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귀를 인견하여 인성군의 일 등을 듣고, 도체찰사의 임명 등에 대해 논의하다
우찬성 이귀(李貴)를 인견하였다. 이 때 이귀가 병을 앓고 있다면서 오랫동안 출사 하지 않았다. 상이 누차 간절히 달랬는데도 이귀가 차자를 올려 사피하므로 상이 이에 소패(召牌)를 내려 인견을 명하였다. 이귀가 나와서 아뢰기를,
"신이 본디 다시는 미친 말을 하지 않으려 하였으나 용안을 뵙게 하여 주시고 또 술까지 내리시니, 신은 참으로 감격스럽습니다. 어찌 차마 품고 있던 생각을 계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이 전일 논한 인성군의 일은 강상(綱常)에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군신 부자의 인륜이 마침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인성군이 헌의(獻議)한 내용도 극히 패악하였거니와 나아가서는 왕자와 종실을 인솔하여 폐모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이것이 사생과 이해 관계에서 발단된 것이기는 하나 아들로서 어머니를 폐위하자고 청한 자를 너그러이 용서한다면 뒷날 난신 적자들이 다 나름대로 해명을 하려고 들 것입니다. 대의가 밝혀지지 않고 인륜이 바로잡히지 않는다면 장차 어떻게 국가를 다스려 나갈 수 있겠습니까. 근일 대간들의 말이 모두, 이것이 바로 정론이지만 성상의 뜻에 순종하려 한다고 합니다. 법관이 된 자로서는 법을 집행할 뿐이지 어떻게 성상의 뜻에 순종하는 것으로 일을 삼을 수가 있겠습니까. 신은 나라가 장차 망하여 가는 것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하고, 인하여 엎드려 눈물을 흘리니, 상이 이르기를,
"인성군이 죄가 있다는 것은 경이 말하지 않더라도 누가 모르겠는가. 그러나 그의 본심을 캐어 본다면 어찌 가긍하지 않겠는가. 경의 뜻은 내가 이미 알고 있으니 다시 말하지 말기 바란다."
하였다. 승지 김자점이 아뢰기를,
"사대장(四大將) 【 김류·이귀·신경진·이서.】 및 신의 군관(軍官)의 원액(元額)을 4백명으로 정하였으나 그 중 신과 심기원(沈器遠) 등의 군관은 단지 10명으로 한정하였습니다. 신이 대동하고 있는 50여 명은 모두가 쓸만한 무사로서 복무한 지가 이미 오래되어 마치 손발과 같은데 이제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으니, 매우 안타깝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런 때는 군관의 수효가 많을수록 더 좋으나 다만 국용이 고갈되어 급료를 줄 길이 없으니 원수(元數) 4백에서 더할 수도 줄일 수도 없다. 다시 미루어 분정(分定)하겠다. 그대의 군관을 50명으로 한정할 것이니 번을 나누어 호위하고, 급료는 25명으로 한정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이귀가 아뢰기를,
"한준겸(韓浚謙)은 역량이 넉넉하여 여러 대신 중에서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습니다. 도체찰사를 삼아서 도성에 머물러 있게 한다면 인심을 진압하고 외침을 방어하는 데 있어 반드시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사람이 임무를 감당할 수 있을지는 내가 아직 알 수 없거니와 예전에도 이러한 예는 없었다."
하였다. 이귀가 아뢰기를,
"사람을 씀에 있어 상규(常規)에 구애받아서야 되겠습니까. 그리고 한명회(韓明澮)도 국구(國舅)로서 체찰사를 지냈으니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하니, 상이 답하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557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 / 사법-탄핵(彈劾) / 군사-군정(軍政) / 인사-임면(任免)
○引見右贊成李貴。 時, 李貴引疾, 久不出。 上屢下溫諭, 貴上箚辭。 上乃命招引見。 貴進曰: "臣本不欲更發狂言, 而咫尺賜顔, 饋之以酒, 臣誠感激, 何忍有懷不達? 臣前日所論仁城君之事, 關係綱常, 此而不治, 則君臣父子之倫, 終必斁敗矣。 仁城獻議之辭, 極其悖惡。 且倡率王子宗室, 主張廢論。 此雖動於死生利害, 以子而請廢其母者, 亦且寬恕, 則他日亂臣賊子, 皆將有以自解矣。 大義不明, 人倫不正, 則其何以爲國乎? 近日臺諫, 皆言此是正論, 而欲將順聖意, 爲法官者, 但當執法不撓, 豈可徒以將順爲事哉! 臣不忍見國之將亡也。" 因俯伏涕泣。 上曰: "仁城有罪, 卿雖不言, 孰不知之? 然原其本心, 則豈不可矜! 卿意予已知之, 須勿更言。" 承旨金自點曰: "四大將 【金瑬、李貴、申景禛、李曙。】 及臣軍官元額, 定以四百, 而臣及沈器遠等軍官, 則只以十人爲限。 臣所帶五十餘人, 皆是可用武士, 服勞已久, 有同手足, 而皆將散去, 甚爲可惜。" 上曰: "此時軍官之數, 多多益善, 而但國用虛竭, 無以廩給。 元數四百, 不可加減, 更爲推移分定。 爾之軍官, 以五十人爲限, 分番扈衛, 而給料則以二十五人爲限可也。" 貴曰: "韓浚謙力量有餘, 諸大臣無出其右。 若以爲都體察使留在都城, 則其於鎭壓人心, 備禦外侮, 必有大益。" 上曰: "此人之可堪此任, 予未可知之。 且舊無此例矣。" 貴曰: "用人, 豈可拘於常規? 且韓明澮以國舅爲體察使, 不無舊例矣。" 上不答。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557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 / 사법-탄핵(彈劾) / 군사-군정(軍政)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