이 있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전하께서는 적변(賊變) 이래로 몸소 갑옷을 입으시고 바람과 이슬을 피하지 않으면서 조종(祖宗)께서 배양해 놓으신 여러 신하와 더불어 콩죽과 보리밥을 먹고 와신 상담(臥薪嘗膽)하면서 한마음 한뜻으로 지성껏 하늘에 빌었어야 했습니다. 그리하였다면 귀신을 감동시키고 천지도 감격시켰을 것인데 하물며 사람이겠습니까. 그러한 자세로 적을 제압하면 어느 적인들 꺾지 못하겠으며, 이로써 공을 도모하면 무슨 공인들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전하께서 중흥할 수 있는 근본은 오로지 이에 있는데, 이는 하지 않고 안으로는 오랑캐의 사신 접대를 일삼고, 밖으로는 눈치나 살피는 것으로서 계책으로 삼으니, 무슨 까닭입니까. 이것이 천지와 귀신이 함께 분노하는 바입니다. 대체로 흉노(匈奴)는 스스로 천도를 저버렸기 때문에 천하의 큰 적(賊)입니다. 제 아비를 죽이고 어미를 아내로 삼으니, 이른바 견융(犬戎)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2백 년의 역사를 지닌 예의의 나라가 도리어 견융의 땅이 되었으니, 종사(宗社)는 어디에 의지하고 성묘(聖廟)는 어디에 의탁하겠습니까. 그리고 오랑캐의 풍습을 차마 하겠습니까. 생각이 이에 미치니 차라리 일찍 죽어서 편안한 것만 못하겠습니다. 신이 비록 몸은 빈천(貧賤)하나 성품은 사람이니 의리를 따져 나서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은 대의(大義)를 앞장서 제창하여 분연히 군사를 일으킨 것입니다. 원하건대 신이 군사 일으킨 것을 망령되다 하시지 말고 특별히 병권(兵權)을 내려 주시어 토적(討賊)의 대의를 펴게 한다면 화친을 주장한 매국(賣國)의 간신을 목베어 전하의 만세(萬世) 수치를 씻은 연후에 숙배(肅拜)하고 서쪽으로 내려가겠습니다. 신은 너무나 강개(慷慨)스럽고 괴로운 마음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빈청(賓廳)이 계청하기를,
"급히 선전관을 보내 그 종적(蹤跡)을 탐지하고, 관찰사 최현을 나문(拿問)하고 새 감사를 차송(差送)하며, 또 대장(大將) 한 사람을 보내어 포수(砲手)와 서울의 군사, 그리고 기내(畿內)의 병사를 이끌고 전진하여 격멸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수원(水原)의 군병도 체신(體臣)으로 하여금 전령(傳令)하여 올라오게 해야 합니다. 저 적이 충청도로 향할 뜻이 있다고 하니, 감사와 병사에게 비밀히 하유하여 힘을 합쳐서 체포하게 해야 합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이 적은 곧 잡히겠지만 혹시라도 연결된 곳이 있을까 싶으니, 예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상도와 전라도에 은밀히 하유하고, 신경인(申景禋)을 토포사(討捕使)로 삼아 포수 7백 명을 거느리고 먼저 양주(楊州)로 가게 하며, 초군(哨軍)은 양주의 영장(營將)으로 하여금 거느리고 전진하게 해야 합니다."
하고, 또 계청하기를,
"승전색(承傳色)과 선전관(宣傳官)을 파견하여 역적 집안의 문서를 수색하게 하고, 해당 부(府)로 하여금 그 처자를 잡아오게 해야 합니다."
하니, 상이 모두 그대로 따르고, 드디어 오숙(吳䎘)을 강원 감사(江原監司)로 삼았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228면
- 【분류】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
○原州牧使洪靌馳啓曰: "本月二十六日, 臣隨監司崔晛, 來到橫城縣, 縣居前翊贊李仁居來見監司曰: ‘吾欲陳疏’ 云, 監司曰: ‘所欲陳者何事?’ 仁居答曰: ‘朝廷與奴賊相和, 欲起義兵, 直向京城, 請斬主和奸臣一人頭, 仍西下討賊’ 云。 監司曰: ‘然則西下後, 欲直擣奴穴乎?’ 仁居曰: ‘巢穴則不可入也。’ 監司曰: "賊已撤還, 欲擊何賊?’ 仁居不答, 須臾辭出。 二十八日朝, 監司發向洪川時, 與臣及橫城縣監李擢男, 往見仁居, 仁居出示疏草, 多有悖慢之語。 監司曰: ‘兵在何處, 而所得幾許?’ 仁居曰: ‘已募數百餘名’ 云。 監司令臣及橫城縣監, 細探馳報, 臣卽還官, 傳令將官, 聚軍待變。 二十九日, 橫城縣監李擢男馳來言曰: ‘李仁居擅自傳令於本縣將官、出身等, 聚會軍兵’ 云。 仁居爲逆之狀, 明白無疑。 臣與李擢男, 領率軍馬, 一邊進勦, 而監司出巡他邑, 臣從聞見馳啓云。 監司崔晛, 以仁居疏, 馳啓上送。 其疏曰:
國運不幸, 屬此艱虞, 臣未知天心何所怒於殿下, 而有如此之變乎? 是宜殿下, 自賊變以來, 躬擐甲冑, 不避風露, 與祖宗休養群臣, 豆粥麥飯, 臥薪嘗膽, 同心同德, 而至誠祈天, 則可以感鬼神、格天地, 而況於人乎? 以此制敵, 何敵不摧, 以此圖功, 何功不成? 殿下中興之本, 專在於此也。 此之不爲, 而內以胡差接待爲事, 外以譏察爲謨, 其故何歟? 此所以天地、神人之所共憤也。 大抵匈奴者, 自絶于天, 故天下之大賊也。 殺其父、妻其母, 所謂犬戎者此也。 二百年禮義之封疆, 反爲犬戎之地, 則宗社何依; 聖廟何託? 被髮左袵, 其可忍乎? 思之至此, 不若早死之爲安, 故臣身雖貧賤, 性則人也, 參以義理, 則固難不出。 故臣首倡大義, 奮然起兵, 伏願殿下, 勿以臣之起兵爲妄, 而特賜兵權, 曲副討賊之大義焉, 請斬主和賣國之奸臣, 以雪殿下萬世之恥然後, 肅拜西下。 臣無任慷慨憂恐之至。
賓廳啓請: "急遣宣傳官, 探其蹤跡, 拿問觀察使崔晛, 差送新監司。 且遣一大將, 率砲手及輦下兵、畿內之兵, 前進勦擊。 水原軍兵, 亦令體臣, 傳令上來。 伊賊有向忠淸道之語云, 密諭于監、兵使, 使之竝力勦捕。" 又啓曰: "此賊當不日就捕, 然或有連結之處, 則不可不預防, 宜先密諭于慶尙、全羅兩道。 以申景禋爲討捕使, 領砲手七百名, 前去楊州, 哨軍則使楊州營將帶領, 前進宜當。" 又啓請: "發遣承傳色及宣傳官, 搜探賊竪家文書, 令該府, 拿致其妻子。" 上皆從之。 遂以吳䎘爲江原監司。
-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228면
- 【분류】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