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찬성 이귀가 안주성과 황주성 수축을 중지할 것과 청의 공격에 대한 방어책을 건의하다
우찬성 이귀(李貴)가 차자를 올리기를,
"험한 곳을 의거하여 백성을 보호하고 군사를 양성하여 적을 물리치는 일이 오늘날에 있어 제일의 급무입니다. 이러한 일은 하지 않고 무고한 패잔병을 시켜 식량과 병기와 지킬 병사도 없는 외로운 성을 쌓아 세차게 밀려오는 적을 막으려 하니, 이를 ‘어려운 시기에 쓸모없는 일만 한다.’는 것입니다. 조정이 적을 막고 근본을 튼튼히 하는 계책에 대해서는 모두 백성들의 힘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핑계로 채택하여 시행하지 않으면서, 유독 안주성(安州城)과 황주성(黃州城)에 대해서는 물력이 얼마나 드는가를 헤아려 보지도 않고서 금년내에 완성하도록 독촉하고 있으니, 신은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도군(逃軍)이란 장수는 물러서지 않고 적진으로 나아가는데 군졸이 먼저 장수를 버리고 도망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궤졸(潰卒)이란 장수가 먼저 도망치고 나서 군졸도 따라서 무너져 버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수가 먼저 도망치면 장수만을 죄주고 궤졸은 문책하지 않는 것이 군법에 있어 당연한 일입니다. 평양과 황주의 경우 장수가 먼저 도망쳤으니 궤졸에게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급히 안주성과 황주성의 부역을 중지시켜 한편으로는 인심을 수습하고 한편으로는 인명을 구제하소서.
금일 강화하는 것은 종묘와 사직을 위해서일 뿐만이 아니라 생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한 것입니다. 신의 생각에는 몇 년 동안 기한을 정해 두고서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일을 급선무로 삼아 부역을 모두 감해 주어 양서(兩西)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런 뒤에야 그곳에서 살던 자들은 안정할 수가 있고 피난갔던 자들도 즐거이 옛터로 돌아올 것은 물론 몇 년 안 되어 안전한 지방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백성을 보호하는 것은 근본이고 성을 쌓는 것은 말단인 것입니다. 이제 온 도의 힘을 합하여 오로지 안주성만을 지킨다 하더라도 병량과 병기는 절대로 전일만 못할 것입니다. 병량과 병기가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높은 성을 쌓는다 하더라도 성패에는 아무런 도움이 없습니다. 신의 생각에는 남한 산성(南漢山城)은 굳게 지킬 수 있다 하더라도 기전(畿甸)에 있는 성들은 어떻게 지킬 수가 없습니다. 가령 적이 여러 곳의 백성들을 멋대로 죽인다면 남한 산성을 보존하기가 곤란할 뿐만 아니라 강도(江都)도 보존하기가 곤란합니다. 그러나 남한 산성은 벌써 수축이 끝났으니 비워둘 수가 없습니다. 광주 목사(廣州牧使)를 수어장(守禦將)으로 삼고 그 고을 병민들을 다 주어 이 성을 보호하고 지키게 하여야 합니다. 만일 한 고을의 병력으로 감당할 수가 없다면 난을 당하였을 경우에는 경상도 병사가 거느리고 있는 병졸들을 떼서 주는 한편, 병사를 수성 대장으로 삼아 험한 곳을 의거하여 굳게 지키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강도를 응원하는 계책을 삼는다면 오히려 강탄(江灘)을 쓸모없이 지키는 것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이 갖고 있는 아홉 가지의 장점과 우리의 아홉 가지 단점을 비교해 보면 결코 저들과 대적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이 여러 가지로 생각한 결과 첫째 험한 곳을 의거하고 들판의 곡식을 치우는 것, 둘째 말 위에서 삼혈총(三穴銃)을 사용하는 것, 셋째 도끼 등을 들고 밤에 습격하는 것 등의 세 가지 계책을 얻었을 뿐입니다. 이를 군무를 잘 아는 노장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이 세 가지의 계책이 아니면 능히 적을 막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신은 굳게 믿고 조목별로 올렸었는데, 비변사에서 ‘험한 곳을 의거하는 일은 백성들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삼혈총은 화력이 세지 못하여 거리가 조금만 멀어도 갑옷을 뚫을 수 없고, 우리 나라 말들은 훈련이 되지 않아 쉽게 놀라 달아나려고 하므로 사용하기 어렵다.’고 회계(回啓)하였다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병법을 모르고 그저 남의 말만 막으려고 애쓰는 자들입니다.
조종조에서 진관 체제(鎭管體制)를 설치할 때에 어찌 무반들로만 수령을 삼았겠습니까. 문관과 음관으로 차정한다 하더라도 각 고을에 중군 대장(中軍代將)이 있으니 이 중군 대장을 무인으로 차정한다면 병졸을 이끌고 전장에 나아갈 때에는 각도의 병사가 통솔하고 싸우러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병졸들을 정선하지 못한 것, 병기를 정비하지 못한 것, 군량을 넉넉히 잇대지 못한 것, 훈련을 잘 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모두 수령을 문책해야 합니다. 그래서 수령이 무반이 아니더라도 군기(軍機)를 그르친 것에 대한 책임이 다 자신에 달려있기 때문에 간혹 국사에는 소홀히 하는 자일지라도 군무의 일에 대해서는 있는 힘을 다하여 군율을 면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행주 산성(幸州山城)은 권율(權慄)이 목책을 쳐서 능히 왜구들을 막아 승리했던 곳입니다. 고양 군수(高陽郡守)를 수어장을 삼아 본 고을의 병민들을 이끌고 방어하게 하소서. 물론 한 고을 백성들의 힘으로는 절대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만, 만일 급한 일이 생기면 강을 지키는 삼남(三南)의 병사를 나누어주고 장수를 정해서 이 성에 더 들여보내어 강도(江都)를 응원하는 계책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아무런 곤란한 일이 없을 것인데, 도리어 ‘서서히 사세를 살펴가면서 다시 의논하여 시행하겠다.’ 하실 수 있습니까. 신이 변경의 일에 대하여 조목별로 진달한 것이 한두 차례가 아닌데 하나도 시행되고 있지 않으니, 민망스럽고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하니, 상이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서 처리하라고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227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군사-군정(軍政)
○右贊成李貴上箚曰:
據險保民, 養兵討賊, 誠今日第一急務也。 捨此不爲, 徒役無辜潰卒, 築無糧餉、無器械、無守卒之孤城, 欲禦長驅之賊, 此所謂時詘擧嬴也。 朝廷雖於禦敵之策、固本之計, 皆諉諸民力不逮, 而不肯採施, 獨於安、黃兩城, 不量物力多寡, 督令完畢於今年之內, 臣竊憂之。 逃軍云者, 將帥赴敵不退, 而軍卒棄將逃去者也; 潰卒云者, 將帥先潰, 而軍卒隨潰者也。 將帥先潰, 則只罪將帥, 不問潰卒者, 在軍法當然, 而平壤、黃州, 則主將先潰, 潰卒何罪? 伏願殿下, 急停安、黃兩城之役, 一以收民心, 一以濟人命。 今日講和, 非徒爲宗社, 乃欲保生民也。 臣意限數年, 專以生聚爲務, 盡減徭役, 使兩西爲樂地然後, 生存者可以安保, 而移避者亦可以樂還故土也。 如是則不數年, 庶幾爲完全之地矣。 若然則保民爲本, 而築城乃末務也。 今雖合一道之力, 專守安州, 而兵糧、器械, 必不如向日。 兵糧、器械不備, 則雖築高城十丈, 無益於成敗矣。 臣意南漢, 雖能固守, 畿甸諸城, 皆不據守。 使賊恣殺散處人民, 則非徒南漢難保, 江都亦難保矣。 南漢旣已修築, 不可空棄, 則令廣州牧使爲守禦將, 盡給此邑兵民, 使之保守此城, 而一邑之力, 不能擔當, 則臨亂割給慶尙道兵使所率, 又令兵使爲守城大將, 而據險固守, 爲應援江都之計, 則猶勝於空禦江灘之爲愈也。 且以彼九長, 較我九短, 則決知其難與爲敵。 臣百爾思之, 只得據險淸野、馬上三穴銃、斫斧夜擊三策。 問於宿將諳熟戰陣者, 則皆以爲非此三策, 莫能禦此賊云。 臣方信而條上矣, 備局回啓乃以據險爲民力不逮, 三穴銃爲火力不猛, 稍遠則不能穿甲, 而東國馬性不馴, 易致驚擾, 勢難用之, 爲言。 此不知兵要, 而徒以防塞人言爲務者也。 祖宗朝設鎭管時, 豈皆以武班爲守令乎? 雖以文、南交差, 而各邑皆有中軍代將。 中軍代將, 若以武人差定, 則率兵臨陣之際, 各道兵使當統領而赴戰, 若其兵卒不精、器械不整、糧餉不繼、敎鍊不熟, 皆責於守令, 故守令雖非武班, 而軍機失誤, 皆在於一身, 故雖或不忠於國者, 其於軍務之事, 不得不致力, 欲免其軍律矣。 且幸州山城, 權慄以木柵, 能禦倭寇, 而勝捷之處也。 使高陽郡守爲守禦將, 率本邑兵民, 爲守禦之計, 一邑民力, 必不能獨當。 脫有緩急, 除出守灘三南軍兵, 使之定將, 添入此城, 以爲江都聲援之計, 有何所難, 而乃以徐觀事勢, 更議施行爲言乎? 臣之條陳邊事, 固非一再, 而言不見施, 臣不勝悶鬱焉。
上令備局議處。
-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227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