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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 9권, 인조 3년 5월 7일 갑인 2번째기사 1625년 명 천계(天啓) 5년

홍문관이 대사헌 남이공을 체직시킬 것을 논하다

홍문관이 대사헌 남이공(南以恭)을 논박하여 체직시켰다.

이때 남이공이 외람되이 헌장(憲長)을 차지하여 인망(人望)이 부족하였는데 김류가 천거해 임용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감히 한마디도 입 밖에 내어 논하지 못하였다. 박정이 암행 어사로 일을 마치고 조정에 돌아와서 곧 응교 유백증(兪伯曾)에게 말하기를,

"근일의 제배(除拜)가 어찌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 남이공처럼 하자만 있고 덕망이 없는 자도 헌장이 되었으니, 국사를 알 만하다. 내가 차자를 올려 체직시키려 하는데 어떻겠는가?"

하니, 유백증도 당연하다고 하였다. 최명길(崔鳴吉)장유(張維)가 모두 진정시켜 보합(保合)을 유지할 것을 말하였으나 박정은 듣지 않고 유백증, 교리 나만갑(羅萬甲)·김반(金槃), 부수찬 이소한(李昭漢)과 더불어 차자를 올리기를,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은 어진 이를 임용하고 유능한 자를 부리는 것일 뿐인데 어진 이란 덕이 있는 자를 말하고 유능한 자란 재주가 있는 자를 일컫습니다. 자고로 재주와 덕을 겸비한 사람은 진실로 쉽게 얻기 어려우니, 재주가 있는 자라면 하자가 있다 하더라도 전체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하며 능함을 헤아려서 직책을 맡기는 것이 실로 기량에 따라 부리는 방법인 것입니다.

오직 맡기고 부리는 데는 각각 합당한 바가 있기 때문에 어진 자가 지위에 있고 능한 자가 직책에 있은 연후에야 비로소 사람 쓰는 방법이 극진하여 혼란스러운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때문에 어질면서도 재주가 짧은 자에게는 능한 자의 직책을 책임지울 수 없는데, 하물며 덕이 없으면서 하자가 있는 자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약간의 장점이 있다 하더라도 어찌 어진 자의 지위에 두어 막중한 책임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대관(臺官)의 임무는 임금의 이목이 되어 백관을 규찰하고 기강을 바로잡는 것이 바로 그 직책입니다. 장관에 이르러서는 그 선발이 더욱 중요하여 진실로 한 시대의 중망(重望)을 지고 여론에서 인정받은 자가 아니면 그 지위에 외람되이 처하여 책임을 맡을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대사헌 남이공은 약간의 재국(才局)은 있다 하지만 그 행신과 처사에는 본디 칭송할 만한 선한 점이 없고 유희분(柳希奮)·박승종(朴承宗)과 심복이 되어 청의(淸議)에 버림받은 지 오래입니다. 하자를 씻어버리고 하찮은 인재까지도 모두 거두어 쓰는 때를 당하여 재주에 따라 적소에 쓰는 것은 혹 불가할 게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대각에서 활개치며 장관의 자리를 더럽히고 있으니, 여론이 비웃어 남을 통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남이공으로 하여금 스스로 헤아리게 하더라도 어찌 편안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신들도 남이공의 기왕의 허물을 가지고 오늘날 전체를 버릴 소지로 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풍헌(風憲)의 중책을 결단코 이 사람에게 부여해서는 안 됩니다. 공론이 날로 격발하여 막기 어려우니, 삼가 속히 체직시키소서."

하니, 답하기를,

"남이공은 큰 하자가 없으니, 이 직임에 두는 것이 불가하지 않다. 그대들이 장황한 말로 기필코 체직시키려 하니,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죄없는 대간을 경솔히 체직시킬 수 없으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고, 인하여 정원에 하교하기를,

"옥당(玉堂)에 장관이 없는데 대간을 체직시키기를 논하니, 그런 전례가 있는가? 승지는 상고해 아뢰라."

하였다. 승지 조익(趙翼)이식(李植)이 아뢰기를,

"옥당의 차자와 등록(謄錄)이 병화(兵火)에 유실되었습니다. 폐조(廢朝) 때에는 간혹 옥당에 장관이 없는데도 대간의 체직을 논한 경우가 있었는데, 지금 그것을 가져다가 근거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선조조의 일은 지금과는 서로 거리가 멀기 때문에 신들의 견문이 고루하여 상고할 수 없습니다. 대개 옥당이 대간의 체직을 논하는 것은 드문 일이어서 장관이 없는데도 그런 일을 하는지의 여부는 상고할 수가 없으나, 여느 때 일을 논할 경우에는 중대한 것이라도 혹 장관을 기다리지 않고 차자로 논하기도 합니다."

하니, 알았다고 답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무릇 일을 논하는 체재는 시비에 달려 있을 뿐이다. 더구나 사람은 각기 소견이 있는데 어찌 동료들의 의논이 꼭 같기를 기다릴 필요가 있겠는가. 지금 부제학 홍서봉(洪瑞鳳)남이공이 헌장(憲長)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으나 김류에게 미움을 살까 두려워서 이리저리 회피하고 이 논의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그의 처사는 정직하지 못하다고 할 만하다. 주상은 또 장관의 의논을 기다리지 않았다는 것으로 박정 등의 죄로 삼았으니, 박정 등의 마음을 승복시킬 수 있겠는가. 정원의 회계도 역시 명백하지 못하니, 아, 애석하다.

상이 하교하였다.

"대사헌 남이공은 비록 유희분·박승종과 함께 서로 친했으나 폐조 때에는 이원익(李元翼)과 더불어 간악한 사람의 지척을 함께 받았고, 여러 해 동안 적소에 있기까지 하였다. 지금 설원할 때를 당하였으니 마땅히 발탁을 해야 할 것인데, 옥당이 장관을 기다리지 않고 버젓이 차자를 올려 그를 물리치려 하니, 이는 참으로 무슨 심사인가. 남이공이 이 직임에 있은 지 지금 이미 달포가 지났으나 대신·대관 중에 한 사람도 그가 적합하지 않음을 말하는 자가 없었다. 그런데 옥당은 공론을 가탁하여 자기와 의견을 달리하는 자를 배척하니, 무례하기 그지없다. 이 버릇이 자란다면 나라가 나라꼴이 되지 못할 것이니, 나는 매우 한심하게 여긴다. 이 뜻을 정원은 알라."


  •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6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역사-편사(編史) / 왕실-국왕(國王) / 인물(人物)

○弘文館論遞大司憲南以恭。 時, 以恭冒居憲長, 不厭人望, 而金瑬薦用, 故人莫敢出一言論之。 朴炡以暗行御史, 竣事還朝, 卽語應敎兪伯曾曰: "近日除拜, 何至於此耶? 如以恭之有身累無德望者, 亦爲憲長, 國事可知矣。 吾欲箚遞, 何如?" 伯曾亦以爲然。 崔鳴吉張維, 皆以鎭定保合爲言, 而不聽, 與伯曾及校理羅萬甲金槃、副修撰李昭漢等, 陳箚曰:

爲國之道, 任賢使能而已。 賢者, 有德之謂也; 能者, 有才之稱也。 自古才德兼備之人, 則固難易得, 而若其有才者, 雖有瑕累, 不可全棄。 捨短而取長, 量能而授職, 實是器使之道也。 惟其任之使之, 各有攸當, 故賢者在位, 能者在職然後, 始可謂盡用人之方, 而無淆亂之失矣。 是以, 賢而才短者, 尙不可責以能者之職。 況無德而有瑕者, 雖有尺寸之長, 豈可置賢者之位, 任以莫重之責乎? 臺官之任, 作人主耳目, 糾察百僚, 振肅綱紀, 乃其職也。 至於長官, 其選尤重。 苟非負一時重望, 爲輿論所許者, 則不可冒居其位, 承當其責也明矣。 大司憲南以恭, 雖曰少有才局, 而其行身處事, 素無可稱之善。 曾與柳希奮朴承宗, 結爲心腹, 爲淸議所棄久矣。 當此滌瑕蕩穢, 菅蒯俱收之日, 隨才器用, 或無不可, 而今乃翺翔臺閣, 冒玷長官之位, 則不但物議嗤點, 無以彈壓而已, 使以恭自揣, 亦豈晏然而已乎? 臣等亦非以以恭旣往之愆, 而爲今日全棄之地, 顧風憲重責, 決不可付諸此人。 公論日激, 有難沮遏, 伏乞亟遞其職。

答曰: "南以恭, 無大瑕累, 置諸此任, 未爲不可。 爾等張皇辭說, 必欲遞去, 未解其意也。 無罪臺諫, 不可輕遞, 勿爲煩瀆。" 仍下敎政院曰: "玉堂無長官, 而無端論遞臺諫, 有前規耶? 承旨考啓。" 承旨趙翼李植啓曰: "玉堂箚子《謄錄》, 失於兵火。 在廢朝時, 或有玉堂無長官, 而論遞臺諫者, 今不可取以爲據。 宣祖朝事, 則今已差遠, 臣等聞見孤陋, 時未有考。 大槪玉堂論遞臺諫, 是稀罕之事。 無長官, 而爲之與否, 雖無所考, 常時論事, 則雖係重大, 或不待長官而箚論矣。" 答曰: "知道。"

【史臣曰: "凡論事之體, 惟在是與非而已。 況人各有所見, 則何必待僚議之必同哉? 今者副提學洪瑞鳳, 非不知南以恭之不合憲長, 而特恐見忤於金瑬, 回曲固避, 不參是論, 則瑞鳳處事, 可謂不直也。 主上又以不待長官, 爲等之罪, 其能服等之心乎? 政院回啓, 亦不明白, 吁可惜也!"】

上下敎曰: "大司憲南以恭, 雖與相厚, 其在廢朝, 與李元翼同受奸人之斥, 至於在謫累年。 今當追雪之辰, 合有奬拔之擧, 而玉堂不待長官, 偃然陳箚, 欲爲斥去, 是誠何心哉? 以恭之居此任, 今已月餘, 而大臣、臺官, 無一人言其不合, 玉堂假托公議, 排擯異己, 無謂甚矣。 此習若長, 則國不爲國, 予極寒心。 此意政院知悉。"


  •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6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역사-편사(編史) / 왕실-국왕(國王)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