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얼의 허통을 논의하게 하다. 이에 대한 비변사의 건의
대신 및 2품 이상을 빈청에 명초하여 서얼을 허통(許通)하는 일로 수의(收議)하고 묘당으로 하여금 참작하여 조처하게 하였다. 비변사가 복계(覆啓)하기를,
"이 일은 크게 변통시키는 사항이니 반드시 모든 의논이 합치된 뒤에야 단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신하들의 의논드린 내용이 가부간에 한결같지 않으니, 지금은 우선 그대로 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서얼을 금고(禁錮)하는 것은 천하에 없는 일이다. 재주를 품고 헛되이 늙게 하는 것은 왕정(王政)에 애석히 여기는 바이니 한 번 변통하는 것은 그만둘 수 없을 듯하다. 조정의 의논이 일치하지 않아 갑자기 변경하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이미 의논한 것을 바로 그만두는 것도 어린애 장난 비슷하게 된다. 그리고 자자 손손이라고 한 말은 반드시 법률을 만든 본뜻이 있을 것이나 지금은 우선 그 대수(代數)를 한정지어 변통하는 장본(張本)으로 삼는 것이 어떻겠는가? 다시 의논하여 시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또 아뢰기를,
"일찍이 태종조 때 급사중 서선(徐選)의 논의에 따라 처음으로 서얼에게 현관(顯官)을 제수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마련했으나 전적으로 금고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성종조 때 《대전(大典)》을 반강(頒降)하면서 또 서얼의 자손에게 문무과(文武科)·생원 진사과(生員進士科) 등의 과거를 허락하지 않는 법을 두었는데, 증손(曾孫)은 금령(禁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항(閭巷) 사이에 ‘대수(代數)가 다한 서얼’이라는 말이 있는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인가 합니다. 그런데 그 뒤 《대전》을 주해할 적에 자자 손손이란 말이 첨가되어 이로부터 영원히 금고를 당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왕자(王者)의 정치가 반드시 이와 같을 수는 없고, 또 이렇게 새로이 교화를 펴는 날을 당해서는 변통하는 조치가 없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정신(廷臣)들의 논의가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우선은 다른 날을 기다리기를 감히 청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교(聖敎)를 받들건대 재주를 아끼고 원통함을 풀어 주려는 훌륭하신 마음이 언외에 넘쳐 흐르니 보고 듣는 자로서 그 누가 감격하지 않겠습니까.
의논하는 자들이 더러는 ‘양출(良出)은 손자로 한정하고 천출(賤出)은 증손으로 한정하는 규칙을 만들어 시행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고, 더러는 ‘양천(良賤)을 막론하고 모두 증손에 이른 뒤에 허락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자의 말을 따른다면 허락받는 자가 먼 현손(玄孫)이 되니 별로 변통하는 의의가 없고, 후자의 말을 따른다면 역시 양천을 분등(分等)하는 의의가 없으니, 모두 온당하지 않은 듯합니다. 삼가 《대전》의 한품서용조(限品叙用條)를 보건대 양첩과 천첩 소생의 등급이 매우 분명했으니, 이는 양녀(良女)로서 사람을 거친 적이 없이 바로 첩이 된 자는 창첩(娼妾)과는 실로 간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마땅히 이점을 참작하여 양출은 손자에 이르러 허락하고 천출은 증손에 이르러 허락하면 알맞을 듯합니다. 그리고 이미 과거를 허락하고 나서 버려 두고 쓰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과거를 허락하지 않은 것과 다름이 없으니, 앞으로 재주에 따라 직책을 주어 헛되이 늙는다는 탄식이 없게 해야 할 것입니다. 또 대수가 다하지 않았더라도 이미 허통이 된 자와 뒷날 다른 경로로 허통이 된 자도 모두 한결같이 시행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대체로 적서(嫡庶)의 구별은 매우 엄격하니 우리 나라의 영갑(令甲)에 실린 지가 거의 2백 년에 이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이렇게 변통한다 하더라도 적서의 명분만은 문란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허통이 되었다고 하여 잔약한 적출(嫡出)을 속이고 업신여겨 정해진 분의(分義)를 무너뜨리는 자가 있을 경우 조정에서 듣는 대로 적발하여 치죄하고 한결같이 《대전》에 의거하여 도로 금고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해조로 하여금 복계하여 시행하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10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47면
- 【분류】가족-가족(家族)
○戊午/命招大臣及二品以上于賓廳, 收議庶孽許通事, 令廟堂酌處。 備邊司覆啓曰: "此事係是莫大變通, 必須群議僉同然後, 乃可斷而行之, 而諸臣獻議可否不一, 今姑置之何如?" 上曰: "禁錮庶孽, 天下所無; 抱才空老, 王政所惜。 一番變通, 似不可已也。 雖緣廷議不一, 猝變爲難, 旣議旋置, 亦涉兒戲, 且子子孫孫之說, 必有立法本意。 今姑限其代數, 以爲變通張本如何? 更議施行。" 備邊司又啓曰: "曾在太宗朝, 因給事中徐選之論, 始有庶孽勿敍顯官之法, 而未嘗全然禁錮矣。 及成廟朝, 《大典》頒降時, 又有庶孽子孫勿許文武、生進等科之法, 而曾孫則無禁, 故至今閭巷間, 有代盡庶孽之言者, 蓋以此也。 其後《大典》註解時, 添子子孫孫之語, 自此爲永世禁錮之人, 王者之政, 必不如此。 當玆新化之日, 不可無變通之擧, 而緣廷臣論議不一, 敢請姑待他日矣。 及承聖敎, 其惜才疏冤之盛心, 溢於言表, 其在瞻聆, 孰不感激? 議者或以爲: ‘良出限孫, 賤出限曾孫之規, 施行爲當’, 或以爲: ‘勿論良賤, 竝至曾孫乃許爲當’ 云。 從前之說, 則所許者遠在玄孫, 殊無變通之意; 從後之說, 則亦無良賤分等之意, 俱似未穩。 竊見《大典》限品敍用條, 良妾、賤妾所生, 等級甚明。 蓋良女未曾經人而爲妾者, 實與娼妾有間, 今宜就此參商, 良出至孫而許, 賤出至曾孫而許, 始似得中。 且旣已許科之後, 棄而不用, 則又與初不許科, 無異, 今後隨材授職, 俾無虛老之歎。 雖未代盡, 而已曾許通者及日後因他路許通者, 竝一體施行似當。 大抵嫡孽之分, 極爲嚴截, 我朝令甲所載, 迨二百年。 今雖有所變通, 而嫡庶名分不可紊亂。 如或以許通之故, 有欺侮弱嫡, 以乖定分者, 則自朝廷, 隨聞摘發治罪, 一依《大典》, 還爲禁錮爲宜。 令該曹覆啓施行。" 從之。
- 【태백산사고본】 10책 10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47면
- 【분류】가족-가족(家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