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학 정경세 등이 내정을 바루고 외적을 물리칠 방책에 대해 아뢰다
부제학 정경세(鄭經世), 교리 김광현(金光炫), 부교리 이윤우(李潤雨)·이성신(李省身), 수찬 권도(權濤) 등이 차자를 올리기를,
"신들이 듣건대 묘당(廟堂)에서 현재 내정을 바루고 외적을 물리칠 방책을 의논하는데 극진하지 않음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논할 만한 것이 없지 않으므로 신들이 그 점에 대해서 말을 해볼까 합니다.
각도의 주진관(主鎭官)에 장관(將官)을 보내어 관내(管內)의 군병을 조련시켜 변란이 일어나면 그대로 거느리고 나아가 싸우게 한다는 것이 참으로 좋은 계획이기는 합니다마는, 다만 염려되는 것은 여덟 명의 병사(兵使)도 적합한 사람을 얻을 수 없는 것이 걱정인데 어떻게 허다한 주진(主鎭)의 장관을 모두 적임자로 채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는 군병을 기를 만한 자원이 없으므로 군정(軍政)과 농정(農政)을 분리하여 둘로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조련하는 일을 반드시 농한기에만 하기 때문에 일년 안에 조련하는 시기는 몇 달에 불과하고 나머지 8∼9개월은 경관(京官)들이 하는 일 없이 편안히 앉아서 군읍(郡邑)의 지공(支供)만을 허비하게 될 것이니 백성에게 피해가 많을 것입니다.
신들의 생각에는 이들은 삼군(三軍)을 통제하는 대장과는 달라서 관내의 몇몇 고을을 순행하거나 병정(兵丁)을 뽑고 기예(技藝)와 좌작(坐作) 등을 교습시키는데 불과할 뿐입니다. 주진관(主鎭官)으로 하여금 관내의 수령들에게 각각 경내에서 한 사람씩을 선발하여 그들의 재주를 분명히 시험해서 그 중에서 우수한 자를 뽑아 주진의 파총(把摠)으로 삼아서 군사 훈련의 일을 맡기도록 분부하면, 감히 정선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교련을 부지런히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본도 병사로 하여금 삼농(三農)의 여가에 군읍을 차례로 순행하면서 위무(慰撫)하여 복종하게 하고 모아서 사열(査閱)하여 상을 주어서 그들의 마음을 얻게 하였다가 적이 쳐들어올 경우 병사로 하여금 그들을 거느리고 나아가 싸우게 한다면 어찌 간략하면서도 요령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적을 방어하는 장비로는 포(砲)를 사용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포탄의 힘이 먼 데까지 미칠 수 있고 정교함이 명중할 수 있으며 우렁찬 소리가 인마(人馬)를 도망치게 할 수 있으니, 실로 1군(軍)에 각각 포수(砲手) 3천 명씩을 두어 그들로 선봉을 삼는다면 아무리 강한 적이라 하더라도 꺾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하사도(下四道)로 하여금 담력과 근력이 있는 장정을 뽑되 양남(兩南)041) 은 각각 3천 5백 명, 충청도는 2천 5백 명, 강원도는 5백 명을 배정하면 도합 1만 명이 되는데, 이들을 교습시키고 조련시키면 불과 몇 달 사이에 모두 일등가는 묘수(妙手)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무슨 일을 잘 하려면 반드시 그 기구(器具)를 예리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조총(鳥銃)은 견고하거나 정교하지 못하여 쉽게 파손되고 명중시키기 어려우니, 역시 통제사와 경상 좌·우병사에게 수량을 배정하여 왜총(倭銃)을 무역하게 하고 또 동래 부사(東萊府使)로 하여금 세은(稅銀)을 풀어 왜총을 무역하게 하거나 혹은 역관(譯官)들에게 배에 화물(貨物)을 싣고 대마도(對馬島)로 가서 총을 무역하게 하소서. 이와 같이 여러 방면으로 조치하면 조총 1만 자루는 수월하게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과(武科)를 보이는 규정에 조총 3발을 쏘아 2발 이상을 명중시킨 자를 뽑는 규정을 신설하면, 우리 나라 풍속은 과거를 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반드시 서로 다투어 일어나서 조총을 익힐 것이니, 이 또한 권장하는 한 가지 방도입니다. 신들은 포수(砲手)를 더 뽑는 것이 오늘날 군정(軍政)을 다스리는 급선무로 늦출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군량을 축적하는 한 가지 일도 막중한 급선무인데, 묘당(廟堂)에서는 좋은 방책을 세우지 못하고 단지 몇몇 미관(微官)과 하리(下吏)들을 감원시키고 제용(祭用)과 어공(御供)을 줄이기만을 의논할 뿐이니, 그 명분은 크지만 실지로 축소 절약되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여러 대장(大將)의 군관(軍官)을 호위(扈衛)에 쓰고 있는데 그다지 도움은 되지 않고 한갓 녹봉만 허비할 뿐인데도 혁파하지 못하고, 갈대밭에 둔전(屯田)을 설치하고 어염(魚鹽)의 부세를 거두는 등의 일도 군량을 모으는 일인데 양사(兩司)가 달이 넘도록 논집(論執)하였으나 아직까지 윤허를 받지 못하였으니, 이와 같이 하시면서 비용을 줄이고 재정을 늘이어 군량이 넉넉하기를 바라는 것은 한 줌의 흙으로 강물을 막으려는데 가깝지 않겠습니까. 진실로 군정을 다스리고 군량을 축적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야지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신들은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지시를 내리시어 먼저 내수사(內需司)를 혁파하고 그 수입을 호조에 귀속시켜 군수(軍需)로 쓰게 하시고, 그 밖에 묘당이 강구한 것과 대간이 논한 것 중에서 좋은 것은 시행하고 나쁜 것은 혁파하시되 평소의 상투적인 것을 버리시고 우레처럼 맹렬하고 바람처럼 빠르게 처결하시어 군사들의 마음을 북돋아 주소서.
그리고 대신 이하 내외의 관원들과 여염의 품관(品官)이나 사자(士子)에 이르기까지 병사(兵士)가 되지 않은 자들에게는 모두 베 한 필 씩을 내게 하면 1년의 수입이 적어도 수십만 필이 될 터인데 군량이 약간 넉넉해질 때까지 해마다 그렇게 거둔다면 도움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으로 애절한 교서를 내리시어 외방(外方)에 살림이 약간 넉넉한 자들로 하여금 각각 부모 처자를 먹이고 남는 것을 내어 국가의 급박한 상화을 돕게 한다면 전하께서 몸소 솔선하시는 터이므로 반드시 눈물을 흘리며 명을 따를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신들이 헤아려 보건대 내수사의 세입(歲入)이 그다지 많지 않으므로 혁파하더라도 군량의 10분의 1도 보충되지 못할 듯합니다. 그러나 내수사를 설치한 것이 본래 임금의 사장(私藏)을 위한 것으로서 삼대(三代) 성왕(聖王)의 제도가 아닌데도 열성(列聖)이 인습해온지 이미 1백 년이 지났으므로 사방 사람들이 모두 혁파할 수 없다는 것으로 알고 있는지 오래입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내수사를 혁파한다는 명이 내린 것을 듣는다면 혈기를 지닌 자로서 어느 누구인들 감동하고 분발하여 전하의 지공무사(至公無私)한 덕을 우러르고 전하께서 근심하고 절박해 하는 마음을 생각하여 죽을 힘을 다 바치기를 원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이렇게 하신다면 갈대밭에 둔전(屯田)을 설치하는 일도 자전(慈殿)의 마음을 돌릴 수 있고 어염의 부세를 거두는 일도 여러 궁가(宮家)들의 재물을 아끼는 마음을 부끄럽게 만들고 의기(義氣)를 격발시켜 국가에 반환하기를 서둘러 청할 것이니, 이것이 바로 신들이 이른바 비상한 거조로서 전하께서 시행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옛날에 위(衛)나라가 적(狄)에게 멸망당하였을 적에 문공(文公)이 조읍(漕邑)에서 몇 해 동안 야영(野營)하였으나 마침내 혁거(革車) 3백 승(乘), 암말 3천 필로 늘리자 적(狄)이 감히 다시 엿보지 못했고,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패전하여 회계(會稽)에 머물며 오(吳)나라의 신첩(臣妾)이 되었지만, 10년 동안 생취(生聚)042) 하고 10년 동안 교훈(敎訓)043) 하여 끝내 오나라를 멸하는 공을 이루었습니다. 신들은 이들이 무슨 정신, 무슨 근골(筋骨)로서 이런 공적을 이룩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문공이 대포(大布)의 옷을 입고 대백(大帛)의 갓을 쓴 것과 구천이 앉아서는 쓸개를 맛보고 길에서 성난 개구리에게 허리를 굽힌 것044) 을 보면 두 임금은 각고의 마음을 한 순간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전하께서도 이런 뜻을 굳게 세워 시종 게을리하지 마시고 마치 백척 간두(百尺竿頭)에 발을 붙이고 풍랑 속의 물이 스며드는 배에 몸을 의탁한 듯이 항상 조심하고 두려워하시며, 눈 앞의 안일에 젖어 후일의 근심을 잊지 마시고 형식적인 작은 예절을 따라 원대한 생각을 소홀히 하지 마소서."
하였는데, 비국에 내렸다. 비국의 회계에 조관(朝官) 이하에게 베를 받도록 하라는 말을 따르기를 청하니, 상이 답하기를,
"조관 이하에게 베를 내게 하는 것은 실로 원망을 사는 길이니 경솔하게 의논하기 어려울 듯하다."
하였다. 비국이 또 회계하기를,
"오늘날 군정(軍政)을 다스리는 계책을 마치 목이 마른 뒤에야 우물을 파는 격이니 비록 미칠 수 없더라도 그만둘 수도 없는 것입니다. 국가의 저축이 탕갈되어 재물이나 양곡이 모두 바닥났으니 유신(儒臣)이 건의한 계책이나 본사(本司)가 따르기를 청한 것이 모두 부득이한 데서 나온 것입니다. 지금의 형세는 군신 상하와 내외 원근이 모두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게 되었으니 반드시 현자(賢子)는 변방에서 목숨을 바치고 재산이 있는 자는 관아로 실어다 바친 뒤에야 이 적(賊)을 멸할 수 있습니다. 조정의 사대부들은 국가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으니 힘에 따라 베를 내는 데 있어서 무슨 원망과 괴로워하는 마음을 갖겠습니까. 유생(儒生)이나 사족(士族)으로서 화살을 메고 종군(從軍)하지 않는 자들도 어찌 국가의 은택으로 여기지 않겠습니까. 성상께서 이 요청을 윤허하지 않으시는 것은 실로 여러 신하를 염려하시는 지극한 뜻에서 나온 것이지만, 신자(臣子)의 의리로 볼 때 어찌 편안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신들은 사사로이 경외(京外)의 조관과 사대부들에게 힘에 따라 베를 내어 국가 경비의 만분의 일이나마 돕게 할 것을 통지해야 하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경들의 나라를 걱정하는 정성이 이에 이르렀으니 나는 매우 가상히 여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16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197면
- 【분류】무역(貿易) / 역사-고사(故事) / 정론-간쟁(諫諍) / 군사-병참(兵站) / 군사-군기(軍器) / 군사-군정(軍政) / 군사-병법(兵法) / 외교-왜(倭) / 재정-상공(上供) / 재정-국용(國用) / 재정-잡세(雜稅) / 농업-전제(田制) / 수산업(水産業)
- [註 041]양남(兩南) : 전라·경상.
- [註 042]
생취(生聚) : 백성를 기르고 재물을 모음.- [註 043]
교훈(敎訓) : 군사를 훈련시킴.- [註 044]
성난 개구리에게 허리를 굽힌 것 : 월왕 구천이 오(吳)를 칠 뜻이 있어 사기(士氣)를 진작시키기 위하여 배를 내밀고 있는 노한 개구리에게 용기가 있다고 허리를 굽혀 경의를 표한 고사. 《한비자(韓非子)》 내저설(內儲說) 상(上).○副提學鄭經世、校理金光炫、副校理李潤雨ㆍ李省身、修撰權濤等上箚曰:
臣等聞, 廟堂方議修攘之策, 靡所不究, 而其間或不無可論者, 臣等請得而言之。 夫發遣將官於各道主鎭官, 使之組練管內軍兵, 臨難率以赴敵, 此固善矣。 但念八箇兵使, 尙患於不得其人, 許多主鎭將官, 又安能盡得其人, 而充之乎? 且我國無養兵之資, 不能分兵、農爲二。 故組練之事, 必於農隙, 一年之內, 不過組練數朔, 則其餘八九朔, 京官安坐無事, 而費郡邑之支供, 其弊之及民者多矣。 臣等之意, 此等非如大將統御三軍之比, 不過巡行管內若干邑, 挑選兵丁, 敎習技藝、坐作而已。 但令主鎭官, 分付管內守令, 各選境內一人, 明試其才, 而拔其尤者, 以爲主鎭把摠, 屬以治兵之事, 則抄選不敢不精, 敎練不敢不勤。 本道兵使, 又以三農之暇, 巡歷而撫循之, 聚閱而犒賞之, 以得其心, 賊至則令兵使領進, 豈不簡而有要乎? 且禦敵之備, 莫如用砲。 其力可以及遠, 其巧可以命中, 其威聲又可以辟易人馬, 誠使一軍, 各置砲手三千, 以爲先鋒, 則雖强寇, 無不摧敗。 宜令下四道, 擇丁壯有膽氣、膂力者, 兩南各三千五百名、忠淸道二千五百名、江原道五百名, 如此派定, 總爲萬名, 敎習而組練之, 則不過旬月, 皆爲一等妙手矣。 但欲善其事, 必利其器, 而我國鳥銃, 不能堅緻, 易破而難中, 亦宜分定於統制使及慶尙左右兵使, 使之措貿倭銃, 又令東萊府使, 發稅銀以貿; 或遣譯官, 船載物貨, 往貿於對馬島。 如此多般措置, 則萬柄鳥銃, 不足辦矣。 且於武科規矩中, 令取鳥銃三發二中以上, 則國俗重科擧, 必將爭起而習之, 此亦勸奬之一道也。 臣等以爲, 加抄砲手, 當爲今日治兵之先務, 而不可緩者也。 至於積糧餉一節, 又是莫重之急務, 而廟堂未有善策, 只汰得一二微官, 減得若干下吏而止。 議減祭用、御供, 則其名雖大, 而其實, 則縮節無多。 諸大將軍官, 用之扈衛, 不甚得力, 徒有餼廩之費, 而不能罷去。 蘆田設屯、魚鹽收稅等事, 亦係拮据軍餉之事, 而兩司論執踰月, 尙未得請。 如此而欲望省費治財, 以裕軍食, 不幾於捧土而塞孟津乎? 苟可以有益於治兵、積餉, 則當無所不用其極, 而餘皆不暇計也。 臣等竊願, 殿下明降指揮, 先罷內需司, 以其入, 屬之度支, 使爲軍需, 其他廟堂所講, 臺諫所論, 悉皆或罷、或行, 雷厲風飛, 勿用平日常套, 以聳動軍心。 且令大臣以下, 至于內外庶官, 下及閭閻品官、士子, 凡不爲兵者, 皆出一匹布, 則度一年所收, 當不下累十萬匹, 限兵食稍裕間, 歲以爲常, 則所補當亦不細矣。 仍以此意, 下惻怛之敎, 使外方稍實之家, 各出其仰事俯育之餘, 以徇國家之急, 則躬率之下, 必有灑泣而應命者矣。 臣等竊料, 內需司歲入, 必不甚多, 雖罷之, 不足以補軍食之什一, 而但念此司之設, 本爲人主私藏, 非三代聖王之制, 而列聖因襲, 已過百年, 四方之人, 皆知其不可罷久矣。 一朝聞此令之下, 則凡有血氣, 孰不感動奮發, 仰殿下至公無私之德, 思殿下憂遑切迫之心, 而願爲之致死力乎? 若然則蘆田設屯, 可以回慈殿之聽; 魚鹽收稅, 可以愧諸宮家愛財之心, 而義氣所激, 或將請還之不暇矣。 此臣等之所謂非常擧措, 而願殿下行之也。 昔衛爲狄所滅, 文公野處漕邑者, 凡有幾年, 而卒致革車三百乘、騋牝三千, 而狄不敢再窺; 越王句踐, 棲於會稽, 臣妾於吳, 而十年生聚, 十年敎訓, 卒成沼吳之功。 臣等不知, 此是甚麽精神、甚麽筋骨, 而能致此乎? 觀其衣用大布、冠用大帛; 嘗膽於坐、軾蛙於道, 則二君者堅苦刻厲之心, 蓋未嘗一息弛也。 伏願殿下, 堅立此志, 終始靡懈, 如寄足於百尺竿頭, 如托身於風濤漏船之上, 毋狃於目前之小安, 而忘日後之憂; 毋徇於文爲之細節, 而忽遠大之慮。
事下備局。 備局回啓, 請從朝官以下出布之言, 上答曰: "朝官以下出布, 實是取怨之道, 恐難輕議也。" 又回啓曰: "此時治兵、繕甲之計, 有同臨渴掘井, 雖不可及, 而亦不可已也。 國儲蕩竭, 財、糧俱乏, 儒臣之建策, 本司之準請, 蓋出於不得已也。 當今之勢, 君臣上下、內外遠近, 同阽胥溺, 必須賢者死於邊, 有財者輸之官然後, 此賊可滅也。 朝士大夫, 受國厚恩, 隨力出布, 有何怨苦之心? 儒生、士族之不爲負羽從軍者, 何莫非國家之恩澤哉? 聖上之不允此請者, 實出於恫念群下之至意, 而臣子之義, 亦豈晏然而已乎? 臣等當私相通諭於京外朝官、士大夫, 隨力出布, 以補萬一。" 答曰: "諸卿憂國之誠至此, 予甚嘉之。"
- 【태백산사고본】 16책 16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197면
- 【분류】무역(貿易) / 역사-고사(故事) / 정론-간쟁(諫諍) / 군사-병참(兵站) / 군사-군기(軍器) / 군사-군정(軍政) / 군사-병법(兵法) / 외교-왜(倭) / 재정-상공(上供) / 재정-국용(國用) / 재정-잡세(雜稅) / 농업-전제(田制) / 수산업(水産業)
- [註 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