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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 14권, 인조 4년 8월 4일 계묘 1번째기사 1626년 명 천계(天啓) 6년

간원이 군정 변통 사목의 미진한 점을 진달하다

간원이 아뢰기를,

"군정 변통 사목(軍政變通事目)을 본원(本院)에서 서경(署經)하는데, 대체적인 조건은 이미 묘당에서 참작하여 결정한 것이므로 신들이 굳이 논의할 수 없는 것이나, 그중 한두 절목이 미진한 점이 있어 부득이 구별하여 진달하고자 합니다.

지방의 서원(書院)은 비록 소속된 노비가 있지만 본 고을에서 약간의 노비를 나누어 지급해서 수직(守直)에 이바지하고, 향교(鄕校)는 대대로 전해오는 노비가 있으며, 향소(鄕所)에는 한두 사환(使喚)만이 있어 ‘복직(卜直)’이라고 부르는데 본 고을에서 형편에 따라 정급합니다. 이번 사목(事目)의 한 조항은 양민(良民)으로 수효를 헤아려 지급하려고 하는 것으로, 이 영(令)이 시행되게 되면 허다한 향교와 서원·향소가 모두 전에 없던 일수(日守)를 점유하게 될 것이니, 그렇게 되면 얼마나 많은 양민을 잃게 될지 모르며, 그로 인한 말류(末流)의 폐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마소(司馬所)에 있어서는 근래에 새로 만든 이름입니다. 생원(生員)·진사(進士)는 포의(布衣)로서 자연 학업을 하는 학교(學校)가 있기 마련인데, 이제 별도의 장소를 만들어서 마치 하나의 아문(衙門)인 것처럼 노비를 두고, 재산을 불리며, 향리의 여론을 주도하고, 관법(官法)을 침해하여 동요시키니, 일개 토호들의 소굴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곳의 이름이 어찌 조정에 보고될 것들이며 또 양민을 지급할 곳이겠습니까. 이 네 곳에 일정한 수효를 지급한다는 조목은 시행하지 말도록 하시고, 사마소는 어사(御史)로 하여금 엄하게 신칙해서 혁파하도록 하여 후일의 폐단을 영원히 막도록 하소서.

그리고 납속 영직(納粟影職) 5품 이하는 모두 정군(定軍)한다는 전례가 있기는 하지만 신의를 잃게 됨을 면치 못할 것으로 미안한 듯합니다. 그러나 질서가 없고 허위로 농간을 부리는 일이 매우 많으니 역시 그대로 둘 수도 없는 일입니다. 다만 이들 중에는 양족(良族)이 많은데, 의량(義粮)으로, 혹은 응모(應募)로, 또는 강제로 빼앗겨서 참여된 자들로서 처음부터 자기가 원한 것이 아닌데도 얻은 자도 많습니다. 이번 조사(詔使)가 올 때에 은(銀)을 모집하는 데 응하고 직첩을 지급받은 자도 있습니다. 만일 까닭없이 군역(軍役)으로 강정(降定)하게 된다면 반드시 많은 원망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4품과 5품이 구분이 없고, 영직(影職)과 실직(實職)이 한 가지로 마구 섞여 있는데, 어찌 잘못 구별함으로써 허위로 부리는 농간만 늘어나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당하(堂下) 3품 이하는 모두 무학 교생(武學校生)의 관례대로 아울러 본인의 원하는 바에 따라 시험을 보이되, 거기에서 떨어진 자는 여정(餘丁)에다 소속시킴으로써 조금이나마 국가의 신의가 보존되도록 하소서.

호패법은 당초에 시행하기 어렵다고 여긴 것은, 양민이 공사천(公私賤)에 함부로 소속되는 것이 가장 문제가 되었는데도 이번의 이 사목에서는 전연 거론하지 않았으니,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본청(本廳)에서 속히 헤아려 의논해서 엄하게 과조(科條)를 세워 별도로 정리하게 하소서.

군적법(軍籍法)에서 가장 시행하기 어렵게 여긴 것은 사족(士族)을 군보(軍保)로 강정(降定)하는 것입니다. 조종조(祖宗朝) 이래로 군보의 이름은, 처음에는 비천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사대부의 자손들이라 할지라도 모두 정속(定屬)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법이 오랫동안 폐지되었고 그 이름도 이미 천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풍속이 야박하고 사나워 천한 자가 귀한 자를 업신여기는 때에 상민(常民)들이, 사족이 강등되어 군보가 되는 것을 보고서 필시 저희와 같은 무리로 보아서 가벼이 업신여기는 행위를 하거나, 혹은 관가(官家)에서 천역(賤役)으로 부리게 되면, 이는 막대한 원고(怨苦)를 야기하는 것입니다. 금제(禁制)하는 조목을 엄하게 세워 어사의 행차에 널리 선포해서 군보(軍保)의 포(布)만을 걷고 품류(品流)의 옛 규범을 고치지 않도록 하여 풍속을 돈독하게 하고 인심을 안정시키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울러 본청에서 충분히 의논하여 처치하도록 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14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129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군사-군정(軍政) / 군사-군역(軍役) / 신분(身分) / 향촌-지방자치(地方自治) / 인사-관리(管理)

○癸卯/諫院啓曰: "軍政變通事目, 署經本院, 而大條件則已經廟堂參酌定奪, 臣等固不可容議, 其間一二節目, 有所未盡, 不得不別爲陳達。 外方書院, 雖有所屬, 或自本官, 折給若干奴婢, 以供守直; 鄕校則自有世傳奴婢; 鄕所則只有一二使喚, 號爲卜直, 本官隨便定給。 今此事目一條, 欲以良民量數給之。 此令若行, 許多鄕校、書院、鄕所, 皆占舊所未有之日守, 則所失良民, 不知其幾, 末流濫觴之弊, 有不可勝言。 至於司馬所, 則近來新創之號也, 生、進, 是布衣也。 自有學校講業之所, 而今乃別創一所, 有若一衙門, 置奴婢、殖貨穀、把握鄕論、侵擾官法, 不過豪右之一窠窟也。 此所之名, 豈可聞於朝廷, 又從而定給良民乎? 此四處定數給屬一條, 請勿施行, 司馬所則宜令御史, 嚴飭革罷, 永杜後弊。 納粟影職五品以下, 竝爲定軍, 雖有前例, 未免失信, 似爲未安, 而濫雜奸僞甚多, 亦不可全然舍置。 但此屬良族居多, 或以義糧, 或以應募, 或被强取而與之, 初非其所願, 而得之者亦多, 今番詔使時, 募銀給帖者, 亦多有之。 若無緣降定軍役, 則取怨必多。 且四品、五品, 其間無別, 影職、實職, 一樣濫雜, 豈可曲爲區別, 徒滋奸僞乎? 請自堂下三品以下, 一依武學、校生例, 竝爲從願講試, 其汰落者, 屬於餘丁, 以存國家一分之信。 號牌之法, 當初以爲難行者, 良民冒屬於公、私賤一事爲最, 而今此事目, 全不擧論, 未曉其故。 請令本廳, 速爲商議, 嚴立科條, 另加査整。 軍籍之法, 最爲難行者, 士族降定軍保, 亦一事也。 祖宗朝以來, 軍保之名, 初不卑賤, 故雖士大夫子枝, 亦皆定屬矣, 其法久廢, 其名已賤。 當此風俗薄惡, 以賤凌貴之時, 常民見士族降爲軍保, 必視爲等輩, 輕加侮蔑, 或自官家, 使用於賤役, 則此莫大之怨苦也。 請嚴立禁制一條, 御史之行, 廣加宣布, 只收軍保之布, 毋改品流之舊, 以敦風俗, 以安人心。" 答曰: "竝令本廳, 十分商議處置。"


  • 【태백산사고본】 14책 14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129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군사-군정(軍政) / 군사-군역(軍役) / 신분(身分) / 향촌-지방자치(地方自治)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