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인조실록 1권, 인조 1년 3월 14일 갑진 14번째기사 1623년 명 천계(天啓) 3년

박승종·박자흥이 달아나 자결하다

박승종(朴承宗)이 그 아들 박자흥(朴自興)과 함께 달아났다가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승종선묘조(宣廟朝) 때 출신하여 재간과 기국이 있는 자로 일컬어졌고 이르는 곳마다 직책을 잘 수행하였다. 유영경(柳永慶)과 결탁하여 오랫동안 요로에 있었는데, 광해 때에 이르러 그 아들 자흥의 딸이 폐세자(廢世子)의 빈(嬪)이 됨으로써 권세가 날로 성해졌다. 7년 동안 정승으로 있으면서 아첨으로 총애를 굳히며 오직 탐욕만 부려 전택(田宅)을 널리 점유하였다.

가정 생활에 있어서 어버이를 섬김에 예도가 없고 거상을 삼가지 않아 명교(名敎)에 득죄하였으니 그의 위인을 알 만하다. 다만 난관에 임하여 동요하지 않고 죽음에 있어 처신을 명백히 한 것이 다소 볼 만한 점이다. 자흥은 그 위인이 사납고 드세었다. 본래 그의 처부 이이첨의 간교함을 미워하여 가까이한 적이 없었고, 대엽(大燁)의 무리를 개·돼지 같이 보았는데, 그 딸을 폐세자의 빈으로 들여보냄으로부터 권세를 빙자하여 기세를 부리고 전민(田民)을 널리 점유하여 저택을 크고 화려하게 하니 사람들이 모두 매도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7장 B면【국편영인본】 33책 504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비빈(妃嬪)

朴承宗與其子自興, 出走自縊而死。 承宗出身宣廟朝, 以幹局稱, 所至能擧其職, 而締結永慶, 久據要路。 及光海時, 其子自興之女爲廢世子嬪, 權勢日盛, 爲相七年, 逢迎固寵, 惟肆貪黷, 廣占田宅。 至其居家, 事親無禮, 持喪不謹, 得罪名敎, 則其爲人可知, 而惟能臨難從容, 死得明白, 差可觀也。 自興爲人, 桀驁使氣, 素惡其妻父爾瞻之奸, 未曾親附, 視大燁輩, 有若犬豕, 而圖納其女爲廢世子嬪, 憑藉權勢, 肆其氣焰, 廣占田民, 宏侈第宅, 人皆唾罵。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7장 B면【국편영인본】 33책 504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비빈(妃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