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사하여 인성군에 대해 결단을 내릴 것을 청하다
합사(合司)하여 아뢰기를,
"일이란 본시 형식은 같으면서도 내용은 다른 것이 있으니, 일괄적으로 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응서(應犀)와 세증(世曾)의 옥사(獄事)가 허위라고 해서 기자헌(奇自獻)과 박홍구(朴弘耉)의 옥사도 허위라고 하겠습니까. 광해(光海)가 동기(同氣)를 원수처럼 본 것은 그럴만한 사실이 없는데도 미워하고 시기해서 그런 것이지만, 인성군(仁城君)이 종사(宗社)에 죄를 얻은 일도 그런 실상이 없는 것이라 하겠습니까. 지난 날 자헌이 역모를 꾸몄을 때 인성군과 모의를 한 흔적이 현저했고 보면, 지난 날 함께 모의한 마음으로 유독 오늘날에는 호응하지 않았겠습니까.
정방열(鄭邦說)은 공초하기를 ‘윤인발(尹仁發) 등 5∼6인이 향교동(鄕校洞)에서 거접(居接)하며 깊은 밤중에 인성군의 집에 들어가니, 모두들 보고나서 「그대들은 그 일을 성공시켜야 한다.」고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윤안형(尹安亨)은 공초하기를 ‘이미 어인(御印)을 주조(鑄造)한 뒤 격문(檄文)에 찍어 왕자의 집에 보관했다.’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기자헌이 미복(微服) 차림으로 이시언(李時言)의 집에 오고, 인성군도 미복 차림으로 왔는데, 가지고 온 은(銀) 3천 냥 가운데 2천 냥은 이시언에게 주어 내병(內兵)을 불러 모으도록 했고 1천 냥은 성우길(成佑吉)에게 주어 외방에서 원병(援兵)을 불러 모으도록 했다.’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김극빈(金克鑌)은 곧 인성군의 매부(妹夫)이므로 몹시 합세(合勢)하려고 했으며, 기타 꿈풀이를 하고 미리 정승될 사람을 정해놓는 등 한두 가지 일만이 아니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로 본다면 어찌 다만 흉악한 적들의 입에만 오르내렸을 뿐이겠습니까.
지난 날 용서해 준 것이 오늘날 화를 빚어낸 계제가 되었습니다. 흉악한 역적들이 이공(李珙)에게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온갖 계획을 몰래 도모하여 기화(奇貨)로 삼으면서 복주(伏誅)되어도 뉘우치지 않고 죽어도 다시 일어나는 것이니, 인심을 의구하게 하고 종사를 거의 위태롭게 만든 것이 모두 이공을 일찍 처치하지 않은 데서 연유하는 것입니다. 신들이 비록 형편없기는 하지만 어찌 감히 지난 날의 죄악을 가지고 전하를 오도하겠습니까. 바로 인성군 부자의 【 둘째 아들에 관한 말은 박지장(朴知章)의 공초에서 나온 것이다.】 일은 전일의 것과는 같지 않기 때문에 종사의 원대한 계책을 위하여 대궐문을 두드리며 호소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인데, 보존시키려는 뜻이 실로 처치하는 가운데 내포되어 있으니, 주저하지 마시고 통쾌하게 결단을 내리소서."
하니, 답하기를,
"역적의 옥사에 비록 진위(眞僞)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흉악한 무리들의 입에 오른 사람의 입장에서 원통해 하는 것은 똑같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도 참여한 흔적이 없는데, 옥사의 진위를 어찌 논할 것이 있겠는가. 그대들이 전일에 여러 흉적이 공초한 것을 가지고 모함할 발판을 삼고 있다마는, 인성군은 국가가 파천(播遷)하던 날을 당하여 처음부터 호종(扈從)하며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만약 함께 모의한 일이 있었다면 어찌 이렇게 따라갔을 리가 있겠는가. 전후의 실정과 흔적에 조금도 의심스러운 단서가 없는데도 그대들이 이렇게 논하고 있으니, 지난 날과 같이 악으로 오도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일은 결코 따를 수 없으니, 물러가서 생각해 보고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656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사법-치안(治安) / 사법-탄핵(彈劾) / 변란-정변(政變)
○合司啓曰: "事固有名同而實異者, 不可以一槪論也。 應犀、世曾之獄僞也, 自獻、弘耉之獄亦僞乎? 光海之讐同氣, 無其實而忌克也,。 仁城之得罪宗社, 亦可謂無其實乎? 前日自獻之作逆, 與仁城顯有通謀之跡, 以前日通謀之心。 其獨不應於今日乎? 鄭邦說之招曰: ‘尹仁發等五六人, 居接于鄕校洞, 夜深入仁城家, 則皆見之曰: 『君輩成其事可也』。 尹安亨之招曰: ‘已鑄御印, 印於檄文, 蕆于王子家。 ’ 又曰: ‘自獻以微服來李時言家, 仁城亦以微服至, 持銀三千兩, 二千兩則授李時言, 使召募內兵, 一千兩則授成佑吉, 召募外援。 ’ 又曰: ‘金克鑌是仁城之妹夫, 故深欲合勢, 其他獻夢推卜之狀不一,’ 而足以此見之, 豈特爲兇賊之藉口而已哉? 前日之容貸, 所以成今日之禍階也。 兇逆之徒, 知珙之有心, 故百計潛謀, 以爲奇貨, 誅之不悛, 死而又起, 使人心疑懼 宗社幾危者, 皆由於處珙之不早也。 臣等雖無狀, 何敢以曩時之惡, 導殿下哉? 直以仁城父子 【第二子之說, 出於朴知章招辭】 之事, 與前日不同。 故爲宗社大計, 不得不叩閽籲呼, 而保全之意, 實寓於處置中矣。 請勿留難, 快賜睿斷。" 答曰: "逆獄雖有眞僞之不同, 爲兇徒藉口之人, 則其冤痛一也。 少無預知之迹, 獄之眞僞, 何可論之哉? 爾等雖以前日諸賊之招, 爲構陷之地, 仁城當國家播遷之日, 自初扈從, 暫時不離。 若有通謀之事, 豈有如是從往之理乎? 前後情跡, 少無可疑之端, 爾等如是論之, 非導以曩日之惡而何? 此事決不可從, 其退而思之, 勿爲更煩。"
-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656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사법-치안(治安) / 사법-탄핵(彈劾) / 변란-정변(政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