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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 9권, 인조 3년 4월 8일 을유 2번째기사 1625년 명 천계(天啓) 5년

형조 판서 오윤겸이 능원군 사건의 처리와 관련하여 사직하기를 청하다

형조 판서 오윤겸(吳允謙)이 차자를 올려 사직하였다.

이때 능원군(綾原君) 이보(李俌)가 살인한 일이 있어 상이 형조로 하여금 실상을 조사하게 하였는데, 사계(査啓)가 이미 들어가자 대관(臺官) 최명길(崔鳴吉) 등이 왕의 엄한 지척을 입었다. 때문에 여론이 "형조가 분명하게 사핵하지 않아 성상의 노여움을 유발시켰다." 하고 떠들썩하게 허물을 형조로 돌렸다. 이에 오윤겸은 마음이 불안하여 세 번이나 정사(呈辭)하였으나 체직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때에 다시 또 차자를 올려 사직하기를,

"전번에 형조에서 정영신(丁永信)의 면천 종량(免賤從良) 및 치사(致死)의 원인을 사핵할 때 시친(屍親)013) 의 공초(供招)에만 의거하여 회계(回啓)하였습니다. 지금 듣건대 정영신의 집에서 부정한 정상을 숨긴 일이 없지 않다는데 그 실상을 잘 알아내지 못하였으니, 형조에서 실수한 것이 현저하게 드러났습니다. 이로 인하여 대관이 모두 체직되고 엄한 성지(聖旨)가 여러 번 내려져 대간의 기풍이 저상되고 성상의 덕이 훼손되게 되었으니, 형조가 진 죄가 이에 이르러 더욱 큽니다. 대관은 귀척을 피하지 않고 법을 지켜 일을 논하였는데, 해조(該曹)는 문안(文案)에 얽매여 사계(査啓)가 사실과 어긋났으니, 시비가 매우 분명하고 공론이 지극히 엄정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성상께서는 편계(偏係)를 끊어버리고 대헌(臺憲)을 장려하소서. 그리고 속히 신을 해직시켜 보고 듣는 사람들의 의혹을 풀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내용을 자세히 알았다. 경은 사직하지 말고 조리한 다음 직무를 수행하라."

하였다. 재차 차자를 올리니 이에 체직시키고 단지 계(啓)자만을 찍어서 내렸다. 재신의 소차에 계자를 찍는 일은 일찍이 없었던 일이므로 사람들은 중신(重臣)을 우대하는 도리가 아니라고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4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2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註 013]
    시친(屍親) : 살해된 사람의 친척을 가리킨다.

○刑曹判書吳允謙, 上箚辭職。 時綾原君 有殺人之事, 上令刑曹, 査考實狀。 査啓旣入, 臺官崔鳴吉等, 重被嚴旨之斥, 故物議以爲: "刑曹不得分明査覈, 以致聖怒", 譁然歸咎。 於是, 吳允謙不安于心, 至於三度呈辭, 未蒙許遞。 至是, 又上箚辭職曰:

頃日, 臣曹査覈丁永信免賤從良及致斃根因也, 只據屍親之招, 回啓矣。 今聞永信之家, 不無回隱不直之情, 而不能鉤得實狀, 臣曹顯有所失。 因此臺官盡遞, 嚴旨屢下, 使臺風摧沮, 聖德虧闕, 臣曹之罪, 至此而尤大。 臺官不避貴戚, 執法論事, 該曹拘於文案, 査啓失實, 是非甚明, 公議至嚴。 伏願聖明, 絶袪偏係, 奬右臺憲, 亟命斥免臣職, 以解瞻聆之惑。

答曰: "省箚具悉。 卿宜勿辭, 調理察職。" 再箚, 乃遞, 而只踏啓字以下。 宰臣疏箚, 踏啓字, 曾所未有也。 人以爲非優待重臣之道云。


  •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4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2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