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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 9권, 인조 3년 4월 3일 경진 2번째기사 1625년 명 천계(天啓) 5년

연평 부원군 이귀가 언로를 널리 열고 대각을 용서할 것을 청하다

연평 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가 차자를 올려 언로를 널리 열고 대각을 너그러이 용서하라고 청하였다. 그 차자의 대략에,

"신이 삼가 살피건대, 전하께서는 총명하고 영민하여 정사를 밝게 익히고 인자하고 공검(恭儉)하여 대신을 경건하게 예우하시며, 모든 성색(聲色)·화리(貨利)·사치·유희 등 정사를 해치고 나라를 병들게 할 수 있는 것은 일찍이 한 가지도 하신 일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신민이 전하께 크게 기대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러나 큰 뜻이 확립되지 못하여 매양 전철을 그대로 따르려 하고 성의가 부족하여 형식만 꾸미는 것을 면하지 못하고, 도량이 넓지 못하여 능히 충언(忠言)을 허심 탄회하게 받아들이지 못하십니다. 이와 같은 세 가지 병통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성덕(聖德)이 날로 광대한 영역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치도(治道)가 옛날의 융성한 시대로 만회되지 못하고 중흥의 대업이 후퇴만 하고 전진은 없게 되어, 장차 사방 백성들의 기대를 크게 위로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언로에 대한 한 조항을 전하를 위해 다 진달하겠습니다.

언로라는 것은 국가의 혈맥입니다. 혈맥이 막히면 사람이 반드시 죽고 언로가 막히면 나라가 반드시 망합니다. 자고로 영특한 군주는 허심 탄회하게 남의 말 듣기를 좋아하였는데 유도해서 말을 하도록 한 것은 어찌 신하가 진달하는 것이 모두 격언이어서 그러했겠습니까. 더러는 알직(訐直)에서 나오고 또 참람 추솔한 데에 관련되기고 하고 오활하여 행하기 어렵고 착오가 나서 사실과 다르더라도 모두들 너그럽게 수용하되, 아름다운 말이 혹시라도 묻혀 있을까 염려하였습니다. 때문에 뭇사람의 마음이 서로 기뻐하고 모든 책략이 다 거론되어 위에는 잘못된 처사가 없고 아래에는 숨겨진 실정이 없었습니다.

만일 만승(萬乘)의 존엄으로 뇌정(雷霆)의 위세를 가지고 혹 잘못을 수식하여 스스로 비호하고 혹 변론하여 승리를 다툰다면 정직한 자는 저상(沮傷)을 면치 못하고 나약한 자는 반드시 아첨하게 되어서 위망의 화가 당장 조석 사이에 일어나게 된다 하더라도 그 누가 임금을 위하여 입을 열려 하겠습니까.

광해가 처음 정사할 때에는 대단한 과악(過惡)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다만 곧은 말을 듣기 싫어해서 매양 ‘서서히 발락하겠다.’는 말을 가지고 간언을 거절하는 묘책으로 삼았기 때문에 임금은 혼매해지고 신하는 아첨하여 점차로 전복되게 된 것입니다. 감계(鑑戒)할 일이 멀리 있지 않은데 전하께서는 오히려 경계할 줄을 모르시니, 이는 신이 깊이 걱정하고 통탄하는 일입니다. 전하께서 대간을 경멸하여 보통 관원과 다름없이 여김에 따라 그들이 논하는 것은 먼저 사실과 다름을 의심하여 그들이 미세한 일을 논하고 사소한 관원을 탄핵한다 하더라도 즉시 윤음을 내리지 않으시니, 때문에 대간이 된 자는 평소에 강직하다고 일컬어지는 자라도 감히 지기(志氣)를 펴지 못하고 논계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서로 돌아보고 망설이면서 ‘이것이 과연 임금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하고는 오직 책임 메우기만을 생각하여 금방 발설했다가 곧 중지해버립니다. 일이 궁중에 관계되고 말이 귀척에 저촉된 것이면 이치의 곡직과 일의 시비를 막론하고 준엄한 비답을 내리기도 하고 싫어하는 기색을 현저하게 보이기도 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냉정한 말로 간신(諫臣)을 꾸짖기까지 합니다. 전번 능원군이 살인한 일은 항간에서 전언되었기 때문에 언관은 들은 대로 논열하여 조사해 다스리기를 청했을 뿐이니, 경중과 허실은 본래 변핵(辨覈)할 곳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일이 있으면 죄주고 그런 일이 없으면 그만입니다. 능원군에게 손상될 것이 뭐 있으며 전하를 저버리는 것이 뭐 있겠습니까. 그런데 전하께서 처음에는 무함한다고 분부를 하고 나중에는 체차하라는 명을 내리셨으니, 이것이 과연 성주(聖主)의 지공한 마음이며 넓은 도량에 의한 처사입니까.

무함이라는 것은 마음속에 질투하는 바가 있어 몰래 중상을 가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의 법관이 능원군에게 무슨 사감이 있어 기필코 위험한 방법으로 중상하려 하겠습니까. 왕의 말씀이 한번 내려지면 사방에 전해 지니 중외에 있는 유식한 선비들이 전하의 마음을 엿볼까 두렵습니다. 지금 공경(公卿)의 지위에 있는 자들은 모두가 중신 숙망(重臣宿望)입니다만, 순근(醇謹)한 사람은 여유가 있으나 강직한 사람은 부족하여 면전에서 과감하게 간하는 기풍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겠습니다. 신진 명류(新進名流)들이 대각에 있더라도 임금에게 중시되지 못하는 탓으로 강자는 말해도 믿지 않고 약자는 말하기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해를 돌보지 않고 광언 망동(狂言妄動)을 하는 자는 겨우 신뿐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차자에 진달된 내용 모두가 격언이니 경이 임금을 사랑하는 충성이 더욱 가상스럽다. 내가 마땅히 명심하여 스스로 살피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1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延平府院君 李貴上箚, 請廣開言路, 優容臺閣。 其箚略曰:

臣伏見, 殿下聰明英睿, 明習政事, 仁慈恭儉, 敬禮大臣, 凡諸聲色貨利、侈靡遊戲, 可以害政而病國者, 殿下未嘗有一於斯, 此臣民之顒望於下風者也。 然而大志未立, 每欲因循塗轍; 誠意不足, 未免修飾文具; 度量不弘, 不能虛受忠言。 若此三病不袪, 則臣恐聖德無以日就光大之域, 治道無以挽回隆古之盛, 中興之業有退無進, 將無以大慰四方之望也。 請以言路一款, 爲殿下畢陳焉。 夫言路者, 國家之血脈也。 血脈壅則人必死, 言路塞則國必亡。 自古明君英主, 虛心樂聞, 導之使言者, 豈以臣下所陳, 悉皆格言? 雖或出於訐直, 涉於僭率, 踈闊而難行, 謬錯而失實, 亦皆優容而翕受, 猶恐嘉言之或伏, 故群心胥悅, 群策畢擧, 上無過擧, 下無隱情。 若以萬乘之尊, 挾雷霆之勢, 或飾非而自護, 或騁辯而爭勝, 則方直者未免摧沮, 懦弱者必至阿媚, 雖有危亡之禍, 迫在朝暮, 誰肯一爲人主發口哉? 光海初政, 非有大段過惡, 只因惡聞直言, 每以徐當發落, 爲拒諫之妙策, 故君闇臣諂, 馴致顚覆。 鑑不遠, 而殿下猶不知戒, 此臣之深憂, 而隱痛者也。 殿下輕蔑臺諫, 無異庶官, 凡其所論, 輒先疑其失實, 雖論細事、劾小官, 亦未肯卽賜允兪。 以此爲臺諫者, 雖素稱剛鯁, 亦不敢展舒志氣, 欲有論啓, 則輒相顧趑趄曰: "此果可以回天乎?" 惟思塞責, 乍發旋止。 至於事關宮禁, 言涉貴戚, 則無論理之曲直, 事之是非, 或明下峻批, 或顯示厭色, 至以情外之語, 詬斥諫臣。 如頃日綾原殺人之事, 閭巷傳說, 故言官隨聞論列, 只請査治, 則輕重虛實, 自有辨覈之地, 有其事則罪之, 無其事則置之而已。 何傷於綾原, 何負於殿下哉, 而殿下始有構陷之敎, 終有遞差之命。 此果聖主至公之心, 大度之擧乎? 夫構陷云者, 內有所嫉, 而陰加中傷之謂也。 今之法官, 有何私憾於綾原, 而必欲中傷以危法哉? 王言一下, 四方傳誦。 臣恐中外有識之士, 有以窺殿下之淺深也。 方今處公卿之位者, 無非重臣宿望, 然而醇謹有餘, 骨鯁不足, 未見有犯顔敢諫之風。 新進名流, 雖居臺閣, 不能見重於人主, 剛者有言不信; 弱者以言爲戒, 而狂言妄動, 不顧利害者, 僅有臣一箇耳。

答曰: "箚中所陳, 無非格言, 益嘉卿愛君之忠。 予當服膺自省焉。"


  •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1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