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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 1권, 인조 1년 3월 14일 갑진 7번째기사 1623년 명 천계(天啓) 3년

인조의 즉위와 광해군의 폐위에 대한 왕대비의 교서

왕대비가 교서를 내려 중외에 선유하였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늘이 만백성을 내고 그 중에다 임금을 세운 것은, 대개 인륜을 펴고 기강을 세워 위로는 종묘를 받들고 아래로는 온 백성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이다. 선조 대왕께서 불행히도 적사(嫡嗣)가 없어 임시 방편으로 장유(長幼)의 차례를 어기고 광해로 세자를 삼았었는데, 동궁으로 있을 때 이미 실덕(失德)이 드러나 선묘(宣廟) 말년에 자못 후회하여 마지않았다. 즉위한 처음부터 못하는 짓이 없이 도리를 어겼는데, 우선 그 중 큰 것만을 거론하겠다.

내 비록 부덕하나 천자의 고명(誥命)을 받아 선왕의 배우자가 된 사람으로 일국의 국모가 된 지 여러 해가 되었으니, 선묘의 아들이 된 자는 나를 어미로 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광해는 참소하는 간신의 말을 믿고 스스로 시기하여 나의 부모를 형살하고 나의 종족을 어육으로 만들고 품안의 어린 자식을 빼앗아 죽이고 나를 유폐하여 곤욕을 주는 등 인륜의 도리라곤 다시 없었다. 이는 대개 선왕에게 품은 감정을 펴는 것이라 미망인에게야 그 무엇인들 하지 못하랴. 심지어는 형을 해치고 아우를 죽이며 여러 조카를 도륙하고 서모를 쳐 죽였고, 여러 차례 큰 옥사를 일으켜 무고한 사람들을 해쳤다. 그리고 민가 수천 채를 철거하고 두 채의 궁궐을 건축하는 등 토목 공사를 10년 동안 그치지 않았으며, 선왕조의 구신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내쫓고 오직 악행을 조장하며 아첨하는 인아(姻婭)와 부시(婦寺)들만을 높이고 신임하였다. 인사는 뇌물만으로 이루어져서 혼암한 자들이 조정에 차있고, 돈을 실어날라 벼슬을 사고 파는 것이 마치 장사꾼 같았다. 부역이 번다하고 가렴 주구는 한이 없어 백성들은 그 학정을 견디지 못하여 도탄에서 울부짖으므로 종묘 사직의 위태로움은 마치 가느다란 실끈과 같았다.

이것뿐이 아니다. 우리 나라가 중국 조정을 섬겨온 것이 2백여 년이라, 의리로는 곧 군신이며 은혜로는 부자와 같다. 그리고 임진년에 재조(再造)해 준 그 은혜는 만세토록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선왕께서 40년 동안 재위하시면서 지성으로 섬기어 평생에 서쪽을 등지고 앉지도 않았다. 광해는 배은 망덕하여 천명을 두려워하지 않고 속으로 다른 뜻을 품고 오랑캐에게 성의를 베풀었으며, 기미년 오랑캐를 정벌할 때에는 은밀히 수신(帥臣)을 시켜 동태를 보아 행동하게 하여 끝내 전군이 오랑캐에게 투항함으로써 추한 소문이 사해에 펼쳐지게 하였다. 중국 사신이 본국에 왔을 때 그를 구속하여 옥에 가두듯이 했을 뿐 아니라 황제가 자주 칙서를 내려도 구원병을 파견할 생각을 하지 않아 예의의 나라인 삼한(三韓)으로 하여금 오랑캐와 금수가 됨을 면치 못하게 하였으니, 그 통분함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천리를 거역하고 인륜을 무너뜨려 위로는 종묘 사직에 득죄하고 아래로는 만백성에게 원한을 맺었다. 죄악이 이에 이르렀으니 그 어떻게 나라를 통치하고 백성에게 군림하면서 조종조의 천위(天位)를 누리고 종묘 사직의 신령을 받들겠는가. 그러므로 이에 폐위하고 적당한 데 살게 한다.

능양군(綾陽君)선조 대왕의 손자이며 정원군(定遠君) 【 이부(李琈).】 의 맏아들이다. 총명하고 어질며 비상한 위의가 있어 선조께서 몹시 사랑하여 궁중에서 길렀다. 그 소자(小字)를 천윤(天胤)이라 하였으니 그 이름을 지어준 의미가 깊다. 궤에 기대어 계실 때 손을 잡고 한숨을 지으시면서 정을 붙임이 다른 손자들과 달리 깊었다. 지금 대의를 분발하여 혼암한 자를 토평하고 나의 수욕(囚辱)을 벗겨주며 나의 위호(位號)를 회복해 주어 윤리와 기강이 바로 서고 종묘 사직이 다시 안정되었다. 그 공덕이 대단히 성대하여 신인 모두 귀부하는 바라, 대위(大位)에 나아가 선조의 뒤를 계승할 만하다. 부인 한씨(韓氏)를 책봉하여 왕비를 삼는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교시하니 잘 알기를 바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5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503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변란-정변(政變) / 어문학-문학(文學)

○王大妃下敎書, 宣諭中外。 若曰:

天生烝民, 樹之后辟, 蓋欲敍彝倫、立經紀, 上奉宗廟, 下安黎庶也。 宣祖大王不幸無嫡嗣, 因一時之權, 越長幼之序, 以光海爲儲貳。 旣在東宮, 失德彰著, 宣廟晩節, 頗有悔恨。 及至嗣位之初, 反道悖理, 罔有紀極, 姑擧其大者。 予雖不德, 然受天子之誥命, 爲先王之配體, 母儀一國, 積有年載。 夫爲宣廟子也者, 不得不以予爲母, 而光海聽信讒賊, 自生猜隙, 刑戮我父母, 魚肉我宗族, 懷中孺子, 奪而殺之, 幽廢困辱, 無復人理。 是蓋呈憾於先王, 又何有於未亡人? 至若戕兄殺弟, 屠滅諸姪, 㩧殺庶母, 屢起大獄, 毒痡無辜。 撤民家數千區, 創建兩宮, 土木之役, 十年未已。 先朝耆舊, 斥逐殆盡, 唯姻婭婦寺, 逢惡縱臾之徒, 是崇是信, 政以賄成, 昏墨盈朝, 輦金市官, 有同駔儈。 賦役煩重, 誅求無藝, 民不堪命, 嗷嗷塗炭。 宗社之危, 若綴旒然, 不惟是也, 我國服事天朝, 二百餘載, 義卽君臣, 恩猶父子, 壬辰再造之惠, 萬世不可忘也。 先王臨御四十年, 至誠事大, 平生未嘗背西而坐。 光海忘恩背德, 罔畏天命, 陰懷二心, (輪款)〔輸款〕 奴夷, 己未征虜之役, 密敎帥臣, 觀變向背, 卒致全師投虜, 流醜四海。 王人之來本國, 羈縶拘囚, 不啻牢狴。 皇勑屢降, 無意濟師, 使我三韓禮義之邦, 不免夷狄禽獸之歸, 痛心疾首, 胡可勝言! 夫滅天理、斁人倫, 上以得罪於宗社, 下以結怨於萬姓, 罪惡至此, 其何以君國子民, 居祖宗之天位, 奉宗社之神靈乎? 玆以廢之, 量宜居住。 綾陽君 【諱】 宣祖大王之孫, 定遠君 【琈】 之第一子也。 聰明仁孝, 有非常之表, 宣廟奇愛之, 養之宮中, 小字曰天胤, 命名之義, 厥有微旨。 憑几之際, 握手唏噓, 屬意深重, 異於諸孫。 今者奮發大義, 討平昏亂, 脫予囚辱, 復予位號, 倫紀得正, 宗社再安。 功德甚懋, 神人所歸, 可卽大位, 以繼宣祖之後。 冊夫人韓氏爲王妃, 故玆敎示, 想宜知悉。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5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503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변란-정변(政變)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