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베어낸 재목을 선전관에 보내 적간해 오라고 하다
전교하기를,
"앞으로 법궁(法宮)을 중건하는 일이 있을 것인데, 완도와 변산의 재목을 이와 같이 많이 베어 내었으니, 함부로 베어낸 제목을 선전관을 보내어 상세하게 적간해 오라."
하였다.【 【법궁은 바로 경복궁이다. 비록 들보와 기둥이 장대하기는 하였으나 칸수가 많지 않고 또 별당과 별전, 후정(後庭)의 방이 없었으므로 편안히 거처하기에 불편하였다. 이에 조종조부터 법궁에서는 대례(大禮)만 행하고 평상시에는 창덕궁에 거처하였다. 지금 인경궁(仁慶宮)을 짓고 계속해서 경덕궁(慶德宮)을 지었는데, 들보와 기둥은 비록 작았으나, 칸수는 법궁보다 10배는 되었고 별전이 열 채가 넘었으며, 인왕산을 휘감고 있어서 토목공사의 장대함과 장식의 사치스러움이 예전에 없던 바였다. 거기에 소용되는 재정은, 먼저 각도에서 부조한 쌀과 포목을 쓰고 또 중외의 군량미를 가져다가 썼다. 그러고서도 계속해서 조도사(調度使)·조도장(調度將)·조도관(調度官)·벌목관(伐木官)·매탄관(埋炭官)·취철관(吹鐵官) 등의 관원 1백여 명을 팔도에 나누어 보내어 그곳에서 긁어모아 마련하게 하였다. 혹 한두 동(同)의 포목을 한 도의 민결(民結)에다 나누어 주어, 1결에서 받는 것이 몇 촌(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것을 일러 사들이는 것이라고 하면서 백배로 갚기를 요구하였다. 또 사명(使命)을 받든 사람들은 대부분 시정의 노예들을 썼는데, 거두어들인 재물은 태반을 자신이 차지하여 몇 달 사이에 큰 부자가 되는 자도 있었다. 그런데도 왕은 항상 말하기를 ‘내가 병이 있어서 부득이 이 역사를 하고 있으나, 모두 별도로 마련한 데서 내어 쓰는 것으로, 백성들에게서 거두어서 쓰는 것이 아니다. 조만간에 법궁을 중건할 것인데, 그 때는 민력(民力)을 써야만 하니, 중외에서는 이 점을 미리 알아두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
- 【정족산사고본】 25책 114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광해군일기32책 586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법-탄핵(彈劾) / 건설-건축(建築) / 역사-사학(史學)
○傳曰: "前有法宮重建之擧, 而莞島、邊山材木, 多斫如此, 其濫斫條數, 遣宣傳官, 詳細擲奸以來。" 【法宮卽景福宮也。 雖柱楹壯偉, 間架不夥, 又無別堂、別殿、後庭之室, 故不便於燕居。 自祖宗只行大禮於法宮, 常居昌德宮。 今作仁慶宮, 繼作慶德宮, 樑楹雖小, 間架十倍, 法宮別殿以十數, 橫包仁王山面, 土木之麗, 粧飾之侈, 古未嘗有也。 其用財, 先用各道扶助米布, 又取中外軍儲。 繼置調度使、調度官、伐木ㆍ埋炭ㆍ吹鐵等官百餘人, 分行八路, 所在掊克取辦。 或以一二同木, 分給一道民結, 一結所得不過數寸。 謂之貿辦, 而百倍取償。 奉使之行, 多用市井奴隷之徒, 所收之貨, 太半自盜, 期月之間, 有致大富者。 王常曰: "吾以疾病, 不得已爲此役。 然皆出於別備, 非取諸民也。 早晩重建法宮, 方用民力, 中外宜預知之。"】
- 【정족산사고본】 25책 114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광해군일기32책 586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법-탄핵(彈劾) / 건설-건축(建築)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