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를 줄이는 일과 자전에 바치는 물건을 줄이는 일에 대하여 의논하다
상이 자정전(資政殿)에 나아가 삼공과 병조 판서 김류, 연평군(延平君) 이귀, 양사의 장관을 인견하였다. 영의정 이원익이 아뢰기를,
"임진년 변란 때에 난민이 궁궐을 불살랐으나 처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 또 이러하였으니 매우 통탄스럽습니다. 현상금을 걸어 잡도록 하여 군율을 시행해야겠습니다."
하고, 이귀는 아뢰기를,
"전 조관(朝官) 안종길(安宗吉)은 임진년 변란 때에 적에게 들어갔는데 이번에 또 그의 세 아들을 역적 이괄에게 보내어 내응할 계략을 하였습니다. 사대부도 이러한데 더구나 천한 하례들이겠습니까. 안종길과 그의 세 아들을 모두 잡아 가두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적에게 붙은 사람을 낱낱이 죄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 가장 심한 자와 교외에 나가서 적을 맞이한 자는 다스리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김류가 아뢰기를,
"대가가 성을 나가던 날에 박승종(朴承宗)의 가노(家奴) 여럿이 떼를 지어 신의 집에 난입하여 창문을 봉하고 동내 사람을 불러 지키게 하였습니다. 이들은 이미 무리를 지었으니 어떻게 처치해야 합니까?"
하고, 이귀는 아뢰기를,
"박자흥(朴自興)의 첩도 신의 집에 와서 문을 봉했다 합니다."
하니, 【 김류는 박승종의 집에 들어갔고 이귀는 박자흥의 집에 들어갔으므로 그 집 사람이 난을 틈타 도로 차지하려는 마음을 가졌다. 때문에 두 사람이 이런 말을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들이야 어찌 문죄할 만하겠는가마는, 궁궐을 불사른 사람은 현상금을 걸어 잡아서 다스리지 않아서는 안된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역적이 평정되었으나 앞으로 나라 일에 걱정스러운 것이 매우 많으니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하니, 이원익이 아뢰기를,
"상께서 공주(公州)에 계실 때에 간소하고 검약하기를 힘써 요부(徭賦)를 죄다 줄이겠다는 분부가 계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간에게 내린 비답을 보니 ‘종묘와 사직의 제향에 있어서는 줄일 수 없다.’ 하시니, 신은 의혹됩니다. 백성이 편안하면 종묘·사직의 혈식(血食)023) 이 영구할 수 있으나 백성이 편안하지 않으면 나라가 따라서 망하게 되어 종묘가 혈식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제향의 전례(典禮)를 줄이는 것도 곧 조상을 받들어 효도하기 위한 방도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제향을 줄이는 것은 사체가 매우 중대하므로 나는 몹시 난처하다. 모르겠다만 재상들의 의사는 어떠한가?"
하니, 이귀가 아뢰기를,
"대제(大祭)의 변두(籩豆)024) 의 수를 줄여 삭망(朔望)의 전례와 같게 낮추고 삭망에 있어서는 분향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김류가 아뢰기를,
"제향의 전례는 우선 간략하게 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군사를 다스리고 구적(寇賊)을 대비하는 일에 전념하여서 백성의 힘이 넉넉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장유(張維)가 아뢰기를,
"제향을 먼저 줄이고 자전(慈殿)에 공상하는 물건도 차례로 줄여야 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것은 매우 미안하니 다만 햇수를 한정하여 적당히 줄여야 한다."
하였다. 이원익이 아뢰기를,
"공물 바치는 것 가운데에서 구하기 어려운 물건은 장만하기 쉬운 것으로 대치하거나 죄다 줄여야 하고, 편포(片脯)는 매우 장만하기 어려우므로 또한 대구어(大口魚)로 대용해야 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사가(私家)의 제사에도 포해(脯醢)를 쓰는데 편포는 전폐할 수 없으니, 그 수를 줄여야 한다."
하였다. 이원익이 아뢰기를,
"백관(百官)의 조례(皁隷)도 죄다 줄여야 하겠습니다."
하고, 김류가 아뢰기를,
"이경립(李景立)의 일은 대신·대간이 모두 있으니, 지금 의논하여 처치해야 하겠습니다."
하고, 모두가 이경립은 이미 지키지 못한 죄가 있고 또 적에게 붙은 자취가 있으니 용서할 수 없다고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 사람은 큰 공이 있으니 사형을 감면하는 것이 어떠한가?"
하니, 대사헌 서성이 아뢰기를,
"이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어떻게 국법을 시행하겠습니까."
하였다. 좌의정 윤방(尹昉)이 아뢰기를,
"금군(禁軍) 중에 호종하지 않은 자가 1천 인에 가까우니, 벌주어 서쪽 변방을 방어하게 하고, 네 대장(大將)의 군관으로서 호종한 자로 숙위를 대신 충당해야 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장만(張晩)과 함께 상의하여 잘 처치하라."
하였다. 이원익이 또 체찰(體察)의 직임을 사퇴하였으나, 상이 윤허하지 않았다. 이귀가 아뢰기를,
"지금 내우·외환이 아직 제거되지 않았으니, 체찰의 직임을 어찌 가벼이 체직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항복(李恒福)이 체찰사로 있을 때의 전례에 따라 서방의 수령을 체부(體府)로 하여금 천거하게 하면 마땅한 사람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게 하는 것이 매우 좋겠다. 전례에 따라 거행하도록 하라."
하자, 이원익이 아뢰기를,
"신은 인재에 대하여 전혀 모르니, 결코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586면
- 【분류】변란-정변(政變) / 사법-탄핵(彈劾) / 사법-치안(治安) /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재정-상공(上供) / 재정-진상(進上) / 인사-임면(任免)
○上御資政殿, 引見三公及兵曹判書金瑬、延平君李貴、兩司長官。 領議政李元翼曰: "壬辰之變, 亂民焚闕, 而未有刑辟, 故今又如是, 極可痛惋。 宜懸賞購捕, 以施軍律。" 李貴曰: "前朝官安宗吉, 壬辰之亂, 投入賊中。 今又送其三子于逆适, 爲內應之計。 士大夫尙如此, 況下賤乎? 請安宗吉及其三子, 竝拿囚。" 上曰: "附賊之人, 不可一一治罪。 但其中尤甚者及出郊迎賊者, 則不可不治。" 瑬曰: "大駕出城之日, 朴承宗家奴, 多數成群, 亂入臣家, 封窓戶, 招洞內人, 使之看護。 此輩旣已結黨, 何以處之?" 貴曰: "朴自興妾, 亦來臣家, 封門戶云。 【瑬入承宗家, 貴入自興家, 故其家人, 乘亂有還占之心, 兩人有是言。】 上曰: "此輩何足問! 但焚闕之人, 不可不購得治之也。" 上曰: "逆賊雖平, 前頭國事, 極多可虞, 何爲而可?" 元翼曰: "上在公州時, 有務行簡約、悉減徭賦之敎。 今見臺諫批答, 有曰: "宗社祭享, 不可蠲減, 臣竊惑焉。 民苟安矣, 宗社血食, 可以永久, 而民苟不安, 則國隨以亡, 宗廟不血食矣。 然則蠲減祭享之典, 乃所奉先思孝之道也。" 上曰: "祭享蠲減, 事體極重, 予甚難處。 未知, 諸宰之意何如?" 貴曰: "裁損大祭籩豆之數, 而降同朔望之典, 至於朔望, 則只焚香可也。" 瑬曰: "祭享之典, 姑從簡略, 一意安民、治兵、備寇, 以待民力之寬可也。" 維曰: "祭享先減, 而慈殿供上之物, 亦當次第節損矣。" 上曰: "此極未安。 但當限年量減耳。" 元翼曰: "貢獻中, 難得之物, 宜以易辦者代之, 或可全減。 片脯甚難措備, 亦當以大口魚代用。" 上曰: "私家之祭, 亦用脯鹽、片脯, 則不可專廢。 宜減其數。" 元翼曰: "百官皂隷, 亦當全減矣。" 瑬曰: "李景立事, 大臣、臺諫咸在, 今可議處矣。" 皆曰: "景立旣有失守之罪, 又有附賊之跡, 不可容貸。" 上曰: "此人有大功, 減死何如?" 大司憲徐渻曰: "不誅此人, 何以行國法乎?" 左議政尹昉曰: "禁旅不爲扈從者, 近千人, 使之罰防西邊, 而宜以四大將軍官扈駕者, 代充宿衛。" 上曰: "與張晩商量善處。" 元翼又辭體察之任。 上不許。 貴曰: "目今內憂外患, 尙爾未祛, 體察之任, 豈可輕遞? 且依李恒福爲體察時例, 西方守令, 使體府薦擧, 則庶得其人矣。" 上曰: "此事甚好, 可依前例行之。" 元翼曰: "臣全不知人才, 決難承當也。"
-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586면
- 【분류】변란-정변(政變) / 사법-탄핵(彈劾) / 사법-치안(治安) /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재정-상공(上供) / 재정-진상(進上)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