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하는 신하들을 뽑아 사가 독서할 것을 명하다
문학(文學)하는 신하들을 뽑아 사가 독서(賜暇讀書)할 것을 명하니, 대제학 김류(金瑬)가 이경여(李敬輿)·이경의(李景義)·이경석(李景奭)·이소한(李昭漢)·윤지(尹墀)를 뽑아 아뢰고, 이어 일찍이 이 선발에 뽑혔던 자로서 당상의 위계에 오른 이민구(李敏求)·이명한(李明漢)·이식(李植)도 파격적으로 그대로 둘 것을 청하였다.
윤지는 해숭위(海嵩尉) 신지(新之)의 아들이요 좌의정 윤방(尹昉)의 손자로서 사람이 영리하고 재주도 꽤 있었으나 다만 소년시절부터 벼슬길에 나가기에 급급하여 처신이 사부(士夫)같지 않았으며 폐조(廢朝) 때에는 그들 부자가 벼슬자리를 얻으려고 뛰어다닌 끝에 설서에 제수되기도 하였다. 반정 후에 그는 문호의 세력이 든든했던 관계로 다시 청현(淸顯)의 길에 나아가게 되었는데, 아무런 누(累)도 없었던 사람처럼 태연하기만 하였다. 그는 대각에 있으면서 크고 작은 논의가 있을 때마다 양다리 걸치기로 빠져나갈 구멍만을 찾았는데, 지난날 인성(仁城)050) 의 논의에 대하여 정온(鄭蘊)이 이의를 달았을 때도 윤지는 헌납의 신분으로서 주견없이 빠져나가려고만 하다가 드디어 청의(淸議)의 버린 바가 되었었다. 그뒤 오래지 않아 김류가 전장(銓長)이 되면서 윤지가 다시 헌납에 제수되었는데 집의 유백증(兪伯曾)이 그의 전후 자취를 들추면서 탄핵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백증이 외직을 받고 나가자 윤지는 끝내 또 이랑(吏郞)에 임명되었는데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이 의기양양하게 벼슬에 나아갔으므로 식자들이 더욱 타기하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또 사가 독서의 대열에 끼게 되었으므로 이를 듣고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12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86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인물(人物)
- [註 050]인성(仁城) : 선조의 후궁 소생으로 이름은 이공(李珙).
○乙丑/命選文學之臣, 賜暇讀書。 大提學金瑬, 以李敬輿、李景義、李景奭、李昭漢、尹墀抄啓; 曾被是選, 而陞堂上階者, 李敏求、李明漢、李植, 亦請破格仍存。 尹墀, 海嵩尉 新之之子, 左議政昉之孫也。 爲人穎悟, 頗有才氣, 但自少急於仕進, 處身不似士夫。 廢朝時, 父子奔走, 得拜說書。 反正後, 以門戶勢重, 復通淸顯, 自若無累者然。 其在臺閣, 當大小論議, 必首鼠兩端, 前日鄭蘊之立異仁城之論也, 墀以獻納, 出沒規避, 遂爲淸議所棄。 不久, 金瑬爲銓長, 又除獻納, 執義兪伯曾, 乃彈墀, 直斥前後情迹。 及伯曾補外, 墀遂拜吏郞, 而少無慙色, 揚揚就仕, 識者尤唾之。 至是, 又預於賜暇之列, 聞者莫不駭焉。
- 【태백산사고본】 12책 12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86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