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답관 신경호가 청과의 화친 교섭 과정을 치계하다
회답관(回答官) 신경호(申景琥)·박난영(朴蘭英)이 치계하였다.
"신들이 7월 7일 심양(瀋陽) 10리 밖의 하천가에 당도하자 호장(胡將) 보을지사(甫乙只舍)·대해(大海) 등 아홉 사람이 연회를 베풀었으며, 서로 접견한 뒤에 성안으로 들어가니, 접대가 매우 후하였습니다. 12일 아침에 고차(高且)·대해 등 네 사람이 와서 한추(汗酋)의 말을 전하기를 ‘연일 일이 있어서 즉시 만나보지 못했으니 의아하게 여기지 말라. 내일은 꼭 만나볼 것이다.’ 하고, 또 ‘국서(國書)는 내일 사신이 와서 직접 올리도록 하라. 그리고 국서에 말한 것 이외에 다시 말할 것은 없는가?’라고 하기에, 신들이 답하기를 ‘우리가 진술하고자 하는 것이 세 가지이다. 첫째는, 당초 강화할 때 각각 국경을 지키기로 약속하여 하늘에 맹서까지 하였는데, 철병한 뒤에도 남은 무리가 우리 경내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둘째는, 두 나라가 이미 화호하였으니 우리 나라의 간사한 무리로서 거짓말을 만들어 일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자가 있으면 일일이 잡아보내어 두 나라의 화호를 견고히 하는 것이다. 셋째는 오신남(吳信男)은 잡혀 왔고 박규영(朴葵英)은 차관(差官)으로 들어왔다가 억류되어 있으며, 박입(朴雴)·강숙(姜璹)은 두 나라 강화의 일로 진중(陣中)을 왕래하다가 강화가 이루어진 뒤에 그대로 데리고 왔는데, 이 네 사람을 억류하는 것은 아무 이익이 없고 보내야 할 명분이 있다.’고 하였더니, 대해 등이 답하기를 ‘이 세가지 일은 우리가 마음대로 대답할 수 없는 것이니 한(汗)에게 말하여 처리하겠다.’고 하였습니다.
13일에 금한(金汗)과 여러 왕자가 신들에게 만나기를 청하기에 신들이 가서 예단(禮單)을 올렸습니다. 14일에 한추가 대해 등을 시켜 말하기를 ‘의주에 군대를 머물러 둔 것은 귀국을 의심해서가 아니다. 모병(毛兵)이 현재 귀국의 경내에 있으니 우리 군대가 철수한 뒤에 그들이 빈틈을 타서 의주를 빼앗아 점거한다면 왕래가 막힐 뿐만 아니라 두 나라가 화호한 의리에도 해로울 듯하기 때문에 압송(押送)해 올 교체 병마를 이달 15일에 출발시키려고 한 것이다. 지금 귀국 국서의 뜻이 간절하니 이제 곧 철수시키겠다. 그러나 귀국의 병력으로 모병을 제압하여 상륙하지 못하게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하기에, 신들이 답하기를 ‘본국이 귀국과는 일찍이 혐의나 원한이 없었다. 금년 봄에 귀국의 침공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모장(毛將) 때문인데도 귀국의 군대가 깊이 들어온 뒤에는 모장은 섬으로 도망하여 숨어 있으면서 끝내 나와서 구제하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무슨 낯으로 다시 상륙하겠는가.’ 하였더니, 대해 등이 이 뜻을 돌아가서 보고하겠다고 하였습니다.
15일에 대해 등이 또 와서 말하기를 ‘우리측 사람을 보내어 귀국과 강정(講定)하고 돌아오는 길에 병마를 철수시키게 하겠다.’ 하고, 또 말하기를 ‘화란을 일으켜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어찌 귀국 사람들만이 그러하겠는가. 우리 나라 사람 중에도 이런 무리가 있다. 나타나는 대로 잡아 보내어 그 죄를 밝혀 바룬다면 두 나라의 화친을 견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신남 등 네 사람은 그대들이 데리고 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3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219면
- 【분류】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
○回答官申景琥、朴蘭英馳啓曰: "臣等七月初七日, 到瀋陽十里許河邊, 胡將甫乙只舍、大海等九人, 設宴相接後, 入城則接待極厚。 十二日朝, 高且、大海等四人, 來傳汗酋之言曰: ‘連日有故, 未卽相見, 勿以爲訝。 明當相見’ 云。 且曰: ‘國書則明日, 使臣自當來呈。 國書之外, 更無所言乎?’ 臣等答曰: ‘俺等欲陳者三。 一則曰: 當初講和, 約以各守封彊, 至於誓天, 而撤兵之後, 餘衆尙留我境。 其二則曰: 兩國旣已和好。 如有我國奸細之徒, 做作虛言, 以圖一身之利者, 一一捉送, 以固兩國之和。 其三則曰: 吳信男旣被拘執, 朴葵英以差官入來, 亦尙留滯, 朴雴、姜璹以兩國和事, 往來陣上, 而及其和事旣成, 仍且帶來。 此四人, 留之無益, 送之有名云, 則大海等答曰: ‘此三件說話, 非吾等所能擅答, 當言于汗處’ 云云。 十三日金汗及諸王子, 請見臣等, 臣等往呈禮單。 十四日, 汗酋使大海等來言曰: ‘義州留兵, 非疑貴國, 毛兵方在貴境, 我兵旣撤之後, 彼若乘虛奪據, 則非但往來阻絶, 恐傷兩國和好之義。 欲押送交替兵馬, 將以今十五日打發耳。 今者貴國書意懇切, 今當捲還, 第未知以爾國之兵力, 能制毛兵, 使不得下岸耶?’ 臣等答曰: ‘本國與貴國, 曾無嫌怨。 今春被兵, 全由於毛將。 及其兵鋒深入之後, 彼竄伏海島, 終不出救, 今何顔面, 更下岸耶?’ 大海等曰: ‘當以此意回報’ 云。 十五日大海等又來言曰: ‘當送我人, 講定於爾國, 而回路當撤還兵馬矣。’ 又曰: ‘搆亂圖利, 豈徒爾國之人爲然? 我人亦不無如此之徒。 隨現綁送, 明正其罪, 則可以固兩國之和。 吳信男等四人, 則爾等帶去爲當’ 云矣。"
-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3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219면
- 【분류】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