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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2권, 인조 1년 7월 3일 신묘 1번째기사 1623년 명 천계(天啓) 3년

여러 신하를 인대하며 관서의 방비책 등에 대해 의논하다

상이 문정전(文政殿)에 거둥하여 여러 신하들을 인대(引對)하였다. 우의정 윤방(尹昉)이 아뢰기를,

"부원수 이괄(李适)을 앞으로 내려보내야 되는데 현재 서로(西路)의 양곡이 모자라니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금년에도 흉년이 들 것 같은데 양곡을 어떻게 조치할 것인가. 모 도독이 사겠다고 요청한 곡식은 전에 벌써 수만 섬을 수송해 보냈는데도 그의 요구는 끝이 없다. 지금 재해가 이와 같아 안팎이 텅 비었으니 앞으로는 이을 방도가 없을 듯싶다."

하자, 대신 이하가 모두 아뢰기를,

"모쪼록 대신을 파견하여 이런 위급한 실정을 고하고, 허락하지 않으면 다시 도원수를 시켜 말하게 하소서."

하였다. 상이 이시발(李時發)에게 하문하기를,

"서로의 군병은 숫자가 얼마나 되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대략 1만 2천∼1만 3천 명 정도 되는데 도망치는 군사가 서로 잇달아서 빈 액수(額數)가 꽤나 됩니다. 한정(閑丁)을 찾아내면 그 숫자를 충분히 채울 수 있습니다."

하였다. 김류(金瑬)가 아뢰기를,

"금년에 방추(防秋)할 군사로 서쪽 변경에 가게 되어 있는 사람이 모두 5천 명인데 이괄이 거느린 군사와 합치면 1만 5천 명입니다. 그러나 이미 그들을 먹일 양식이 없고 초출할 즈음에 5도(道)가 또 소란스러울 것이니 교체할 5천 명은 들여 보내지 않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것도 온당하지 않다. 양서(兩西)의 군병에 이미 빈 액수가 많아 현재 남아 있는 군사가 많지 않으니 각처의 성을 지키기에 부족할 것이다."

하고, 인하여 이괄에게 하문하기를,

"부원수는 지금 내려갈 때를 당하였으니 모르기는 하지만 적군을 어떤 계책으로 상대할 것인가?"

하자, 대답하기를,

"마군(馬軍)은 이 적을 당해내기 어려우니 포차(砲車)를 쓰는 것이 합당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요동으로 건너간 뒤에는 포차를 쓰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우리 경내에서는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모름지기 험요처에 웅거하여 굳게 지키며 기다려야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나의 생각에는 반드시 요충지를 가려 지켜야지 곳곳마다 방어하게 되면 힘이 분산되어 당해내지 못할 듯싶다."

하니, 대답하기를,

"신의 생각에는 구성(龜城)이 적의 길목에 해당하니 그야말로 꼭 지켜야 될 곳으로 여겨지는데 단지 성지(城池)가 없습니다. 성을 쌓으려고 하면 공사가 매우 거창할 텐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성을 쌓는 일은 결코 가벼이 의논하기 어려우니 시험 삼아 그 다음 계책을 생각하라."

하니, 여러 신하들이 모두 아뢰기를,

"구성이 안 되면 안주(安州)를 지켜야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영변(寧邊)과 안주 중 어느 곳이 변경에 가까운가?"

하니, 김류가 아뢰기를,

"창의(昌義)를 경유하여 안주에 도착하는 길이 곧 직로입니다. 만일 궁벽한 영변에 있게 되면 적이 안주를 통과하여도 반드시 미처 알지 못할 것입니다. 요충지를 가려 지키려고 한다면 안주보다 나은 곳이 없습니다."

하였다. 이괄이 외구마(外廐馬)를 군졸에게 내어 주기를 요청하니, 상이 윤허하였다. 이귀가 아뢰기를,

"지난번 강도(江都)의 변(變)이 위태롭고 의심스러운 때에 나왔으니, 신하로서는 종사를 위하여 대의로써 처단했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도 대신 세 사람은 병을 핑계대고 모두 의논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신은 이원익(李元翼)을 평소 존경하였는데, 이번에 보여 준 행동은 뭇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히 승복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신이 저 모양이니 앞으로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답하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538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군사-휼병(恤兵) / 군사-관방(關防) / 외교-명(明) / 외교-야(野)

    ○辛卯/上御文政殿, 引對諸臣。 右議政尹昉曰: "副元帥李适將爲下送, 而目今西路糧餉匱乏, 此甚可虞。" 上曰: "今年又將失稔, 糧餉何以爲措? 毛都督所請貿糧, 前已轉送數萬石, 而其求無已。 今則災害如此, 外內空虛, 恐前頭無以繼之。" 大臣以下皆曰: "須遣大臣, 告此危迫之情, 不許, 則復令都元帥言之。" 上問李時發曰: "西路軍兵, 其數幾何?" 對曰: "大約一萬二三千, 而逃亡相繼, 闕額頗多。 若搜得閑丁, 足充其數也。" 金瑬曰: "今年防秋軍士應赴西邊者, 凡五千, 竝李适所領, 則爲萬五千。 旣無糧餉可餽, 而抄出之際, 五道亦必騷然。 五千交遞者, 勿爲入送何如?" 上曰: "此亦難便, 兩西軍兵, 旣多闕額, 見存無多, 必不足於各處城守矣。" 仍問李适曰: "副元帥今當下去, 未知待敵, 當用何策?" 對曰: "馬軍難以當此賊, 合用砲車。" 上曰: "渡遼後, 則宜用砲車, 在我境, 何以爲禦?" 對曰: "必須據險, 堅守以待之。" 上曰: "予意, 必擇要衝之地以守之。 若隨處設防, 恐力分而不能當也。" 對曰: "臣意, 龜城當賊路, 乃必守之地, 而但無城池, 若欲築城, 工役甚鉅, 未知所以爲計。" 上曰: "築城決難輕議。 試思其次。" 諸臣皆曰: "捨龜城, 則安州也。" 上曰: "寧邊安州, 孰爲近邊?" 曰: "由昌義安州, 乃是直路。 若僻處寧邊, 則賊過安州, 必未及知之。 若欲擇守要衝之地, 無過安州。" 請以外廐馬出給軍卒。 上許之。 李貴曰: "頃日江都之變, 出於危疑之際, 爲臣子者, 當爲宗社斷以大義, 而大臣三人稱病, 皆不獻議。 臣於李元翼, 素所敬服, 而今此所爲, 無以厭服衆心。 大臣如彼, 將安所屬望乎?" 上不答。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538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군사-휼병(恤兵) / 군사-관방(關防) / 외교-명(明)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