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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정초본] 67권, 광해 5년 6월 1일 무자 6번째기사 1613년 명 만력(萬曆) 41년

김제남의 졸기

이에 김제남을 대궐 뜰 안으로 잡아들여 오자, 권진이 전지를 읽어 선포하였다. 그 글의 대략에,

"역적의 괴수 김제남이 앞장서서 역모를 꾸민 정상이 적도들의 공초에 숱하게 열거되어 죄다 드러났으므로 잠시라도 천지 사이에 목숨을 부지하도록 놔둘 수 없다. 역적을 토벌하는 의리는 지극히 크고 엄중하니, 형벌의 기구는 이러한 무리를 위해서 설치한 것이다.

적도들의 우두머리는 서양갑(徐羊甲)인데 김제남은 또 서양갑의 우두머리이다. 서양갑의 머리는 이미 베어서 매달았으나, 김제남은 아직도 사지가 멀쩡하므로 혈기를 지니고 있는 부류들이 너나없이 마음 아프고 뼛속이 저리어 그의 살을 씹어먹고 그의 가죽을 깔고 앉으려고 한다. 역모를 꾸민 무리들이 어느 시대라고 없겠는가마는, 흉측한 역모의 상태가 이 적도들보다 더 심한 자들은 없었다.

이 역적이 감히 서양갑 등과 안팎으로 내통하여 한 동아리가 되었으므로, 음험하고 비장한 꾀가 비록 귀신이라 하더라도 그 단서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국구(國舅)가 된 몸으로 앞장서서 역모를 시도했으니, 춘추의 의리로 단정짓는다면 누구나 그를 죽여야 할 것이다. 역모는 천하에 큰 죄악이다. 임금을 넘보아서는 안 된다고 《춘추》에 나타나 있으며 부도한 짓은 한(漢)나라 법에 엄히 다스리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더더구나 적들에 앞장서서 선동한 자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무신년에 비로소 역모의 마음이 생기었고 김직재(金直哉)에게 틈이 생기기를 바랐었다. 오랫동안 꾀를 쌓아 오다가 은밀히 역모를 도모하였다. 그리하여 몰래 무뢰한 서자들과 손을 잡고 불만을 품은 무사들을 모집하였다. 거짓말로 선왕의 밀지(密旨)가 있었다고 속이고 대비의 권세를 빙자하였다. 이의(李㼁)를 옹립하려는 계획이 은미하여 헤아릴 수가 없었고 담장 안에서 화가 무르익으니 조석 사이에 변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다행히 조상들이 묵묵히 도와주신 데에 힘입어 흉측한 역적들이 벌을 받게 되었다. 모두가 김제남이 앞장서서 선동했다고들 하니, 역모한 정상을 다시 의심할 게 없으며, 엄한 형벌로 국문하는 것은 법으로 보아 당연한 것이라고 하였는데 삼사의 그 의논이 정말로 옳은 것이다. ‘물건을 던져 쥐를 잡고 싶지만 그릇을 다칠까 염려된다.’는 말이 옛날의 유명한 훈계 속에 들어 있으므로 내 차마 형벌을 가하지 못한다마는, 조정의 의논 역시 엄하니 사사(賜死)하여 공론에 답한다."

하였다. 권진이 다 읽자, 김제남이 큰 소리로 말하기를,

"한마디 할 말이 있다."

하니, 권진이 큰 소리로 꾸짖기를,

"이 역적놈이 어찌 감히 이런단 말인가."

하고, 나졸들을 재촉하여 내보냈다. 사약을 내려 서소문(西小門) 안에서 죽게 하였다. 【삼가 살펴보건대, 김제남의 성품은 유약하여 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내지 못하였다. 왕실과 혼인할 때에 이조 좌랑으로 있었는데, 때마침 사류들이 세력을 잃고 있었으므로 김제남이 그 사이에서 붙들어 두둔해 주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그러자 김제남이 말하기를 ‘친구들이 저마다 물러나려고 하는데 어찌 나로 인해 누를 끼칠 수 있겠는가.’ 하고, 모두 외직으로 내보냈기 때문에 식자들이 그가 체통을 얻었다고 일컬었다. 그가 귀히 되자, 선묘가 대군을 사랑하여 재산을 많이 주었다. 제안 대군(齊安大君)도 재물이 풍족하였는데, 대비가 김제남에게 전체를 넘겨주어 대군을 위해 관리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김제남은 사양하지 않고 도리어 재물을 긁어 모으고 이자를 불렸으며 집을 짓고 전원을 넓히어 자신의 몸만 살찌게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사류의 의논도 그를 버렸다. 그가 패하자 나졸과 간사한 백성들이 앞을 다투어 그가 쌓아둔 것들을 가져갔으며, 관청에서 또 그의 집을 몰수하였다. 그가 사사당한 날에 그의 아내 노씨(盧氏)가 맨발로 대비가 거처하는 궁전의 담장 밖으로 가서 울부짖으면서 대비의 소자(小字)를 부르며 말하기를 ‘아무개야, 아무개야. 어찌하여 너의 아비를 죽이는데 구해주지 않는단 말이냐.’ 하였는데, 듣는 사람들이 슬퍼하였다. 그러자 상이 그의 집에 가두라고 명하였다. 집안에는 아무 것도 없고 노비 하나만을 데리고서 집을 부수어 끼니를 해먹었는데, 도성 사람들 중에 더러 어둠을 틈타 쌀과 간장을 주는 사람이 있어서 살아갈 수 있었다. 병진년 가을에 김제남을 소급해 형벌을 주고 노씨를 제주에다 8년 동안 안치해 두었다.】

【김제남의 아들 세 명과 사위 한 명이 모두 곤장 아래에서 죽었다. 김내(金琜)에게는 조금 자란 아들이 있었는데, 왕이 자주 뒷조사를 하자, 내의 아내가 은밀히 그의 아들을 중에게 주어 상좌로 삼게 하였다. 그리고는 거짓말로 병들어 죽었다고 하면서 예대로 장사를 치렀으므로 온 집안이 아는 사람이 없었다. 반정 뒤에 환속하였다.】


  • 【정족산사고본】 16책 67권 1장 A면【국편영인본】 광해군일기32책 194면
  • 【분류】
    사법-행형(行刑) / 사법-재판(裁判) / 변란-정변(政變) / 왕실-종친(宗親) / 인물(人物) / 가족-친족(親族)

○乃拿金悌男入殿庭, 權縉自宣讀傳旨, 其文略曰:

逆魁金悌男首倡謀逆之狀, 狼藉於諸賊之招, 敗露已盡, 不可一刻容息於覆載之間。 討逆之義, 至大至嚴, 桁楊斧鑕, 正爲此輩設也。 首諸賊者, 爲羊甲, 而悌男又爲首於羊甲羊甲之頭旣懸, 而悌男尙完其肢體, 凡在含血之類, 莫不痛心切骨, 欲食其肉而寢其皮。 亂逆之徒, 何代無之, 而兇謀逆狀, 未有甚於此賊。 敢與羊甲等, 表裏相應, 合爲一身, 陰謀秘計, 雖鬼神莫測其端倪。 身爲國舅, 首倡謀逆, 斷以《春秋》之義, 人人得而誅之。 逆者, 天下之大惡也。 無將著於《春秋》不道嚴於法, 況乎爲賊首倡者乎? 始乃生心於戊申, 幸釁於直哉。 蓄謀積累, 潛爲不軌, 陰結孽産之無賴, 募集武夫之不逞。 誑誘以先王之密旨, 憑藉以大妃之權勢。 擁立之計, 秘不可測, 禍稔蕭墻, 變在朝夕。 幸賴祖宗默佑, 兇賊伏辜, 皆以悌男爲之首倡, 謀逆之狀, 更無可疑。 嚴刑鞫問, 在法當然, 三司之論, 固是矣。 但 "投鼠忌器。" 古有明訓。 予不忍拷掠, 廷論亦嚴, 可賜死, 以答公議。

讀畢, 悌男號曰: "願有一言。" 高聲叱曰: "這賊厮安敢乃爾。" 拿卒出之, 賜藥, 死于西小門內。 【按, 金悌男性柔弱, 與人不款密。 方國昏時, 爲吏曹佐郞, 適當士類失勢, 人或覬悌男扶護其間者, 悌男曰: "儕友各欲退屛, 安可以我累之哉?" 遂盡與外補, 故識者稱爲得體。 及其崇貴, 宣廟鍾愛大君, 多與之財産。 齊安大君房, 亦饒財, 大妃盡付悌男, 爲大君經紀。 悌男不辭, 反爲之聚歛孶殖, 營宮室、廣田園以自肥。 由是, 士論亦棄之。 及敗, 拿卒奸民, 爭取其藏, 官又籍其家。 賜死之日, 妻盧氏徒跣詣大妃殿墻外, 大號哭, 仍呼大妃小字曰: "某乎某乎。 何以殺汝父, 而不救乎?" 聞者慘怛。 王命囚之其家, 家中無一物, 只挈一姥婢, 拆屋而炊, 都人或有乘暗, 投以米醬者, 賴以全活。 丙辰秋, 追刑悌男, 安置盧氏于濟州, 凡八年。 ○悌男三子一壻, 皆死杖下。 琜有子稍長, 王數跟問。 琜妻密以其子與僧爲沙彌, 佯言病死, 葬埋如禮, 闔門無覺之者, 反正後乃返。】


  • 【정족산사고본】 16책 67권 1장 A면【국편영인본】 광해군일기32책 194면
  • 【분류】
    사법-행형(行刑) / 사법-재판(裁判) / 변란-정변(政變) / 왕실-종친(宗親) / 인물(人物) / 가족-친족(親族)