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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 7권, 인조 2년 9월 13일 갑자 5번째기사 1624년 명 천계(天啓) 4년

대사간 김상헌 등이 국정과 수양에 대해 차자를 올리다

대사간 김상헌(金尙憲), 사간 정종명(鄭宗溟), 헌납 김시양(金時讓), 정언 윤지(尹墀)·김반(金槃) 등이 차자를 올리기를,

"신들이 듣건대, 하지(夏至)는 양(陽)이 극에 이른 때인데 음(陰)이 처음 생겨나고 동지(冬至)는 음이 극에 이른 때인데 양이 처음 생겨난다 하였습니다. 들판을 가득 태우는 불길도 작은 불꽃에서 시작되며 하늘을 뒤덮는 홍수도 한 방울의 물에서 비롯되지 않는 경우가 없고, 서리를 밟는 날에 이미 얼음이 굳게 얼 것을 알게 된다고 하였는데, 이는 모두가 작은 것으로부터 크게 되고 미미한 것에서 현저하게 되는 것으로서 그 유래가 조짐이 있는 것입니다.

신들이 살펴 보건대, 전하께서 반정(反正)하신 처음에는 조심조심 두려워하시어, 한 가지 일도 엄공(嚴恭)하게 하지 않은 것이 없고 한 가지 생각도 인외(寅畏)하지 않은 것이 없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오직 소민(小民)들에게 죄를 얻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고 신하들에게 비난받지는 않을까 염려하셨으니, 성탕(成湯)이 깊은 골짜기에 떨어질 것처럼 조심하던 것이나 문왕(文王)이 조마조마하여 공경하는 마음을 가진 것도 이보다는 더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1년이 지났는데도 정치가 더 나아지지는 않고 중간에 변란을 겪어 거의 나라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단 말입니까. 그런데도 전하의 마음은 태연하신 듯 하기만 하여 일을 행하실 때나 호령을 내실 때에 나타나는 것을 보거나 성색(聲色)에 드러나는 것을 보건대 이미 우려되는 마음을 금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신들은 그 중에서도 우선 군덕(君德)에 간절한 것과 치도(治道)에 관계가 있는 것을 거론하여 진달할까 합니다.

성학(聖學)은 다시 퇴보하는 조짐이 있고, 공도(公道)는 다시 폐해지는 조짐이 있고, 언로(言路)는 다시 막히는 조짐이 있고, 요행을 노리는 길이 다시 열리는 조짐이 있고, 탐활(貪猾)이 다시 기승을 부리는 조짐이 있고, 잡인(雜人)이 내통하는 조짐이 있고, 궁금(宮禁)이 엄숙하지 못하게 되는 조짐이 있고, 여알(女謁)이 장차 행해질 조짐이 있는데, 이 여덟 가지 조짐을 막지 못하면 국가가 곧 망하고 말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맑은 마음으로 성찰하소서.

성학이 다시 퇴보하는 조짐이 있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신들이 삼가 듣건대 전하께서 요즈음 경연에 임하시면서 자못 신하들을 경시하는 기색이 있으시다 합니다. 경시하면 교만한 마음이 생기고 교만한 마음이 생기면 자신의 의견만 내세우고 남은 모자라게 여긴 나머지 마침내는 모두 나만 못하다고 여기게 되는 법이니, 어찌 이러고도 학문을 진보시킬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마음을 비우고 남의 말을 받아들이며 부지런히 자신을 격려하고 계속 학문을 닦아나가는 데 마음을 기울여 기어코 순수한 경지에 이르게 되도록 하소서. 《서경》에 이르기를 ‘오직 학문은 뜻을 공손히 하여 수시로 부족한 것을 힘써 배워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닦아지게 될 것이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시종 일념으로 학문에 뜻을 두면 자신도 모르게 덕이 닦아진다.’ 하였습니다. 학문의 공은 이렇게 진보되는 것입니다.

공도가 다시 폐해지는 조짐이 있다고 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전하께서 즉위하신 처음에는 폐정(廢政)을 닦고 훌륭한 인재를 기용했으며, 시급하지 않은 일을 혁파하고 포흠(逋欠)된 세금을 감면해 주었으며, 내사(內司)에 투속(投屬)한 사천(私賤)을 모두 본주인에게 돌려 주고, 여염에 폐단을 끼친 궁노(宮奴)를 즉각 참하여 대중에게 조리를 돌리셨습니다. 이에 인정이 흡족하게 여기고 중외(中外)가 크게 기뻐하였으니, 이는 다름이 아니라 공도(公道)가 제대로 행해진 결과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전하의 오늘날의 정치를 지난해와 비교하면 어떠합니까. 임금의 마음이 방촌(方寸) 속에서 발동하기만 해도 천 리 밖의 사람도 모두 아는 법인데, 더구나 좌우에 있는 자들이나 조정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이겠습니까. 임금과 신하의 관계는 푯대와 그림자의 그것과 같습니다. 신들이 감히 전하의 정치가 매사에 사정(私情)을 따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마는, 요즈음 조정 신하들을 보면 사정을 쓰는 것이 너무도 치성해지고 있습니다. 어찌 푯대는 바른데 그림자만 기울어지는 수가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난폭한 자를 막듯이 사심을 제거하시어 기어코 마음을 바로잡음으로써 조정을 바로잡으시고 조정을 바로잡음으로써 백관을 바로잡아 만백성이 모두 바르게 되도록 하소서. 공자가 이르기를 ‘하루라도 극기복례(克己復禮)를 하면 온 천하가 그 인(仁)에 호응하게 된다.’ 하였는데, 덕화(德化)가 펼쳐지는 것은 이처럼 빠른 것입니다.

언로가 다시 막히는 조짐이 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전하께서 즉위하신 처음에는 초야에 있는 선비의 간언이나 소관(小官)의 말도 너그럽게 포용하여 들어주지 않으신 것이 없었으므로 간언을 잘 받아들이시는 미덕을 사방에서 우러르게끔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에 와서는 대신이 아뢰는 말이나 대관(臺官)이 아뢰는 말이라 하더라도 조금만 성상의 뜻에 거슬리면 그만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십니다. 이 때문에 온 조정이 침묵을 지켜 따르기만 숭상한 나머지 간쟁하는 풍조가 순응하는 태도로 변해버리고 우뚝한 기상이 닭 벼슬처럼 위축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작록(爵祿)을 탐하는 자들은 구차하게 보존하는 것을 상책으로 여기고, 기절(氣節)을 숭상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을 좋은 계책으로 여기게끔 되었으니, 이런 풍조가 계속된다면 얼마 안 되어 이목(耳目)이 막혀버리게 되지 않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더욱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는 아량을 넓히시고 남을 포용하는 도량을 확충하도록 힘쓰시어, 사소한 일인데 어찌하여 논쟁하느냐고도 하지 마시고 작은 허물인데 어찌 대체(大體)에 손상될 것이 있겠느냐고도 하지 마소서. 그리고 말씀드린 것이 더러 과격하더라도 임금을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면 특별히 아름답게 여기어 칭찬하는 분부를 내리시고, 논계한 것이 더러 사실과 다르더라도 그 실정이 딴 뜻이 없는 것이라면 모두 넉넉히 포용하는 뜻을 보이소서. 이것이 어찌 국가의 융성한 복이 되지 않겠습니까.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임금이 과오가 있을 경우 간하다가 들어주지 않으면 떠난다.’ 하였으니,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이런 의리가 있는 것입니다.

요행을 노리는 길이 다시 열릴 조짐이 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지난 10여 년 사이에 작상(爵賞)이 아무에게나 베풀어져 현명한 사람과 불초한 사람의 구별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이익을 탐하는 염치없는 무리가 무턱대고 진출하려는 생각을 갖게 된 나머지 연줄을 대고 청탁을 하며 불꽃같은 욕심으로 사람들을 미혹하다가 마침내는 망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어 구원하여 바로잡을 수 없게 되었으니, 말을 하자니 추악하기만 합니다.

전하께서는 전에 여염에서 생활하신 적이 있으시어 묵은 폐단들을 상세히 들으셨으므로 반정하신 처음에 영구히 이런 길을 막으려 하셨습니다. 그런데 적변(賊變)이 일어난 이후로는 형벌과 상을 시행하는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짐이 날로 더욱 심해졌으므로 ‘공도 공이 아니고 죄도 죄가 아니며 오로지 세력과 이권(利權)에 달려 있다.’는 세간의 말까지 나오게끔 되었습니다. 임금이 나라를 다스려 나가는 도구는 오직 상벌 뿐인데, 요행을 노리는 길이 한 번 열리면 그 누가 힘을 다하여 그 길로 뛰어들려 하지 않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의리와 법에 입각하여 재단하시어 친척이라고 하여 외람하게 주지도 마시고 훈귀(勳貴)라고 하여 동요되지도 말아 혹시라도 다시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소서. 《서경》에 이르기를 ‘관작을 사사로이 친근한 사람에게 주지 말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총애하는 길을 열어 업신여김을 받지 않도록 하라.’고 하였으니, 경계하는 도리는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탐활이 다시 기승을 부릴 조짐이 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지난 날 권간(權奸)이 권력을 장악하면서부터 뇌물이 점점 성해져 탐오(貪汚)한 풍조가 궁중에 유입된 결과 크건 작건 간에 벼슬을 제배(除排)할 때 모두 정가(定價)가 있다는 설까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숨기고 꺼리는 듯이라도 하다가 나중에는 숨길 필요도 없다는 식으로 하였는데, 대간도 다시 바로잡지 못하고 소민(小民)들은 감히 호소하지도 못하였으며, 육지로 운반해 오고 배로 실어 오는 등 간사한 장오(贓汚)가 낭자하였으니, 옛적부터 어찌 이러한 때가 있었겠습니까. 다행히도 성명(聖明)의 시대를 만나 새로 청명하게 교화를 펼치게 되었으므로 대관이 듣고 어사(御史)가 보는 대로 많이도 잡아 가두고 계속하여 안문(按問)했습니다. 그러나 끝내는 한 사람도 법대로 처리하여 율을 바르게 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이 탐오한 자들이 속으로 비웃으며 도둑의 마음을 고치지 않고서 모두 때를 노렸다가 다시 들어올 꾀를 내고 있으니, 이런데도 징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무릇 장리(贓吏)에 관계된 옥사(獄事)는 가벼이 의논하지 못하게 하시고 죄가 현저하여 의심이 없는 자에 대해서는 법률대로 다스려 자손들까지 금고(禁錮)토록 하소서. 그리고 공정하고도 위엄이 있는 인물을 수시로 내보내어 제도(諸道)를 암행하게 함으로써 총명(聰明)을 넓히소서. 그러면 탐활(貪猾)한 무리들이 거의 징계되고 단속될 것입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믿는 데가 있어 재차 죄를 범한 자는 형벌하여 죽인다.’고 했는데, 이는 알면서도 고의로 죄를 범한 자는 용서하지 않는다는 뜻이니, 죄악을 징계하는 도리가 이와 같은 것입니다.

잡인들이 내통하는 조짐이 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신들이 삼가 듣건대 무녀(巫女)는 가장 요사스러운 자여서 반정한 뒤에 변방 지역으로 멀리 유배시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 번 사유(赦宥)를 받음으로 인해 서울에 돌아와서 다시 궁액(宮掖)과 길을 통하고 있다고 점차 말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승려가 내사(內司)에서 도첩(度牒)을 받는 것이 구례(舊例)이기는 하지만 본래 합당한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내사의 관속들은 대부분 궁액(宮掖)과 연관이 있는데, 이들이 속여 현혹하는 꾀를 부린다면, 그 폐해를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폐조(廢朝) 때는 요승(妖僧)이 궁중에 드나드는 것을 금하지 않다가 마침내 화단을 전가시키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요즈음 유점사(楡岾寺)의 승려가 몰래 본궁(本宮)에 들어와 외람되게 인문(印文)을 찍어내어 국가의 법을 범함으로써 전하께서 난처한 점이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가령 이보다 큰일이 있게 된다면 장차 어떻게 그 말류(末流)의 폐해를 금할 수 있겠습니까.

대체로 무격(巫覡)의 귀신 섬기는 일과 부처의 화복(禍福)에 관한 말은 말세 이래로 빠져드는 사람이 많은데, 부녀자의 성품은 더욱 미혹되는 경향이 있어 깨닫게 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항간의 경우 대부분 이 병폐에 걸리고 있는데, 궁궐 안이라고 해서 어찌 유독 그렇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조용히 보내시는 여가에 시험삼아 물어보시어 과연 그런 일이 있으면 즉각 통렬하게 끊어버리시고 혹시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더욱 두절시켜야 마땅합니다. 이와 함께 승려의 내사 출입을 일체 금단하심으로써 끝내 청명한 다스림이 되도록 하소서. 《소학(小學)》에 ‘색다른 사람과는 서로 접하지 않아야 하는데, 무격과 여승(女僧)은 더욱 멀리 끊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선유(先儒)들도 이처럼 경계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궁금(宮禁)이 엄숙하지 못하고 여알(女謁)이 장차 퍼지게 되는 이 두 가지 조짐에 있어서는 그 발단은 매우 미미하여도 우려되는 바는 매우 크니, 조금이라도 경계심을 늦추면 성상의 덕에 누가 되고 청명한 시대에 오점(汚點)이 되는 것이 또한 다른 사례에 비할 것이 아닙니다. 신들이 듣건대 액정(掖庭)의 궁인들이 혹 교자(轎子)를 타거나 말을 타고는 어느 때고 드나드는가 하면 혹 여염에 유숙하며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기도 하며, 또 폐조 때의 궁인들이 다시 내정(內庭)에 들어와 점점 그 수가 증가하고 있다 합니다. 이 무리들은 더러운 풍습에 오래 물이 들어 마음속으로 당시의 일을 이롭게 여기는 자들로서 연줄을 대고 청탁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들어오기를 도모했을 것이니 그 뜻을 알 만합니다.

만약 새로 들어온 사람들과 낮이나 밤이나 함께 있으면서 서로 계도(啓導)하게 될 경우 필시 그 때의 일을 즐겨 듣고서 온통 그쪽으로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외부 사람들과 서로 통하여 방금(防禁)을 무너뜨려 어지럽게 만들다가 끝내는 선물과 뇌물 등으로 못하는 짓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폐조의 궁인들과 차이가 없게 될 것인데, 전하께서는 장차 신민들에게 무슨 말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신들이 이미 들은 말이 있기에 일이 일어나기 전에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전하께서 일찍 선처하셨으면 합니다. 옛적에 송(宋) 인종(仁宗)이 당초 왕덕용(王德用)의 딸을 맞아들였다가 왕소(王素)의 한 마디에 눈물을 머금고 내보냈으니, 간하는 말을 물 흐르듯 따른 미덕은 천재(千載)의 미담(美談)이 된다 하겠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송 인종을 모범으로 삼으소서. 《시경》에 이르기를 ‘아내에게 모범이 되어 형제에까지 미치고 이로써 국가와 나라를 다스려 간다.’고 하였으니, 성인이 수신하고 제가하고 치국한 효과가 이러했던 것입니다.

대체로 천하의 일에는 본말(本末)이 있고 경중(輕重)이 있는데, 신들이 이 여덟 가지 이외에는 다시 말씀드릴 만한 것이 없다고 여기는 것은 아닙니다. 풍속이 아직 고쳐지지 않았고 기강이 아직 세워지지 않았으며, 선비의 기풍이 아직 바로잡히지 않았고 민원(民怨)이 아직 없어지지 않았으며, 난리의 싹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선 이 여덟 가지를 제거한다면 그 나머지는 번거롭게 제거하지 않아도 두서가 잡혀질 것입니다. ‘제후에게 간하는 신하 5인만 있으면 비록 무도하더라도 나라를 잃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만일 광해(光海)가 조금이라도 스스로 뉘우쳐 깨닫고서 간하는 말을 받아들여 과오를 고쳤다면 어찌 천록(天祿)이 영원히 끊기기까지야 했겠습니까. 하늘이 우리 동방을 도와 우리 전하에게 길을 열어주어 끝없이 큰 기쁨을 내리시고 또한 끝없이 큰 돌봄을 내리셨으니, 천명(天命)은 믿기 어렵고 오직 인사(人事)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이 점을 염두에 두소서.

이 여덟 가지 조목 외에도 전하께서는 혹 희노(喜怒)에 치우쳐 얽매이시기도 하고 혹 친애(親愛)에 집착한 나머지 강의(剛毅)하신 덕을 인자하게 처리하시기도 하고 사소한 일이라고 하여 혹 자세히 살피지 않으시기도 합니다. 신들이 형편없기는 하지만 어찌 감히 터무니없이 군상(君上)에게 있지도 않은 과오를 지적하고 시정(時政)에 드러나지도 않은 흠을 망령되이 논하여 스스로 정직한 체한다는 혐의를 범하겠습니까. 돌아보건대 지극히 어리석고 지극히 고루한 몸으로 외람되게 발탁되어 간관(諫官)의 대열에 끼어 있으면서 위로 성상의 은덕에 보답하지 못하고 아래로 시위 소찬(尸位素餐)의 책임만 메꾸어 왔기에 진심을 피력하여 경솔히 번독스런 행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말은 그지없이 천박할지라도 뜻은 실로 깊이 생각한 결과에서 나온 것이니, 삼가 바라건대 성명께서는 살펴 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그대들의 차자 내용을 살펴보건대 자못 매우 간절하고도 정직하니, 어찌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나무가 먹줄을 따르면 곧게 된다는 말을 내가 일찍부터 재삼 음미해 왔다. 오늘날 조정에서 침묵을 지키며 순종만 하려 한다는데, 이는 진실로 내가 그 말을 좋아하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은 소치이다. 그대들이 숨김없이 모두 진달하여 직책에 관한 일을 다 수행했기에 내가 매우 아름답게 여긴다. 차자의 내용은 아침 저녁으로 살펴보며 스스로 경계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7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642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大司諫金尙憲、司諫鄭宗溟、獻納金時讓、正言尹墀金槃等上箚曰:

臣等聞夏至, 陽之極也, 一陰生焉; 冬至, 陰之極也, 一陽生焉。 燎原之火, 莫不始於炎炎; 滔天之水, 無不始於涓涓, 履霜之日, 已知有堅氷, 皆因小而至大, 自微而至著, 所由來者漸矣。 臣等竊觀殿下反正之初, 祗祗慄慄, 無一事不在於嚴恭, 無一念不出於寅畏, 惟恐得罪於小民, 見非於群臣, 雖成湯之若隕淵谷, 文王之小心翼翼, 亦何以過? 夫何歲已一周, 治不加進, 中經變亂, 國幾不國, 而殿下之心, 若有泰然者, 其見於行事, 發於號令, 著於聲色者, 已有不勝其憂者。 臣等請擧其切於君德、關於治道者先陳焉。 聖學有復退之漸, 公道有復廢之漸, 言路有復塞之漸, 倖門有復啓之漸, 貪猾有再肆之漸, 雜人有交通之漸, 宮禁有不嚴之漸, 女謁有將行之漸。 八漸不杜, 國亡無日, 伏願殿下澄心省察焉。 何謂聖學有復退之漸? 臣等竊聞殿下近日臨筵之時, 頗有輕視群下之色, 輕視則驕心生, 驕心生則自廣狹人, 而終謂之莫己若也, 安有如此而能進其學者乎? 伏願殿下虛以受人, 勤以勵己, 緝熙殫心, 期至於純亦不已。 《書》曰: "惟學遜志, 務時敏, 厥修乃來。" 又曰: "念終始, 典于學, 厥德修罔覺。" 進學之功, 有如此者。 何謂公道有復廢之漸? 殿下卽位之初, 修廢政、擧賢才, 罷不急之務, 蠲欠逋之稅, 私賤之投屬內司者, 悉還其主, 宮奴之作弊閭閻者, 立斬徇衆。 人情翕怨, 中外大悅。 此無他, 能行公道之效也。 殿下今日之政, 與前歲何如也? 人君一心, 才動於方寸之中, 而千里之外知之, 況在左右者乎? 況在朝廷者乎? 君臣之間, 有似表影。 臣等不敢謂殿下之政, 每事循私, 而近日廷臣之間, 私意太勝。 安有表正而影仄者乎? 伏願殿下去私心, 如禦暴客, 期至於正心以正朝廷, 正朝廷以正百官, 而使萬民皆正焉。 孔子曰: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 化馳報速, 有如此者。 何謂言路有復塞之漸? 殿下卽祚之初, 草野之諫、小官之言, 無不優容聽納, 轉圜之美, 四方咸仰。 自近日以來, 雖大臣之啓、臺官之言, 少咈聖意, 輒示訑訑之色, 以是朝廷之上, 爭尙循默,諤諤變爲諾諾, 菱角化爲鷄頭, 嗜爵祿者, 以苟保爲良計, 尙氣節者, 以自退爲善策。 若此不已, 幾何而不至於塗塞耳目也? 伏願殿下益恢虛受之量, 務廓包荒之度, 勿謂小事何至於爭論, 勿謂小過何傷於大體。 所言雖或過激, 而其心出於愛君, 則特下嘉奬之敎; 所論雖或失實, 而其情實無他意, 則竝示優容之意, 豈非國家之盛福也? 《禮》曰: "君有過則諫, 諫不用則去。" 君臣之義, 有如此者。 何謂倖門有復啓之漸? 向來十餘年間, 爵賞混施, 賢不肖無別。 於是嗜利無恥之輩, 爭懷冒進之計, 夤緣圖囑, 慾火迷人, 終至喪亡而莫能救正, 言之可醜。 殿下起自閭閻, 備聞宿弊, 反正之初, 永杜此路。 賊變以來, 刑賞多岐, 滋蔓日甚, 至有功、非功、罪、非罪, 惟勢與利之諺。 人主所操而爲治者, 惟賞罰而已。 倖門一啓則孰不盡力求之哉? 伏願殿下, 裁之以義, 斷之以法, 勿以親戚而濫授, 勿以勳貴而撓奪, 毋或再蹈前轍焉。 《書》曰: "官不及私昵。" 又曰: "毋啓寵納侮。" 陳戒之道, 有如此者。 何謂貪猾有再肆之漸? 蓋自向日權奸當路, 賄賂寢盛, 貪汚之風, 流入宮中, 至於大小除拜, 皆有定價之說。 始若隱諱, 終無忌秘。 臺諫不復紏正, 小民莫敢號訴。 陸運水載, 奸贓狼藉, 自古安有如此之時乎? 幸遇聖明, 新化淸明, 臺官所聞, 御史所覩, 多被拿囚, 相繼按問, 而終未聞一人伏法正律者, 以此貪贓竊笑, 盜心不悛, 皆有乘時復入之計, 此而不懲, 何以爲國? 伏願殿下凡贓吏獄事, 勿許輕議, 現著無疑者, 繩以法律, 禁錮子孫; 頻遣公正有風力者, 暗行諸道, 以廣聰明, 則貪猾之徒, 庶幾懲戢焉。 《書》曰: "怙終賊刑。" 謂知而故犯者, 不許其宥也。 懲惡之道, 有如此者。 何謂雜人有交通之漸? 臣等竊聞巫女最爲妖怪者, 反正之後, 長流邊地。 頃因赦宥, 得還京城, 復通宮掖之路, 稍有傳播之言。 且僧徒之受牒內司, 雖是舊例, 本非所宜。 況內司之屬, 多連宮掖, 得售誑惑之計, 則其害可勝道哉? 廢朝時不禁妖僧, 出入宮中, 終致嫁禍。 近日楡店僧人, 潛投本宮, 冒圖印文, 觸犯憲綱, 致殿下有難處之端。 設有大於此者, 將何以禁其末流乎? 夫巫覡鬼神之事、佛氏禍福之說, 叔世以來, 多有陷溺。 至於婦人之性,尤所泛惑, 覺悟甚難。 閭巷之間, 率罹此患, 宮闈之內, 寧獨不然? 伏願殿下淸讌之暇, 試加訪問, 果有其由, 卽宜痛絶, 如或失實, 允宜杜絶。 僧徒之出入內司者, 竝令一切禁斷, 以終淸明之治。 《小學》曰: "凡異色之人, 不宜相接, 巫覡尼媪尤宜疎絶。" 先儒垂戒, 有如此者。 至若宮禁不嚴, 女謁將行, 此二漸者, 其端甚微, 其憂甚大, 小有不戒, 其爲聖德之玷累、淸時之滋垢, 又非他事之比也。 臣等竊聞掖庭宮人, 或乘轎上馬, 出入無常, 或有留宿閭閻, 久而不還者。 又有廢朝宮人, 復入內庭, 其數漸多。 此輩積染汚習, 心利其事, 夤緣附托, 百計圖入者, 其意可知。 若與新入之人, 日夜同處, 相爲啓導, 則必將樂聞其事, 靡然從之。 始則交通外人, 壞亂防禁, 終則苞苴賄賂, 何所不至? 若然則與廢朝宮人, 相去無別, 殿下將何以有辭於臣民乎? 臣等旣有所聞, 不得不先事而納規, 冀殿下早爲善處也。 昔 仁宗初納王德用女, 王素一言, 掩涕出送, 其從諫如流之美, 可爲千載美談。 伏願殿下以仁宗爲法焉。 《詩》云: "刑于寡妻, 至于兄弟, 以御于家邦。" 聖人修身齊家治國之效, 有如此者。 大凡天下之事, 有本、有末、有輕、有重。 臣等非謂此八者之外, 更無可言。 風俗猶未變也, 紀綱猶未立也, 士習猶未正也, 民怨猶未消也, 亂萠猶未弭也。 然先去此八者, 則其餘, 可不煩而就緖矣。 嗚呼! 諸侯有爭臣五人, 雖無道, 不失其國。 如使光海少自悔悟, 納諫改過, 豈至於永終天祿? 天祐東方, 啓我殿下, 以貽無彊之大休, 亦貽無彊之大恤, 天命難諶, 在于人事。 殿下其念之哉! 凡此八條之外, 殿下或係喜怒之偏, 或因親愛之僻, 剛毅之德, 或奪於仁慈, 卑微之事, 或略於致察。 臣等雖無狀, 安敢虛斥君上所無之過, 妄論時政未著之疵, 自干買直之嫌哉? 顧以至愚極陋, 猥蒙拔擢, 備列諫職, 無以仰答聖恩, 俯塞尸素。 玆乃披瀝肝膽, 率爾塵瀆, 言雖淺淺, 意實毣毣, 伏乞聖明垂察焉。

答曰: "觀爾等箚辭, 殊甚切直, 寧不愧哉? 從繩之說, 予嘗三復。 今日朝廷爭尙循默云, 此誠悅而不行之致也。 爾等悉陳無隱, 盡其職事, 予甚嘉之。 箚辭當朝夕省覽, 以自警焉。"


  •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7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642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