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귀가 평안 병사 남이흥이 본진을 비우고 안주에 물러나 지킨 죄를 진달하다
우찬성 이귀(李貴)가 상차하여, 평안 병사(平安兵使) 남이흥(南以興)이 본진(本鎭)을 비워버리고 안주(安州)에 물러나 지킨 죄를 극력 진달하기를,
"조종조(祖宗朝)에서 평안도 안에 5진(鎭)을 설치한 뜻이 극진하였습니다. 그런데 광해 때에 예전 규례를 변경하여 7진(鎭)을 배치하여 영변(寧邊)·구성(龜城)·성천(成川)·평양(平壤) 4진은 모두 버리고 지키지 아니하여 일도의 백성으로 하여금 뜻밖의 변란을 만나면 모두 적을 피할 곳이 없게 하였습니다. 적신 박엽(朴燁)이 이 계책을 냈는데, 혼조의 임금과 신하가 그 술책에 빠졌던 것입니다. 조종조의 2백년 동안 전해온 예전 규례에, 얼음이 얼면 병사(兵使)가 창성(昌城)에 나아가 지키고 얼음이 풀리면 영변에 물러나 지키게 하였는데, 그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남이흥은 국가가 다시 살려 준 은혜를 생각하지 않고 감히 난리에 임하여 스스로 보전할 생각을 품고서 안주에 물러나 지키고 싶다고 많은 말을 늘어 놓으며 조정을 기망하였으니, 만일 조정에 사람이 있다고 여겼다면 어찌 감히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담당 관아로 하여금 율에 의해 죄를 정하게 하소서."
하니, 상이 묘당으로 하여금 의논하게 하였으나 결정하지 못하였다. 대개 남이흥이 안주를 지키려고 한 것은 장만(張晩)의 계책이었다. 어느날 이귀와 장만이 비국(備局)에 앉아 있었는데, 장만이 이 계책에 대해 또 말하자 이귀가 큰소리로 꺾으며 말하기를,
"남이흥이 안주에 물러나 지키다가 적이 만일 맹산(孟山)의 길을 경유하여 곧바로 해서로 향하여 그대로 서울로 들이닥치면, 이는 영공이 지난해에 이괄(李适)이 멋대로 경성을 범하게 한 때와 다름이 없다."
하니, 이에 장만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국가에서 이미 나에게 체찰사의 임무를 맡겼으니 서변의 일은 내가 스스로 주장하겠다."
하자, 이귀가 또 말하기를,
"이는 국가의 존망이 매여 있는 것이다. 나라가 망하면 나도 또한 죽는데 어찌 상관이 없다 하겠는가."
하였다. 장만이 더욱 원한을 품었다.
-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17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군사-군정(軍政)
○壬子/右贊成李貴上箚, 極陳平安兵使南以興, 虛棄本鎭, 退守安州之罪曰:
祖宗朝於平安道內, 設五鎭之意, 至矣盡矣。 光海時, 率變舊規, 排作七鎭, 而寧邊、龜城、成川、平壤四鎭, 皆棄不守, 使一道民人, 不意遭變, 則皆無避賊之處。 此由於賊臣朴燁創設此計, 而昏朝君臣, 陷其術中矣。 祖宗二百年來舊規, 氷合則兵使進守昌城, 氷解則退守寧邊, 其意有在。 今以興不念國家再生之恩, 敢有臨亂自全之計, 乃欲退守安州, 多費辭說, 欺罔朝廷。 若以朝廷爲有人, 則何敢發此言乎? 請令攸司, 依律定罪。
上令廟堂議之, 而不能決。 蓋南以興之欲守安州者, 張晩之計也。 一日, 貴與晩, 坐於備局, 晩又言此計, 貴大言折之曰: "南以興退守安州, 而賊若經由孟山之路, 直向海西, 仍抵京城, 則是無異於令公上年, 縱李适, 犯京城之時也。" 於是, 晩大怒曰: "國家旣委體察之任於我, 則西邊之事, 我自主之。" 貴又曰: "此則國家存亡所係。 國亡則我亦死, 何謂無預耶?" 晩益恨之。
-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17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