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류·이귀 등을 인견하여 반정 유공자·접반사 차임 등을 논의하다
상이 또 명광전(明光殿)에 나아가 대장 김류·이귀·이괄을 인견하였다. 이괄이 나아가 아뢰기를,
"상께서 호위를 거두라고 명하셨으나 아직 완전히 안정된 상태가 아니라서 모두 거두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호위한 지 오래되어 사졸들이 괴로워하기 때문에 해산시켜 보내라는 것이다."
하였다. 김류가 아뢰기를,
"이대엽(李大燁)의 일을 처음에 살리기로 약속하였으나 이이첨의 여러 아들 중 대엽의 죄악이 우심하기 때문에 모두 분개하고 있으니 속히 처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죽음을 용서할 수 없으나 형륙을 면하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하였다. 김류가 아뢰기를,
"신들은 신의를 지킨다 하더라도 전하께서는 한결같이 공의(公議)를 따라야 합니다. 국법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또 오늘날의 거사가 실로 하늘의 도움을 힘입은 것이요, 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만약 나의 공로라고 한다면 이 어찌 천공(天功)을 탐하여 자신의 공로로 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 당시 참모의 사실을 말하면, 애당초 이흥립(李興立)으로 하여금 안팎으로 상응하게 한 것은 오로지 장유(張維)·장신(張紳)의 주선을 힘입었고, 송영망(宋英望)은 김자점(金自點)과 가까운 사이였으나 최후에야 왔으니, 김자점·심기원(沈器遠)·심명세(沈命世)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신이 이괄(李适)과 동맹을 맺은 것은 김원량(金元亮)의 힘이었는데, 원량은 유식한 사람이라 남들이 모두 신용합니다. 그날 부모의 병으로 인해 오지는 못하였으나 영망(英望)과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하고, 장유는 아뢰기를,
"김류는 흥립을 부른 것을 신의 형제의 공로로 삼고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흥립은 이귀와 절친한 관계로 미리 알고 있었는데, 신은 단지 그 군사의 출동 시기만을 말하였을 뿐입니다. 신이 무슨 공로가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일에 대해서는 이미 자세히 들었다. 흥립을 부른 것은 장유 형제의 공로이다."
하고, 상이 또 이르기를,
"선비들 중에 유공자가 장신·원두표(元斗杓) 외에 또 몇 사람이 있는가?"
하니, 김류가 아뢰기를,
"무오년부터 서로 약속한 자는 신경진(申景禛)·구인후(具仁垕)·이서(李曙)·박난영(朴蘭英)이었는데, 이흥립과 이서는 박승종(朴承宗)과 절친한 사이지만 끝내 대의(大義)를 일으켰으니 더욱 충의를 분발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최명길(崔鳴吉)은 처음부터 치밀하게 주선하였으니 그 공로가 김자점에 밑돌지 않습니다."
하였다. 이귀가 아뢰기를,
"장만(張晩)이 이미 원수(元帥)로 차임되었으니 서방(西方)의 일은 스스로 담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세는 필히 모장(毛將)과 합세하여 민심을 수습해야 합니다. 신이 비록 늙었으나 모장을 찾아가 보고 성의로 감동시켜 초청해서 성상과 상견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은 늙었다. 또 국사가 복잡한 때라 경이 멀리 떠나서는 안 된다."
하였다. 김류가 아뢰기를,
"이상길(李尙吉)이 나이는 많으나 아직 근력이 있으며, 또 모장과 서로 정의가 깊어 모장이 자주 사신(私信)을 보내 성신(誠臣)이라 일컫기까지 하였습니다. 상길을 접반사(接伴使)로 차임하여 보내면 의당 그의 환심을 살 것입니다. 단 지위가 낮은 것이 흠입니다만, 이는 성상의 처리에 달렸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과연 접반사에 적합하다면 품계를 올려서 보내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는가."
하였다. 김류가 아뢰기를,
"신은 조그만한 공로도 없이 자급이 뛰어올라 외람되이 서전(西銓)의 장관 자리를 차지하였는데, 이귀는 아직까지 승급하지 못하고 있으니 극히 미안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자헌(資憲)으로 올리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아전(亞銓) 또한 적임을 얻기 어려우니 어떻게 조처할 것인가?"
하자, 승지 한여직(韓汝溭)이 아뢰기를,
"전부터 자헌으로 참판이 된 사람이 있었으니, 이 전례에 의하여 하심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그리하라 하였다. 이귀가 아뢰기를,
"김장생(金長生)이 신에게 서신을 보내 경계하고 또 병이 있어 상경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옛날에도 편안한 수레로 어진이를 부른 일이 있으니, 지금 역시 가교(駕轎)를 타도록 허락하심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가교를 타게 한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하였다. 김류가 아뢰기를,
"신에게도 한 마디 말을 보내온바, 병들어 상경할 수 없는데도 외람되어 성은을 입으니 비록 초야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 낭료(郞僚) 중 조익(趙翼) 같은 자는 발탁하여 경악(經幄)에 두는 것이 마땅합니다. 혼조 때 조관(朝冠)을 쓰지 않았으니 그의 지조를 알 만합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516면
- 【분류】군사-군정(軍政) / 사법-행형(行刑) / 외교-명(明) / 외교-야(野) / 인사-관리(管理)
○上又御明光殿, 引見大將金瑬、李貴、李适。 适進曰: "自上雖有撤扈衛之命, 而危疑未定, 似難盡撤。" 上曰: "扈衛已久, 士卒勞苦, 故使之罷遣矣。" 金瑬曰: "大燁事, 初雖與之相約, 而爾瞻諸子中, 大燁罪惡尤甚, 故人情皆憤鬱, 不可不速爲處置。" 上曰: "雖不得貸死, 俾免刑戮如何?" 瑬曰: "臣等雖或守信, 殿下則一從公議可也。 三尺之法, 不可撓也。 且今日之擧, 實賴天佑, 非人力所及。 若曰我有功勞, 則豈非貪天功而爲己力乎? 然若言其時參謀事跡, 則當初使李興立內外相應者, 專賴張維、張紳之周旋。 宋英望則與金自點相切, 最後始來, 與金自點、沈器遠、沈命世有間矣。 臣與李适相結, 則金元亮之力, 而元亮有識之人, 故人皆信之。 其日雖以親病不來, 而非英望之比也。" 張維曰: "金瑬以招興立爲臣兄弟之功, 此非實狀。 興立與李貴相切, 曾已聞知, 而臣則但言其師期而已, 臣何功之有?" 上曰: "此事曾已備聞, 招致興立, 張維兄弟之功也。 上又曰: "儒士中有功者, 張紳、元斗杓外, 又有幾人乎?" 瑬曰: "自戊午相約者, 申景禛、具仁垕、李曙、朴蘭英, 而李興立、李曙則與朴承宗最切, 而終擧大義, 尤可見忠議之奮發。 且崔鳴吉, 自初銳意奔走, 其功不下於自點矣。" 李貴曰: "張晩已差元帥, 西方之事。 自可擔當, 而當今事勢, 當與毛將合勢, 收拾人心。 臣雖老矣, 欲往見毛將, 以誠意激動, 期於請來, 與聖上相見矣。" 上曰: "卿老矣。 且國事方殷, 卿不可遠去矣。" 瑬曰: "李尙吉年雖衰老, 尙有筋力, 且與毛將情意相孚, 毛將至於屢送私書, 稱以誠臣, 以尙吉差送接伴使, 則當得其歡心, 而但名位卑下, 此則在上所處矣。" 上曰: "果合儐接, 則陞品以送, 何難!" 瑬曰: "臣少無功勞, 而至於超資, 叨此西銓之長, 而李貴尙未陞品, 極爲未安。" 上曰: "宜陞資憲, 而亞銓亦難得人, 何以處之?" 承旨韓汝溭曰: "自前有以資憲爲參判之人, 依此例爲之何如?" 上曰: "依爲之。" 貴曰: "金長生抵書於臣以戒之, 且言病不得上來云。 古有以安車蒲輪招賢者, 今亦許乘駕轎以來, 何如?" 上曰: "使之乘轎, 何妨!" 瑬曰: "臣處亦送一言, 病未能來, 而猥承恩遇, 雖死於田野, 無憾云矣。 且郞僚中如趙翼者, 宜擢置經幄, 昏朝時不着朝冠, 其志可見矣。"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516면
- 【분류】군사-군정(軍政) / 사법-행형(行刑) / 외교-명(明) / 외교-야(野)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