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종이 안주성 함락 때 김준의 아들 유성·개천 군수 장돈 등이 전사했다고 아뢰다
김기종(金起宗)이 치계하기를,
"안주성(安州城)이 함락되던 날 김준(金浚)의 아들 유성(有聲)은 아비를 따라 불 속으로 뛰어들어 함께 죽었고, 김준의 첩인 양녀(良女) 김씨 성을 가진 여인은 적에게 잡히자 굴복하지 않고 ‘남편은 충신이 되었으니 나는 열녀(烈女)가 되겠다.’ 하며 적에게 욕을 퍼붓다가 죽었습니다. 개천 군수(价川郡守) 장돈(張暾)은 김양언(金良彦)과 함께 남이흥(南以興)에게 강력히 간쟁하기를 ‘성첩에 있는 군사는 모두 민정(民丁)들이니 중영(中營)의 사수(射手)·포수(砲手)를 네 개의 부대로 나누어 무너지는 곳에 따라 구원하게 하라.’고 하였으나 남이흥이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성이 함락되려 할 때 장돈은 ‘일은 이미 틀렸다.’ 하고 끝내 자기의 구역을 지키다가 죽었습니다. 김양언은 중영에서 치솟는 불길을 바라보며 ‘절의는 높지만 장부(丈夫)는 아니다.’ 하고 성에 다가가서 적에게 활을 쏘다가 화살이 다하자 편곤(鞭棍)으로 많은 적을 쳐죽이고는 마침내 북당수(北塘水)에 투신하여 죽었습니다. 구성 부사(龜城府使) 전상의(全尙毅), 동루장(東樓將) 김언수(金彦秀)도 김양언과 함께 적을 쳐죽이다가 힘이 다해 죽었습니다."
하였는데, 상이 죽은 사람들에게 모두 치제(致祭)하게 하고, 김언수의 처자에게는 요미(料米)를 주고, 모든 휼전(恤典)을 전례에 비추어 거행하라고 하였다. 또 치계하기를,
"신의 군관(軍官)과 의주(義州)의 김계립(金繼立)이 죽음을 무릅쓰고 용골 산성(龍骨山城)으로 들어가서 신의 명령을 정봉수(鄭鳳壽)에게 전하자 성중 사람이 모두 격려되었으나 군량이 떨어져서 앉아서 말라 죽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므로 부득이 독부(督府)에 정문(呈文)하였더니 특별히 모영선(毛永旋)을 보냈는데, 그는 성지(城池) 및 장사(將士)의 인원수를 조사하여 책(冊)을 만들어 가지고 가면서 군량을 내보내겠다고 하였습니다. 왕사선(王士善)도 문서를 보내어 적의 수괵(首馘)을 간절히 요구하면서 모장(毛將)도 이러한 뜻을 가졌다고 하는데 거절하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16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195면
- 【분류】풍속-예속(禮俗) / 군사-전쟁(戰爭) / 외교-야(野) / 외교-명(明) / 인사-관리(管理)
○戊午/金起宗馳啓曰: "安州城陷之日, 金浚子有聲, 隨入火中, 而同死; 金浚妾良女金姓人, 爲賊所捕, 不屈曰: ‘夫爲忠臣, 妾爲烈女’, 罵賊而死。 价川郡守張暾, 與金良彦, 力爭於南以興曰: ‘城堞之軍, 皆是民丁。 請以中營射、砲, 分作四衛, 隨潰以救’, 以興不用其言。 城將陷, 張暾曰: ‘事已去矣。’ 終守信地而死。 金良彦則望見烟火曰: ‘節則高矣, 非丈夫也。’ 當城射賊, 矢窮而後, 以鞭棍擊殺甚衆, 竟投北塘水中而死云。 龜城府使全尙毅、東樓將金彦秀, 與良彦擊賊, 力竭而死。" 上命皆致祭, 金彦秀妻子給料, 凡恤典, 亦照例擧行。 又馳啓曰: "臣軍官及義州 金繼立, 冒死入龍骨, 傳臣令于鄭鳳壽, 城中人莫不激勵, 而軍餉方乏, 坐待枯死。 不得已呈文于督府, 則特遣毛永旋, 看審城基及將士名數, 成冊而去, 將出送糧餉云。 王士善亦送文書, 懇求賊馘, 毛將亦有此意, 勢難搪塞" 云。
- 【태백산사고본】 16책 16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195면
- 【분류】풍속-예속(禮俗) / 군사-전쟁(戰爭) / 외교-야(野) / 외교-명(明)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