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에 《논어》를 강하고, 폐조 때의 장리 등에 대해 논의하다
상이 주강에 문정전에서 《논어》를 강하였다. 특진관 이수광(李睟光)이 아뢰기를,
"지난번 폐조 때의 장리(贓吏)를 탕척시키라는 전교가 있었는데, 이는 지극히 거룩한 은덕입니다. 그러나 지난날 장리들의 범죄가 특별히 심했는데, 하나하나 다 율대로 다스리지는 못하더라도 어떻게 갑자기 석방할 수 있겠습니까. 그 중 드러난 자는 녹안하여 두고서 영원히 서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뢰기를,
"이미 지나간 일인데 어찌 다 죄를 줄 수 있겠는가."
하였다. 수광이 아뢰기를,
"만약 녹안하여 두지 않는다면 뒷날 다시 벼슬길이 열리게 될까 두렵습니다."
하고, 참찬관 정경세는 아뢰기를,
"지난날 은화를 바친 무리가 오늘날에 와서도 가끔 벼슬을 얻고 있는데, 이름을 적어 금고하지 않는다면 이 무리들도 반드시 벼슬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수광이 아뢰기를,
"폐조 때 과거장에서 글을 차술하는 자가 공공연히 뇌물을 주었는데 두세 사람 외에는 모두 삭과되지 않았으니, 뒷날 이들도 반드시 서용될 것입니다. 양사로 하여금 적발하여 삭과시키게 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전일 연신(筵臣)도 누차 이 일을 말하였으나 일이 애매한 데가 있어서 원한을 품는 자가 있지 않을까 두렵다."
하였다. 경세가 아뢰기를,
"병진년064) 의 알성과에서 공도(公道)를 지킨 자는 한 사람뿐이었고 그 외는 모두 글제를 미리 알고서 글을 구상하였다고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 하더라도 눈으로 보지 못한 이상 어떻게 분명히 알 수 있겠는가."
하였다. 경세가 아뢰기를,
"촉각제(燭刻製)는 그 문장이 상시의 제술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상례인데도, 그때의 제술이 모두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 글들이 남의 손을 빌어서 미리 지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광해 때 유영경(柳永慶)이 역모를 하였다는 이유로 추형(追刑)까지 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억울하다고 합니다. 반정한 뒤에 그의 억울함을 풀어 준 것이 좋으나 복직까지 시킨 것은 옳지 못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미 억울하게 죽었는데 복직시키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광해 때에 탐장했던 자와 차술했던 자는 모두 용서할 수 없다. 수광의 말은 매우 옳고 확고한 의논인데도 상은 매번 관대하기를 힘썼고 신하들도 원망을 떠안으면서까지 굳이 고집하려는 자가 없었으므로 마침내 청탁이 뒤섞이게 되었으니 개탄스러움을 이루 말할 수 없다.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5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550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사법-탄핵(彈劾) / 사법-행형(行刑) / 인사-선발(選拔) / 인사-관리(管理) / 역사-사학(史學)
- [註 064]병진년 : 1616 광해군 8년.
○上晝講《論語》于文政殿。 特進官李晬光曰: "頃者有廢朝贓吏蕩滌之敎, 極是盛德, 而但曩時贓吏, 罪犯特甚, 雖不能一一盡律, 豈可遽爲全釋! 其現出者, 則錄以爲案, 永不敍用可也。" 上曰: "事在旣往, 何可盡罪?" 晬光曰: "若不錄案, 則恐其後日復通仕路也。" 參贊官鄭經世曰: "如曩日納銀之類, 今亦間間得官, 若不書名錮之, 此類亦必爲官矣。" 晬光曰: "廢朝時科擧借述者, 公然行貨, 而數三人外, 皆不削科。 他日此輩, 亦必收敍, 請令兩司摘發削之。" 上曰: "前日筵臣, 亦屢言此事, 而事涉闇昧, 恐或有抱冤者也。" 經世曰: "丙辰謁聖之科, 公道只一人, 其餘皆是預題宿搆者云矣。" 上曰: "雖然, 旣不目見, 何以的知?" 經世曰: "燭刻之製, 例不及常時, 之作而其科製, 皆膾炙人口, 可知其借手宿搆也。" 經世曰: "光海時, 以柳永慶爲謀逆而至於追刑, 故人多冤之。 反正之後, 申雪其冤, 則可矣。 至於復職, 不可也。" 上曰: "旣已冤死, 復職何妨?"
【史臣曰: 光海時, 貪贓與借述者, 皆不可容貸。 晬光之言, 甚是確論。 上每以寬大爲務, 群下亦不任怨堅執, 終至淸濁混淆, 可勝歎哉!】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5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550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사법-탄핵(彈劾) / 사법-행형(行刑) / 인사-선발(選拔) / 인사-관리(管理)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