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간 장유가 묘의 호칭을 원으로 하지 말 것을 건의하다
대사간 장유(張維) 등이 차자를 올리기를,
"삼가 생각건대 천하의 일에는 지극히 정당하여 바꿀 수 없는 일이 있고, 대단히 사리에 어긋난 일이 있고, 그다지 해될 것은 없어도 진선(盡善)하지는 못할 일이 있습니다. 지극히 정당하여 바꿀 수 없는 일과 대단히 사리에 어긋난 일은 가부를 가리기가 마치 흑백을 가리는 일과 같아서 금방 가릴 수가 있고 또 취사(取捨)하는 데 있어서도 어려울 것이 없으나, 다만 그다지 해될 것은 없어도 진선하지는 못할 한 가지 일에 있어서만은 사람이 소홀히 하여 구차히 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직 성인은 그 마음이 매사에 반드시 천리(天理)를 따르기 때문에 제일의(第一義)의 일이 아니면 스스로 편하게 여기지 않고, 또 충신은 그 뜻이 자기 임금을 반드시 요(堯)·순(舜)처럼 만들려 하기 때문에 역시 제일의의 일이 아니면 감히 임금을 위하여 말하지 않습니다.
아, 지금 밝으신 성상께서 위에 계시지 않는다면 신 등이 어떻게 감히 이러한 말을 함부로 하겠습니까. 신 등이 삼가 보건대 이번 이 상례(喪禮)에 있어 전하께서 이미 장기(杖朞)로 복을 내리셨고 또 스스로 주상(主喪)도 주제(主祭)도 않으시니, 대강령(大綱領)과 대두뇌(大頭腦)가 일단 올바르게 되었다 하겠습니다. 따라서 온 나라의 신민으로서 그 누가 성상께서 감정을 억제하고 의리를 따르시는 훌륭한 덕에 대하여 흠앙하지 않겠습니까. 기타 자질구레한 절차들이야 꼭 일일이 따질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있으니, 지금 거론되고 있는 원호(園號) 문제가 바로 그것이라 하겠습니다.
대체로 천자를 장사지낸 곳을 능(陵) 혹은 원(園)이라 하고 제후와 왕을 장사지낸 곳을 원이라 하니, 원은 천자나 제후가 모두 일컬을 수 있으나 능은 천자만이 가능하고 천자가 아니면 능이라고 할 수 없으며 또 제후 왕이 아니면 원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한(漢)나라의 여태자(戾太子)057) 와 도왕(悼王)058) , 그리고 송(宋)나라의 복왕(濮王)059) 은 비록 위로 천자까지 되지는 못하였으나 제후 왕의 반열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묘를 원이라고 했던 것이니, 이는 그들의 분수로 볼 때 당연한 호칭으로 원래 높여 받들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능이라고 호칭하기 시작은 것은 신라와 고려 때부터로 그 유래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성조(聖朝)에서 창시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정당한 예(禮)로 비추어 볼 때는 논의가 안 될 수 없는 문제인데, 더구나 원이라는 칭호는 사실 아직까지 없었던 일로서 쉽게 창시할 문제가 아닐 듯싶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성상께서는 전대의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나게 지극한 효성을 가지신 분으로서 신종 추원(愼終追遠)하는 예에 있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하고 싶으시리라고 여겨집니다. 지금 장지가 정해지고 안장할 날도 잡혀져 있는 상황에서 능이라고 하자니 결코 감히 할 수 없는 일이고 그냥 묘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점이 있다고 여기신 나머지 그 두 가지 호칭 사이에 또 다른 하나의 호칭이 있지 않을까 궁리하신 끝에 여태자와 도왕의 고사가 생각나 드디어 그러한 명을 내리셨을 것입니다. 대단히 사리에 해로운 일은 전하가 이미 하지 않으셨고 지극히 당연하여 바꿀 수 없는 것들도 거의 이미 제 궤도를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한 가지 일만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데다 한나라와 송나라 때의 고사를 구실로 삼을 여지가 있고 또 그렇게까지 사리에 어긋난 일은 아닐 것 같기 때문에, 그것이 진선이 아니라는 것은 생각지 않으신 채 당연코 행하려 하시는 것일 것입니다. 신 등은 삼가 성명을 위하여 이 일에 대해 애석하게 여기는 바입니다.
본조(本朝)에서 능이라고 칭한 것은 이제 이미 제도화 되었으니 오늘날 다시 논의할 성격이 못 되지만 그렇다고 능이라고 칭했다 하여 또 원으로 칭한다는 것은 잘못이 잘못을 낳는 일로서 그만두어야 할 것을 그만두지 않는 일입니다. 신 등이 어찌 이런 일을 성상께 바랄 수 있겠습니까. 그뿐만이 아닙니다. 덕흥 대원군(德興大院君)에 대하여 예를 논할 때 효성이 지극한 선묘(宣廟)로서도 양주(楊州)의 묘소에 별다른 호칭을 붙이지 않으셨으니, 여기에서 그 뜻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의논하는 자들은 필시 말하기를 ‘선묘는 인후(人後)가 된 입장이니 조후(祖後)로서 대통을 이은 전하와는 입장이 같지 않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신의 생각에는 그것이 복제(服制)를 논하는 이유가 된다면 모르겠지만 묘호(墓號)를 논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복제는 속칭(屬稱)에 의하여 결정되지만 묘호는 명위(名位)에 의하여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대원군의 묘인데 저쪽과 이쪽의 호칭이 현저하게 다를 경우 친근한 쪽만 더 후히 대한다는 혐의가 있지 않겠습니까.
살아계실 때에도 예(禮)로 섬기고 죽은 후 장례 모실 때에도 예로 하고 제사도 예로 모시는 것이 어버이를 섬김에 있어 시작이요 끝인 것입니다. 거기에 단 하나라도 위배됨이 있으면 성인이 말한 효가 못 되는 것입니다. 글자 하나를 다르게 쓴다 하여 어버이를 현양하는 일에 아무런 보탬이 없을뿐더러 역사에 기록되고 후세에 전해져 장차 ‘제후가 자기 사친(私親)의 묘를 원이라고 칭한 것은 아무 왕 시대부터 시작된 제도이다.’라고 한다면, 아마도 성상의 효성을 먼 후대에까지 밝히는 길이 아닌 듯하기에 신 등이 슬피 여기는 바입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성상께서는 지극한 정을 가능한 한 억제하시고 대의 명분을 살피시어 호칭을 원으로 하라는 명을 속히 철회하심으로써 후세의 비난과 물의가 없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차자 내용은 충분히 알았다. 그 일이 그렇게까지 사리를 해치는 일이 아니라면 이토록 번거롭게 할 것까지는 없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12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90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왕실-종사(宗社) / 왕실-비빈(妃嬪) / 역사-고사(故事) / 역사-전사(前史)
- [註 057]여태자(戾太子) : 무제(武帝)의 태자.
- [註 058]
도왕(悼王) : 후한 장제(後漢章帝)의 아들, 평춘왕(平春王).- [註 059]
복왕(濮王) : 복안의왕(濮安懿王), 영종(英宗)의 아버지.○大司諫張維等上箚曰:
"伏以, 天下之事, 有至當不易者, 有大段乖理者, 有無甚害, 而未盡善者。 至當不易與大段害理, 可否之辨, 有如白黑, 擇之旣易, 取舍之亦無難, 唯其無甚害, 而未盡善者, 人多忽之, 苟焉而行之。 夫惟聖人之心, 每事必循天理, 故事非第一義, 則未嘗自安也; 忠臣之意, 必欲堯、舜其君, 故事非第一義, 則亦不敢爲君陳之也。 嗚呼! 苟非聖明在上, 臣等何敢遽發此言乎? 臣等竊見, 今玆喪禮, 殿下旣降服杖朞, 又不自主喪祭, 大綱領、大頭腦, 旣已得其正, 擧國臣民, 孰不欽仰聖上抑情從義之盛德也? 節目瑣細, 誠不必一二爭論, 然而有不容不言者, 今日稱園之擧, 是也。 夫天子所葬, 謂之陵, 或謂之園, 諸侯王之所葬, 亦謂之園。 蓋園者, 天子、諸侯皆得稱焉, 陵則唯天子稱焉, 非天子, 不可以稱陵, 非諸侯王, 不可以稱園也。 漢之戾、悼, 宋之濮王, 雖上不及天子, 然猶當在諸侯王上, 則其稱園, 乃本分當得, 初非出於崇奉也。 我東方之稱陵, 昉自羅、麗, 沿襲已久, 非聖朝之所創也。 然揆之正禮, 不無可議。 若乃稱園之擧, 實是前所未有, 恐不可容易創起也。 恭惟聖上, 至孝惻怛, 高出前代, 愼終追遠, 無所不用其極。 宅兆旣卜, 安厝有期, 稱陵則斷有所不敢, 稱墓則疑有所未足。 欲於二者之間, 立一名號, 因念戾、悼故事, 遂有是命。 夫大段害理者, 殿下旣不爲也, 至當不易者, 蓋已幾得之矣。 唯玆一款, 事在可否之間, 且有漢、宋典故, 可爲口實, 似若無甚害者, 故斷然行之, 不念其未盡善也。 臣等竊爲聖明, 惜此擧也。 大抵本朝稱陵, 已成定制, 非今日之所當議也。 然若因陵而又稱園, 則是承訛、踵謬, 可已而不已者也, 此豈臣等所望於聖明者哉? 不惟是也。 德興大院君議禮時, 以宣廟聖孝之隆, 楊州墓號, 未有殊稱, 此其意可知也。 議者必曰: "宣廟則爲人後, 殿下則爲祖後, 事有不可同者。" 然臣愚竊謂, 以此論服制則可矣, 以此論墓號則不可。 蓋服制, 因於屬稱; 墓號, 繫於名位。 旣同是大院君之墓, 而彼此稱號逈然不同, 獨不念豐昵之嫌乎? 生事之以禮, 死葬之以禮, 祭之以禮, 事親之終始。 一有違禮, 則非聖人之所謂孝也。 一字之稱, 無益於顯親之實, 而書之史冊, 傳之後世, 將曰; "諸侯之私親, 以墓爲園, 自某代始也", 恐非所以昭聖孝於無窮也, 臣竊傷之。 伏願聖明, 勉抑至情, 洞察大義, 亟寢稱園之命, 無使有後世之譏議。
答曰: "省箚具悉。 此事旣非甚害者, 則不必如是煩瀆。"
- 【태백산사고본】 12책 12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90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왕실-종사(宗社) / 왕실-비빈(妃嬪) / 역사-고사(故事) / 역사-전사(前史)
- [註 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