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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 4권, 인조 2년 2월 8일 임진 14번째기사 1624년 명 천계(天啓) 4년

상과 자전·중전 등이 피난길에 오르다

밤에 예조 판서 이정구(李廷龜)가 종묘 사직의 신주를 받들고 먼저 떠나고, 자전(慈殿)과 중전(中殿)이 모두 가교(駕轎)를 타고 나갔다. 조금 뒤에 상이 소여(小輿)를 타고 명정문(明政門)으로 나아가 말을 타고 떠났는데, 중궁의 나인(內人)과 시신(侍臣)은 더러 걸어가는 자도 있었다. 숭례문(崇禮門)에 이르러 승지 홍서봉(洪瑞鳳)이 앞에 있다가 그의 하인에게 돌로 자물쇠를 부수게 하여 나아갔다. 이때 공조 정랑 이진영(李晉英)을 먼저 한강(漢江)에 보내어 배를 정제하여 기다리게 하였는데, 이진영이 그 배를 거느리고 하류로 갔으므로 대가가 한강 나루턱에 닿았을 적에는 한 척의 배도 기다리는 것이 없었고, 몇 척의 배가 건너편 언덕에 숨겨져 있었는데 불러도 오지 않았다. 대가를 강가에 멈추어 놓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무사 우상중(禹尙中)이 칼을 뽑아들고 헤엄쳐 건너가서 배 안에 있던 한 사람을 베고 배를 끌고 돌아왔다. 그리고 전라 병사 이경직(李景稷)·윤숙(尹璛) 등도 배 하나를 얻어 윤숙이 몸소 배를 저어 왔는데, 대가를 수종하는 사람들이 다투어 건너려고 우르르 몰려들자 이경직이 칼을 뽑아들고 꾸짖으니, 무리가 모두 물러섰다. 상이 드디어 배에 올라 호상(胡床)에 걸터앉았는데, 환관 네 사람과 승지 한효중(韓孝仲), 사관 이성신(李省身)·이경석(李景奭)만이 좌우에 모셨고 이경직·윤숙은 배 안에 서 있었다. 상이 이르기를,

"저는 누구인가?"

하니, 좌우가 대답하기를,

"병사 이경직과 전 병사 윤숙입니다."

하자, 상이 판상(板上)에 앉게 하라고 명하였다. 이윽고 병조 판서 김류가 어주(御舟)에 뒤따라 올랐다. 이경직이 나아가 아뢰기를,

"군사가 미처 건너지 못하였으니, 어주는 강물 한가운데에 떠 있고 강언덕에 대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그리하라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전라도의 군사는 어찌하여 미처 건너지 못하였는가?"

하니, 이경직이 대답하기를,

"신이 애초에 강가에 진치고 있으면서 대가가 건너기를 기다리게 하려 하였으나, 병조의 호령이 한결같지 않아서 죄다 건너 들어가 도문(都門) 밖에 진쳤는데, 대가가 뜻밖에 거둥하였으므로 미처 건너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돌아보며 묻기를,

"대비전(大妃殿)은 이미 강을 건넜는가?"

하니, 승지 한효중이 아뢰기를,

"한준겸(韓浚謙)의 군관(軍官)이 와서 말하기를 ‘대비전을 수종하는 관원이 잘못 알고 양화도(楊花渡)로 길을 잡아 강화(江華)로 향하려 하므로 도감 대장(都監大將)이 이미 사람을 보내어 뒤쫓아 가서 고하게 하였으나 미처 모셔 오지 못하였다.’ 합니다."

하였다. 상이 크게 놀라 이르기를,

"분부가 어찌 그리 분명치 못한가. 수가(隨駕)하는 사람 중에 우상같은 대관(大官)도 잘 살피지 못하니 매우 놀랍다."

하고, 즉시 한효중에게 달려가서 문안하고 이어 호위하고 오라고 명하였다. 한효중이 아뢰기를,

"이 편으로 달려가려면 말이 미처 오지 않았고 저 편으로 가려면 건널 배가 없습니다."

하고 망설이며 곧 떠나지 않으니 상이 두세 번 떠나기를 재촉하자 한효중이 일어나 배를 불러 건너려 하였다. 그런데 이귀·구굉·김자점 등이 배를 타고 뒤따라 와서 아뢰기를,

"대비전 일행이 잘못 길을 잡았으므로 송영망(宋英望)이 뒤쫓아갔으니, 이제 모셔 올 것입니다."

하였으므로 한효중이 드디어 가지 않았다. 이때 밤이 깊어 달이 지고 습기가 매우 차가웠다. 상이 이르기를,

"장막은 가져오지 않았는가?"

하니, 환관이 대답하기를,

"갑작스런 사이에 미처 가져오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어주가 강물 한가운데에 떠서 도성을 돌아보니, 궁궐이 난민(亂民)에게 불태워져 불꽃이 이미 하늘에 치솟았다.


  •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578면
  • 【분류】
    변란-정변(政變) / 왕실-행행(行幸)

○夜, 禮曹判書李廷龜, 奉廟社主先行。 慈殿、中殿, 皆乘駕轎而出。 小頃, 上乘小輿, 出明政門, 騎馬而行。 中宮內人及侍臣, 或有徒行者, 行到崇禮門, 承旨洪瑞鳳在前, 使其下人, 以石撞破鎖鑰而出。 時先送工曹正郞李晋英漢江, 整船以待。 晋英乃領其舡往下流, 大駕進次漢江津頭, 無一舡艤待, 有數隻舡, 隱在彼岸, 招之不來。 駐駕江頭, 計無所出, 武士禹尙中, 拔劍游水而渡, 斬舡中一人, 携舡而還。 全羅兵使李景稷尹璛等, 亦得一舫, 躬自剌舡而至, 隨駕從人, 爭渡紛沓, 景稷拔劍揮呵, 衆皆却立。 上遂登舟, 踞胡床, 惟宦者四人, 承旨韓孝仲、史官李省身李景奭侍左右。 李景稷尹璛立於舟中。 上曰: "彼誰也?" 左右對曰: "兵使李景稷、前兵使尹璛也。 上命賜坐板上。 已而, 兵曹判書金瑬追上御舟。 景稷進曰: "軍兵未及渡, 御舟宜中流, 勿泊江岸。" 上曰: "可矣。" 上曰: "全羅軍兵, 何以未及渡來耶?" 景稷對曰: "臣初欲陣江上, 以待大駕之渡, 而因兵曹號令不一, 盡渡入陣於都門外。 大駕不意出幸, 故未及渡來矣。" 上顧問曰: "大妃殿, 已爲渡江乎?" 承旨韓孝仲曰: "韓浚謙軍官來言: ‘大妃殿從官錯認, 取路於楊花渡, 將向江華。’ 故都監大將, 已使人追告, 而未及陪來矣。" 上大驚曰: "分付, 何其不審耶? 隨駕之人如右相大官, 亦不詳察, 甚可駭也。 卽命韓孝仲, 使之馳往問安, 仍爲扈來。 孝仲曰: "欲由這邊馳往, 則馬未及來, 欲由那邊去, 則無船可濟。" 猶豫不卽起。 上再三趣行, 孝仲始起, 呼船欲渡, 李貴具宏金自點等, 乘船追到曰: "大妃殿一行, 誤爲取路, 故宋英望追及之, 今將奉來," 孝仲不果行。 是時, 夜久月落, 水氣寒甚。 上曰: "帳幕不來耶?" 宦者對曰: "急遽之間, 未及持來。" 御舟中流, 回望都城, 則宮闕爲亂民所燒, 烟焰已漲天矣。


  •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578면
  • 【분류】
    변란-정변(政變) / 왕실-행행(行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