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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 8권, 인조 3년 3월 19일 정묘 3번째기사 1625년 명 천계(天啓) 5년

동양위 신익성에게 영창 대군의 비문을 쓰도록 명하다

동양위(東陽慰) 신익성(申翊聖)에게 나가서 영창 대군(永昌大君)의 비문(碑文)을 쓰도록 명하였는데, 자전(慈殿)의 분부에 따른 것이다. 영창 대군 이의(李㼁)는 나이 8세 때에 간흉들의 모함을 받았는데, 광해강화부에 가두면서 궁녀 두 사람을 따라가게 하였다. 자전이 옷 한 벌을 만들어 보내었는데, 영창 대군이 펴 볼 적에 옷에 얼룩진 데가 있었다. 이에 궁녀들에게 묻기를,

"새 옷에 어찌하여 얼룩이 있는가?"

하니, 궁녀들이 말하기를,

"이는 자전께서 눈물을 흘리신 흔적입니다."

하자, 영창 대군이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였다. 그 뒤에 광해가 두 궁녀를 잡아오라고 하였다. 의금부 도사가 위리 안치한 곳의 문에 당도하여 나오라고 재촉하자, 궁녀들이 통곡하면서 영창 대군에게 하직하니, 영창 대군이 단정하게 앉아 미동도 하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은 빨리 나가거라."

하였다. 광해이정표(李廷彪)를 별장(別將)으로 삼아 지키게 하면서 몰래 빨리 죽이도록 하자, 이정표광해의 뜻을 받들어 영창 대군이 거처하는 데로 가서 방에 불을 넣지 않았다. 이에 영창 대군이 늘 의롱(衣籠) 위에 앉았고, 때때로 섬돌 가에 나아가 하늘을 향하여 빌기를

"한 번 어머니를 보고 싶을 뿐입니다."

하였다. 이정표가 음식에다 잿물을 넣어 올리자 영창 대군이 마시고서 3일 만에 죽었다. 강화 사람들이 지금도 이 일을 말하려면 슬픔으로 목이 메어 말을 하지 못한다.

자전이 복위한 다음에 대군의 예로 다시 장사하고, 또 비를 세워 그 때의 사적을 기록했다. 묘는 광주(廣州)에 있다.


  • 【태백산사고본】 8책 8권 46장 B면【국편영인본】 33책 690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命東陽尉 申翊聖, 往書永昌大君碑文, 蓋因慈殿之敎也。 永昌大君 年八歲, 被奸兇構捏, 光海囚于江華府, 使宮女二人隨往。 慈殿造送一衣, 永昌拆視之, 則衣有汚點處, 問宮女曰: "新衣何汚耶?" 宮女曰: "此乃慈殿淚痕也," 永昌揮涕嗚咽。 厥後光海命拿二宮女以來, 禁府都事到圍門催出, 宮女痛哭, 辭於永昌, 永昌端坐不動曰: "汝速出去。" 光海李廷彪爲別將而守之, 潛使速殺, 廷彪光海意, 至於永昌所處之室, 不通火氣。 永昌常坐衣籠上, 而時往小階邊, 向天祝曰: "欲一見母而已。" 廷彪以灰水和飮食以進, 永昌飮之, 三日乃死。 江華之人, 至今言此事, 至於悲咽不能言。 慈殿復位之後, 改葬以大君禮, 又立碑以記其時事跡, 墓在廣州


  • 【태백산사고본】 8책 8권 46장 B면【국편영인본】 33책 690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