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귀를 파직시키다. 박정 등을 다시 먼 지방으로 유배시키라고 하였다가 철회하다
상이 하교하기를,
"찬성 이귀가 조정을 업신여기고 공을 믿고 교만 방자하니 일이 극히 놀랍다. 먼저 파직하고 뒤에 추고하여 훈신이 제멋대로 하는 버릇을 징계하라."
하고, 또 하교하기를,
"지난번 박정 등이 차자를 올린 일은 잘못한 바가 없지 않으므로 우선 외직에 보임하여 뉘우쳐 고치도록 하였다. 그런데 요즘 이 일로 인하여 조정이 조용하지 못하고 훈신이 화목하지 못하니 극히 한심한 일이다. 박정 등이 사당(私黨)을 세워 조정을 어지럽게 한 죄를 면하기 어려우니 박정·나만갑을 모두 먼 곳에 찬배하라."
하였다. 이에 정원이 아뢰기를,
"박정 등이 차자를 올린 일은 과연 사체가 소활하고 경솔한 잘못이 있으니 성상의 분부에 ‘잘못한 바가 없지 않다.’ 하신 것은 실로 그 병통에 적중한 것입니다. 다만 일시 미세한 흠으로 체직시켜 외직에 보임하였으니, 너그럽게 포용하는 덕에 누가 있는 듯하므로 대신과 대각(臺閣)이 번갈아가며 논하여 해명하였으나 되지 아니한 것이지 이것이 어찌 다 박정 등의 사사로운 붕당이 되어 구호하려 한 것이겠습니까. 지금 이귀가 일을 논할 때 되풀이하여 난잡스런 말을 함으로써 위로 성상의 노여움을 촉발하여 드디어 박정 등을 먼 지방으로 찬배하라는 명이 있게 하였습니다.
신들이 생각하건대, 성인의 노여움은 물(物)에 있고 자기에게 있지 아니한 것이니, 올려 쓰고 물리치고 형벌하고 상 주는 것을 한결같이 하늘의 법칙에 따를 뿐입니다. 박정 등은 당초 잘못한 바가 없지 아니한 정도에 불과했는데, 지금 이귀의 그릇된 말로 박정 등을 사당(私黨)을 세우고 조정을 어지럽게 했다는 형율로 다스린다면 천지처럼 큰 도량과 일월처럼 밝으신 덕에 노여움을 옮기는 혐의가 있음을 면하지 못할 듯합니다.
신들은 언론의 출납을 맡은 승지의 직에 있으면서 전지(傳旨)를 받들고 놀랍고 두려워서 서로 돌아보며, 소회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감히 만번 죽음을 무릅쓰고 삼가 다시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니, 답하기를,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우의정 신흠이 차자를 올려, 박정 등을 먼 지방으로 찬배하라는 명을 도로 거두기를 청하였다. 그 대략에,
"신이 아침에 어전에 입시하여 이귀의 진언에 따라서 신도 소회를 아뢰고자 하였으나, 이귀의 말이 계속 이어져 끊이지 않았는데 곧이어 파하고 나가라는 명이 계셨습니다. 신은 할 말을 참고 물러나서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두 훈신(勳臣)이 이처럼 각립하는 것은 국가의 복이 아닌데 하물며 이귀가 김류를 논한 것이 중도를 잃은 것이 많은 데이겠는가.’ 하고 스스로 천정을 쳐다보고 탄식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교를 보니, 박정·나만갑 등을 먼 지방으로 찬배하려 하시니 어찌 성명께서 분열하는 단서를 깊이 근심하여 그 근원을 막으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박정과 나만갑은 그 소행이 중도에 맞지 아니하여 이미 견책을 시행하였습니다. 이귀가 오늘날 한 말은 박정과 나만갑이 반드시 참여해 아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참여해 아는 것이 아니라면 그 범한 바도 전일의 일에 그칠 따름인데, 이귀의 말 때문에 갑자기 중한 율로 다스리시면, 아마도 형정(刑政)의 당연함이 아닌 듯합니다. 성명께서는 신의 말을 굽어살피시어 속히 성명(成命)을 중지하소서."
하였는데, 답하기를,
"차자를 살펴보니 잘 알겠다. 경의 임금 사랑하는 성의를 아름답게 여긴다. 박정 등은 죄과가 작지 아니하니 지금 멀리 찬배하는 것이 불가하지 않다. 그러나 경을 위해 억지로 따르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37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19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변란-정변(政變)
○上下敎曰: "贊成李貴, 慢蔑朝廷, 恃功驕恣, 事極可駭。 先罷後推, 以懲勳臣縱恣之習。" 又下敎曰: "頃者, 朴炡等陳箚之事, 不無所失, 故姑爲補外, 使之悛改。 近因此事, 朝著不靖, 勳臣不睦, 事極寒心。 朴炡等難免樹私黨、亂朝廷之罪。 朴炡、羅萬甲竝遠竄。" 於是, 政院啓曰: "朴炡等上箚之事, 果有事體踈率之失, 聖敎所謂不無所失者, 實中其病矣。 但以一時微細之疵, 遞職補外, 似有累於含弘之德, 故大臣、臺閣, 更迭論解而不得, 此豈盡爲炡等之私朋, 而欲爲救護哉? 今因李貴論事之際, 展轉胡說, 上觸宸嚴, 遂有炡等遠竄之命。 臣等竊念, 聖人之怒在物, 不在己, 進退、刑賞, 一惟天則而已。 炡等初不過爲不無所失之人, 今以李貴一時錯謬之語, 按炡等以樹私黨、亂朝廷之律, 其於天地之大, 日月之明, 恐不免有遷怒之嫌。 臣等職司喉舌, 伏承傳旨, 驚惶相顧, 懷不敢默, 敢冒萬死, 恭候三思。" 答曰: "勿爲煩瀆。" 右議政申欽上箚, 請還收朴炡等遠竄之命。 略曰:
臣朝者, 入侍前席, 因李貴進言, 臣亦欲陳所懷, 而貴之言縷縷不絶, 尋有罷黜之命。 臣卷舌而退, 以心語曰: ‘兩勳臣如是角立, 非國家福。 況貴之論金瑬, 多失中者乎?’ 竊自仰屋。 卽見下敎, 將朴炡、羅萬甲等遠竄, 此豈非聖明深軫分裂之端, 欲杜其源乎? 第炡與萬甲, 其所爲不中, 則已施譴罰矣。 貴之今日之言, 炡與萬甲, 未必與知, 若不與知, 則其所犯, 止前日之事而已, 以貴之故, 而遽繩以重律, 則恐非刑政之當然。 伏願聖明, 曲察臣言, 亟寢成命。
答曰: "省箚具悉, 嘉卿愛君之誠。 朴炡等罪過非細, 今玆竄黜, 未爲不可, 然爲卿勉從焉。"
-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37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19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변란-정변(政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