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 등 5인을 외방에 보직하게 하다. 이에 대한 김상헌·김류·이준·이경석 등의 논의
상이 하교하기를,
"전일 옥당의 관원이 장관과 상의도 하지 않고 헌장(憲長)을 저격하였는데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은 편들고 뜻을 달리하는 사람은 배척하는 조짐을 자라나게 할 수 없다. 내가 이를 두려워하여 그 병폐를 헤쳐 경계시켰더니, 저들이 다시 장황한 말로 공론을 가탁하고 허위를 꾸미어 군상(君上)을 속이고 있다. 그런데도 대각은 조용하기만 한 채 규정하는 사람이 없으니, 오늘날의 국사는 한심하다 할 만하다. 박정(朴炡) 등 다섯 사람을 논사(論思)하는 시종(侍從)의 지위에 그대로 둘 수 없으니 아울러 체직시키고, 해조로 하여금 궐원에 따라 외방에 보직시키게 함으로써 그 버릇을 징계케 하라."
하였다. 도승지 김상헌(金尙憲) 등이 아뢰기를,
"박정 등을 외직에 보임하라는 명은 신들이 즉시 전지(傳旨)를 받들어 해사(該司)에 분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생각하건대 박정 등이 장관이 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스스로 차자를 올린 것은 구규(舊規)를 어긴 것이긴 하지만 ‘상의하지 않았다.’고 말씀한 것은 사실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남이공이 헌장(憲長)에 합당치 않다는 논의도 또한 박정 등이 졸연히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이를 ‘헌장을 저격하였으며,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은 편들고 뜻을 달리하는 사람은 배척한다.’고 하는 것은 또한 실정이 아닙니다. 더구나 박정 등의 상소에 지리하고 외람한 말이 있기는 합니다마는, 또한 어찌 감히 공론을 가탁하고 허위를 꾸며 군상을 속일 마음이 있겠습니까. 박정 등은 오래도록 경연에서 상을 모시었으니, 진실로 다른 뜻은 없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성상의 아량은 하늘처럼 넓으시니 필시 재차 생각하실 것이기에 신들은 삼가 붓을 쥐고 기다립니다."
하니, 답하기를,
"박정 등에게는 이미 잘못한 바가 있다. 체직시키고 외방에 보직하게 하는 것이 불가할 게 뭐 있겠는가."
하였다. 이조 판서 김류가 경연에 입시하였다가 아뢰기를,
"오늘 옥당의 제신들을 외방에 보직하라는 명이 계셨는데, 다섯 사람이 일시에 조정을 떠나면 보고 듣는 사람들을 놀라게 할까 두렵습니다. 그 중에는 혹 연명(聯名)한 자이기는 하지만 본의는 아니었다고 하는 자도 있습니다. 자고로 상벌을 주는 데는 모두 차등이 있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주장한 것과 따른 것에 어찌 경중의 차이가 있겠는가."
하였다. 김류가 아뢰기를,
"이 논의는 박정에게서 발론되었고 장관이 오는 것을 기다리지도 않았으니, 또한 도리를 잃은 것입니다. 나만갑(羅萬甲)은 본시 기가 성한 사람이어서 일 벌이기를 좋아하니 조정이 장차 안정되지 못할 단서가 있습니다."
하고, 참찬관 김상헌은 아뢰기를,
"박정 등에게는 경솔한 잘못이 있으나 남이공이 헌장에 합당치 않다는 데에는 과연 물론이 있으니, 전하께서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은 편들고 뜻을 달리하는 사람은 배척한다.’는 것으로 지척하시면 반드시 복죄(服罪)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김류가 또, 따라 참여한 사람은 외직에 보임하지 말자는 뜻으로 재삼 진계하니, 상이 허락하였다. 이에 집의 이준(李埈), 장령 강대진(姜大進)·김영조(金榮祖), 지평 황뉴(黃紐) 등이 아뢰기를,
"조정의 일은 중도(中道)를 얻는 것이 귀중한데 신하가 자신의 호오(好惡)를 가지고 서로 배척하기도 하고 구원하기도 하다가 일이 혹 중도를 지나치는 지경에 이른다면 이것이 어찌 조정의 복이겠습니까. 송(宋)나라 경력(慶曆) 연간에 가창조(賈昌朝)와 범중엄(范仲淹)의 당(黨)이 당시 정권을 잡고서 흑백을 구분치 않고 한결같이 치우친 사정(私情)만을 따랐습니다만, 인종(仁宗)의 지극한 인자에다 한기(韓琦)의 어진 보필에 힘입어 두 당이 잘 융화됨에 따라 오직 어질고 재주있는 사람들만이 임용되었으므로 보합하고 화목한 효과가 끝내는 두 당의 틈이 절로 해소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전국의 재능있는 사람들이 분열되는 지경에 이르지 않고 마침내는 국가에 쓰이게 되었으므로 그 치도(治道)의 융성함은 지금도 말하고 있습니다.
조정이 수십 년 전부터 서로 붕당을 만들어 시비가 공정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국가의 큰 병폐였던 것입니다. 전하께서 반정 초에 이 병폐를 깊이 징계하신 끝에 사람을 쓸 때에는 피차를 묻지 않고 적당한 관직을 부여해 주어서 각기 그 재능을 다할 수 있게 하셨으니, 비유하건대 봄바람이 바야흐로 이르러 뭇 꽃들이 모두 피는 것과 같았으므로 덕의(德意)가 흡족하여 조야(朝野)가 서로 경하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옥당에서 남이공을 논핵한 한 가지 일로 인하여 전하께서 그들이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을 배척하는가 염려하시어 곧 엄한 전교를 내리셨으니, 전하께서 부의(浮議)를 진압하시는 뜻이 지극하다 할 만합니다.
사람이 재주와 행실을 겸비하는 것은 자고로 드물었습니다. 여러모로 취택한다면 사람을 모두 쓸 수 있고 겸비를 요구한다면 사람을 모두 버리게 됩니다. 남이공은 재주는 버릴 수 없으나 그 행적에는 하자가 있으니, 옥당의 논의도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 논의의 발단은 경솔한 잘못을 면치 못하나 그 마음의 소재는 서로 경알하는 사심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겠습니다. 신들이 감히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은 편들고 뜻을 달리하는 사람은 배척한다.’는 명목을 가지고 논하지 않은 것은 진실로 이 때문입니다.
지금 성상의 전교를 받들건대, 신들이 잘 규정하지 못한 죄가 큽니다. 어떻게 감히 뻔뻔스레 관직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신들을 체직시켜 주소서."
하고, 정언 이경석(李景奭)은 아뢰기를,
"신은 후생이라서 남이공의 평생 행사를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마는, 그가 물론에 큰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신도 들었습니다. 옥당의 벼슬은 그 직무가 논사(論思)에 있으니 일에 따라 규정하는 것은 진실로 불가할 게 없습니다. 그렇지만 장관의 동의를 기다리지 않고 지레 차자를 올렸으니, 경솔한 실책을 면키 어렵습니다. 그러나 말을 들어주는 방도는 다만 마음의 공사(公私)와 일의 곡직(曲直)을 볼 뿐입니다. 마음이 정말 공정하고 일이 진실로 정직하다면 혹 경솔하고 과격하다 하더라도 현명한 군주는 이것을 이유로 말한 자를 죄주지 않습니다. 이는 대개 사람마다 각기 그 소회를 다 말하게 하되 취사 선택은 군주 자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옥당의 제신(諸臣)이 논한 것이 마음이 과연 사(私)에서 나오고 일이 과연 곡(曲)에 있는 것입니까. 그 소차의 곡절에 대해서는 신이 감히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만일 그 논의를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은 편들고 뜻을 달리하는 사람은 배척한다.’고 여긴다면 결코 그런 것은 아닌 듯싶습니다. 이제 성상의 전교를 삼가 살피건대 잘 규정하지 못한 죄가 실로 신에게 있습니다. 신을 체직시켜 주소서."
하고, 사간 이윤우(李潤雨), 헌납 권도(權濤), 정언 고부천(高傅川)은 아뢰기를,
"신들이 전번에 옥당에서 이공(以恭)을 체직시키기를 청한 차자를 보고 잇달아 논열하려 하지 않은 것은, 이공의 심적(心跡)에 논할 만한 것이 없다고 여기고 옥당의 논의에 잘못된 점이 있다고 여긴 것이 아닙니다. 진실로 이공의 인품이 원래 논할 만한 것이 없지 않고 옥당 차자의 조어(措語)가 상세하여 과당한 잘못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성상의 전교를 보건대, 신들은 서로 돌아보며 놀라 성상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가령 이공에게 조금도 논할 만한 일이 없는데 옥당의 제신들이 과연 자기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을 배척하려고 했다면, 지금 성상께서 내리신 지휘는 불가할 것이 없겠습니다. 그러나 이공은 무술년·기해년 사이에 기치를 세우고 사론(邪論)을 펴서 사류(士類)를 배척하였는데 유성룡(柳成龍) 같은 이가 관직에서 떠나간 것도 그가 저지른 일입니다. 소북(小北)과 대북(大北)이 수십 년 동안 나라를 병들게 하고 윤기를 무너뜨린 변괴가 있었는데, 그 일을 주장하고 창시한 자가 과연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일일이 추론(追論)하려하면 양사(兩司)에 두는 것이 부당할 뿐만 아니라 백집사(百執事)를 수행하게 하는 것만도 다행인 것입니다. 어찌 연소배가 처사를 경솔하게 한 잘못을 가지고 다시 엄한 전지를 내려 모두 체직시킬 수 있겠습니까. 신들은 이를 규정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또 차자를 올려서 변명했으니, 신들은 옥당과 그 죄가 균등합니다. 옥당과 함께 체척(遞斥)의 벌을 받게 하소서."
하니, 상이 모두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옥당에서 처치하여 출사(出仕)하기를 청하니,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8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上下敎曰: "頃日玉堂之官, 不謀首僚, 狙擊憲長, 黨同伐異, 漸不可長。 予爲是懼, 發其病而警飭之, 彼復張皇辭說, 假託公論, 飾虛遂非, 欺蔽君上, 而臺閣寥寥無人糾正, 今日國事, 可謂寒心。 朴炡等五人, 不可仍在論思、侍從之地, 竝遞其職。 令該曹, 隨闕補外, 以懲此習。" 都承旨金尙憲等啓曰: "朴炡等補外之命, 臣等卽當奉承傳旨, 分付該司, 第念炡等不待長官之來會, 先自上箚, 雖違舊規, 謂之不謀, 則似非其實。 南以恭不合憲長之論, 亦非炡等猝然倡發, 謂之狙擊, 黨同伐異, 則亦非實情。 況炡等疏中, 有支離泛濫之辭, 亦何敢有假托虛飾, 欺蔽君上之心乎? 炡等久侍經幄, 意誠無他。 伏惟聖量如天, 必容再思。 臣等謹秉筆以竢。" 答曰: "炡等旣有所失, 遞職補外, 有何不可乎?" 吏判金瑬, 因經筵入侍, 啓曰: "今日有玉堂諸臣補外之命。 五人一時去朝, 恐駭瞻聆。 其中或有聯名者, 而非其本意云。 自古用賞、用罰, 皆有差等矣。" 上曰: "主張、隨參, 豈有輕重之殊乎?" 瑬曰: "此論發自朴炡, 而不待長官, 則亦失其道。 羅萬甲, 本是氣勝喜事之人, 朝著間將有不靖之端矣。" 參贊官金尙憲曰: "炡等雖有率爾之失, 南以恭之不合憲長, 果有物議。 殿下斥之以黨同伐異, 則必不服罪矣。" 金瑬又以隨參人勿爲補外之意, 再三陳啓, 上乃許之。 於是, 執義李埈、掌令姜大進ㆍ金榮祖、持平黃紐等啓曰: "朝廷之事, 貴乎得中。 臣子自以好惡, 互相擠援, 事或至於過中, 則豈朝廷之福哉? 宋 慶曆中, 有賈、范之黨, 當時執政, 不分黑白, 一徇偏詖之私, 賴仁宗至仁, 輔之以韓琦之賢, 通融二黨, 惟賢才是用, 彌縫和睦之效, 終至於二黨之隙, 帖然自消, 天下之才, 不至分裂, 而終爲國家之用, 治道之隆, 至今言之。 朝廷在數十年前, 互爲朋黨, 是非不公, 此固國家之巨患也。 殿下於更化之初, 深創是弊, 用人之際, 不問彼此, 付授當器, 各宣其能, 譬如春風方至, 群芳竝敷, 德意孚洽,朝野胥慶。 近因玉堂論劾南以恭一事, 殿下慮其排擯異己, 乃下嚴敎, 殿下鎭浮之意, 可謂至矣。 人之才行, 自古罕全, 曲成則物皆可用, 求備則人皆可棄。 南以恭之才, 雖不可棄, 而其跡則亦有可訾, 玉堂之論, 亦爲有理矣。 其論之發, 雖未免率爾之失, 其心所在, 未見有相軋之私。 臣等不敢以黨同伐異之名, 有所論列者, 誠以此也。 今承聖敎, 臣等不能糾正之罪大矣, 何敢偃然在職? 請遞臣等之職。" 正言李景奭啓曰: "臣, 後生也。 南以恭平生行事, 雖未可詳知, 而其不爲物論之所深許, 則臣亦聞之矣。 玉堂之官, 職在論思, 隨事糾正, 誠無不可, 而惟其不待長官之商〔量〕 , 徑先陳箚, 難免率爾之失矣。 然而用言之道, 只觀其心之公私, 其事之曲直而已。 心苟公矣, 事苟直矣, 雖或率爾過激, 而明主不以此罪言者, 蓋人人各盡其懷, 而取舍之在我耳。 今者玉堂諸臣之論, 其心果出於私, 而其事果在於曲耶? 其箚疏曲折, 臣不敢知, 而若以其論爲黨同伐異, 則恐不然也。 玆者伏覩聖敎, 不能糾正之罪, 臣實有焉。 請命遞斥臣職。" 司諫李潤雨、獻納權濤、正言高傅川啓曰: "臣等頃見玉堂請遞南以恭之箚, 而不肯繼爲論列者, 非以以恭心跡爲無可論, 而玉堂之論, 爲有所失也, 誠以以恭爲人, 元非無可論者, 而玉堂之箚措語委曲, 別無過當之失故也。 今見聖敎, 臣等相顧驚駭, 不知聖意之所在也。 使以恭少無可論之事, 而玉堂諸臣果欲排擯異己, 則今日指揮, 未爲不可, 而以恭於戊戌、己亥年間, 立幟邪論, 擠排士類, 如柳成龍去國, 亦其事業。 小北、大北數十年病國、斁倫之變, 主張作俑者, 何人耶? 如欲一一追論, 則非惟不當置於兩司, 隨行百執事, 亦其幸也。 豈可以年少輩處事率爾之失, 而更下嚴旨, 盡遞其職乎? 臣等非但不爲糾正, 便又陳箚分疏, 臣等之於玉堂, 厥罪惟均, 請與玉堂, 同被遞斥之罰。" 上竝答以勿辭。 玉堂處置請出, 從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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